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작은 승리
알고 지내는 이주여성 동료에게 SOS 호출이 왔다. 최근 어떤 남성이 사이버 불링을 한다는 것이었다. 동료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해코지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을 거두지 못했다. 쉼터에 들키면 언제라도 큰일 날 수 있다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제안해도 계속 망설였다. 문제를 알리려면 신상을 공개해야 하는데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답답해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그는 국내 무슬림 커뮤니티와 거리를 둔 채 이렇다 할 동료 없이 인권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지금도 집과 일자리를 찾는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활동가를 두고 그는 ‘가족’이라 부른다.
당신을 괴롭히는 남성은 매일같이 늦은 밤 전화를 걸고 문자와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시시때때로 불안을 호소했다. 일단 주변에 있는 사람인지, 연락처를 아는 이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이것마저 망설이고 확인하지 못하면 정말 꼼짝없이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할 테니까, 전화번호를 공개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확인해보자고 했다.
위축된 모습을 무작정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어떤 내용으로 메시지를 보내는지 궁금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시중의 욕설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음담패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들에게도 이런 괴롭힘이 빈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 나와 지낼 가능성이 높고 비영어권 언어를 사용하는 유색인종이라는 취약함이 이들을 만만하게 인식하며 괴롭히기 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국의 여성 차별이 심할수록, 무엇보다 체류하는 지역에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장치는커녕 성폭력에 단호한 문화와 제도가 희박할수록 이런 괴롭힘이 빈번할 것이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더구나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이 체화된 경우에는 괴롭힘당하는 사실조차 바깥에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욕설과 성희롱만 가득한 메시지를 보면서 저 사람은 당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그렇게라도 안심을 해야 다음의 대응이 가능하니까. 며칠 후 그는 나름의 수를 써서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떻게? 그녀는 그에게 단호한 경고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남편이 있고 이제 절차에 따라 신고하고 응징할 것이라고. 거짓말이 유용할 수 있음을 체득한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그는 대꾸할 힘을 길렀다. 그것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력’이라고 한다면 조금 슬프고 화가 나지만, 당장 어쩌겠는가. 다행히 이후로 이상한 연락은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 또 연락이 올 것 같으면 내가 남편 역할을 해줄 테니 목소리라도 녹음해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네 목소리를? 동료가 콧방귀를 끼며 웃었다. 그에겐 생존만큼이나 절실했을 찰나의 여유와 유머였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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