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설]다시 불씨 살린 개혁, 더 미루면 미래없다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부푼 기대와 희망을 안고 출발해야 할 새해지만 첩첩산중 우리 앞에는 기대보다 우려, 희망보다는 비관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1998년 외환위기 초입 당시 출범한 김대중 정부 이후 가장 어려운 국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위기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온다’는 말처럼 미증유의 복합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한국경제는 대내외 악재가 동시에 밀려드는 ‘퍼펙트 스톰’에 노출돼 있다. 물가와 환율, 유가가 한꺼번에 급등한 ‘신 3고’현상이 장기화하면서 금융· 실물부문 모두 동반 부진에 빠졌다. 특히 외환위기 때처럼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며 대외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어제 발표한 지난 한해 무역수지적자 규모만 472억달러로 종전 최고치였던 1996년(206억 2000만달러)의 2배를 넘었다. 외환위기 당시엔 기업 부채가 뇌관이었지만 지금은 정부 기업 가계 모두 ‘빚의 덫’에 갇힌 상태다.
대외 경제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외환위기 때는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 때는 중국경제가 세계 경제의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줄 나라가 없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전 세계 공급망이 분절되는 초유의 사태 속에 미국의 고강도 긴축 행보로 금융시장불안도 지속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23년 전망에서 올해 경제를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영구적 위기)로 표현한 건 그만큼 경제위기가 단기에 끝날 가능성이 희박함을 의미한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 올해 한국경제는 경기사이클상 고물가·저성장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휩싸이며 본격적인 침체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통상 성장률 전망치를 낙관적으로 제시하는 기획재정부 조차 올해 전망을 지난해 6월 전망치(2.5%)보다 0.9%포인트 낮은 1.6%로 하향조정했을 정도다. 한국은행(1.7%), KDI와 OECD(1.8%)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을 반영한다.
더욱 심각한 건 경제시스템에 이상신호가 오고 있다는 점이다. 잠재성장률(2%대 내외) 수준 만큼도 성장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하락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이미 감소세로 돌아서며 노동투입량이 현저히 약화됐고 극심한 반기업정서와 각종 규제로 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하면서 자본투입량이 줄어든 결과다. 더욱이 법위에 군림하려는 노조의 영향으로 OECD회원국 중 최하위권까지 추락한 노동생산성은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런 산적한 악재를 돌파하기 위해선 국가 대개조 수준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나라 전체에 누적된 적폐를 도려내지 않고는 지속가능한 성장도 요원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신년사를 통해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재차 천명한 건 당연한 일이다. 노사법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통한 노동개혁, 고등교육의 지방으로의 권한 이양과 산업 연계를 통한 교육개혁, 기금고갈 문제의 공론화를 통한 연금개혁 등은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문재인 정권이 5년간 방기하면서 꺼져가던 개혁의 불씨를 윤 정부가 다시 살려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이다.
3대 개혁은 한결같이 청년세대의 미래와도 직결된 과제다. 기득권과 이에 영합하는 정치 세력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거듭 강조했듯 기득권을 타파하지 않고는 개혁작업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뼈를 깎는 아픔이 될 험난한 개혁작업을 통해 국가 대개조를 이뤄내야 미래가 열린다. 계묘년은 검은 토끼의 발랄한 기세로 힘차게 도약하는 ‘개혁의 원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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