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새해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새해에는, 자유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자유라는 말 옆에 ‘보편적 가치’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게 붙는 건, 누가 그 보편에서 배제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살펴보라는 뜻일 거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의식조차 되지 않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희망사항이다. 이들의 부족한 자유를 채우는 게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말이 많아질수록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디든지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언제든지 이동했던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했다면서 저울에 올라가 몇 명 때문에 수천명의 출근시간이 방해받았다는 기계적 평가로 이어진다.
새해에는, 인권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인권이 어그러진 상황을 침해나 유린 등의 강한 어조로 설명하는 건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인권을 강조할수록 혐오의 크기는 당연히 줄어야 한다. 그런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존엄성이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자격이 필요하다. 피부색깔·믿는 종교에 따라서, 절대적 보장은 손쉽게 상대적으로 변한다. 특히 성정체성은, 인권이 보장받는 유형이 엄격히 정해져 있어 그게 아니라면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된다.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이유로도 욕을 먹는데 이를 따져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으니 스스로 상품 가치를 올려야 하느니 등의 처세술뿐이다.
새해에는, 공정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를 조금이라도 완만하게 하려는 정치적 행위의 압축일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않은 조건과 결과들을 끊임없이 보정해야지만 가능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공정이 외쳐질수록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가? 한국에서 공정은 시험성적에 대한 온전한 승복에 국한되어 교육과정에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삭제한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며 기회의 불평등을 짚는 것과, 시험 좀 못 쳤다고 이런 대우를 받는 게 정당한가를 따지며 결과의 정의로움을 운운하는 건 ‘납작한 공정’의 세계에선 불가능하다.
새해에는, 연대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연대 앞에 ‘사회적’이라는 표현만이 어색하지 않고, 또 그것만이 허용되는 이유는 기득권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약자들은 힘을 뭉쳐야 하고, 약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연대는 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중요한 연료로 작동한다. 그런가? 노동자들이 뭉치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강성노조가 되고 2~3일 파업만으로도 경제를 볼모로 밥그릇 챙기는 기득권으로 대서특필된다. 이들의 손을 잡는 이들은 ‘불온한’ 외부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는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저 언어가 넘실거릴수록 정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단어만이 존재하면 무슨 소용일까. 자유가 살던 대로 생각하겠다는 당당한 무기가 되고, 인권이 상대적으로 해석되어 혐오를 정당화하고, 공정이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고, 연대를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정치용어 안에만 가둬버린다면 폭력은 아름다운 단어 아래에서 더 정교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 것이다. 새해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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