[세계로 뻗는 K기업] SF영화를 현실로 만들 차세대 배터리
배터리 3사 2026년부터 기술 개발 완료
日 앞서가지만 EV강자 韓 경쟁력도 상당
UAM, 로봇, 이동장치 등 다양한 곳에 적용
“인재 양성·소재 국산화 체계적 지원 필요”
영화 ‘제5원소’, ‘블레이드 러너’ 등 SF영화에는 고층 빌딩 사이로 자동차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은 영화 속 상상으로 치부됐지만, 세계 각국 모빌리티 기업들이 도심항공교통(UAM) 등 신개념 이동수단 개발에 나서면서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미래를 실현시켜 줄 핵심 열쇠 중 하나가 ‘차세대 배터리’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주로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경쟁이 심해 중국·일본의 견제를 피해 미래 주도권을 잡으려면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차세대 배터리는 핵심 소재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전고체 배터리부터 리튬황, 리튬금속, 리튬공기, 나트륨이온, 마그네슘이온 배터리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전고체 배터리가 가장 유력한 차세대 배터리로 꼽힌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이 들어간다. 고체 전해질을 쓰면 완전히 다른 배터리가 된다. 충격에 강하고 화재 가능성이 낮아져 리튬이온 배터리의 최대 약점인 안전성 문제가 해결된다. 또 에너지 밀도가 높아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충전 속도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 종이처럼 말리고 옷에 붙이는 디스플레이, 전고체 배터리로 가능
차세대 배터리의 상용화는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전고체 배터리는 유연성이 있어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필수적이다. 둘둘 말 수 있는 종이 형태의 디스플레이, 옷감처럼 옷에 부착된 디스플레이의 활성화는 전고체 배터리에 달려있다. 양극재에 경량 재료를 사용한 리튬황 배터리는 항공기의 비행 거리를 2배로 늘려주는 등 전기 항공시대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차세대 배터리는 전기차 외에 다양한 곳으로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손권남 LG에너지솔루션 차세대 전지개발센터장은 “배터리 시장은 기업이 주도해 용도와 마케팅을 설정하는 ‘마켓 드라이빙’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용도에 맞추는 ‘마켓 드리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경환 SK온 차세대배터리 담당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UAM,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로봇, 개인 이동성에 혁명을 가져올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까지 확장이 기대된다”고 했다. 다만 가격이 충분히 낮아져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기까지는 10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 배터리 3사, 2026년부터 전고체 배터리 공개
배터리 3사는 이르면 2026년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2026년 전고체 배터리부터 순차적으로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미국 샌디에이고대(UCSD)와 함께 25도에서도 빠른 속도로 충전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60도 이상에서만 충전이 가능했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손 센터장은 “차세대 배터리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제품을 빠르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의 고용량을 구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수명 저하 현상을 해결했다. 경기 수원 연구소 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시범생산 라인)도 건설 중이다. 박규성 SDI연구소 차세대 개발팀장은 “이를 통해 조기에 대용량 전고체 배터리를 검증할 수 있어 소재, 셀, 공정 등에서 핵심기술을 선점하고 2027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SK온은 차세대 배터리의 핵심요소기술을 확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양극재와 고체 전해질이 결합된 하이니켈 복합양극의 경우, 현재 성능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 수준을 달성했고 파우치 셀 형태에서도 동일한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최 담당은 “2028년 상업화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관련 기술 보유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며 “내부 소재 기술과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셀 제조 기술을 결합해 빠른 시장진입을 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전고체 배터리 치고 나가는 日, 한국도 승산은 있다
주요국 중에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이 가장 좋은 곳은 일본이다. 그러나 한국에도 승산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미국·유럽·중국 등 10개국에 출원된 전고체 배터리 특허 건수를 조사한 결과, 도요타(1311건), 파나소닉(445건), 이데미쓰코산(272건) 등 상위권은 일본 업체가 차지했다. 한국은 삼성전자(4위), LG화학(6위), 현대차(9위), LG에너지솔루션(10위) 등 네 곳이 포함됐다.
손 센터장은 “기술 수준은 특허 개수가 아니라 실제 배터리 구현 성능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실리콘 음극 또는 무음극을 적용한 황화물 전고체 배터리는 (한국이) 일본에 뒤처져 있지 않고, 오히려 수명 성능은 일본보다 앞선 상태”라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에도 차세대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1~10월 세계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에서 국내 3사 점유율은 24.8%다. 이는 1위를 차지한 중국 CATL(35.3%) 한 곳의 점유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LG에너지솔루션이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지만, CATL은 중국 바깥에서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박 팀장은 “기존의 상용화된 수준의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만으로는 미래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며 “차별화된 기술과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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