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정부서 ‘여성’ 지운다고 언론도 따라서 하나

기자 2023. 1.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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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 단어이고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해도, 어떤 표현을 쓰는가에는 사건과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구조가 담겨 있다. 또한, 특정 표현이나 용어가 반복됨에 따라 고정관념 등이 재생산될 수 있다. 정책 용어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정책 대상이 어떤 사람들이고, 해당 정책이 어떤 목적으로 시행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자, 정부가 어떤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여성가족부폐지저지와 성평등정책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전국행동(여성가족부폐지저지 전국행동)’에서 최근 현 정부의 정책 용어에서 여성이 지워지고 있음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지난 11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여성가족부는 계획 내 ‘여성폭력’ ‘젠더폭력’ ‘성별에 기반한 폭력’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폭력’으로 대체하여 비판을 받았다. 더 나아가, 여성가족부폐지저지 전국행동은 2022년 지자체 선거 이후 국민의힘에서 장을 배출한 다수의 지자체에서 부서 및 정책, 사업명에서 여성을 지우고 가족, 출산, 인구, 행복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여성청소년가족과’를 ‘인구가족과’로 변경한 것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단지 용어의 교체이거나, 혹은 대상을 확대한 것이 아니다. 여성을 인구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현재의 인구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성차별 개선이 핵심이라는 점은 수차례 지적되어 온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여성 개개인의 인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사회 규범과 구조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구 문제로 여성과 가족의 문제를 환원하면 이를 여성 개개인의 출산 의지 문제로 돌리게 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이 발표되었을 당시, 여성가족부의 모든 기능이 다른 부처로 분산하여 이동할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는 여성가족부의 기능이 성평등 정책의 수립과 시행, 즉 젠더 관점을 갖고 구조적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 여성에 대한 정책이란 대상이 지정성별 여성이라는 의미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취해지는 조치이며, 실재하는 차별의 문제를 드러내어 그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것으로 단순히 시혜적인 의미를 갖는 것 또한 아니다. 대표적으로 여성폭력, 젠더에 기반한 폭력의 문제는 ‘폭력 일반’이라는 개념과 인식 틀로는 설명될 수 없다. 폭력이 훨씬 더 넓은 개념이고 그 안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포함된다고 하는 말은 젠더 폭력이라는 말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무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젠더 기반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말은 폭력이라는 말이 담지 못하는 성차별 구조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가정폭력은 사소한 것이거나, 가족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에 외부자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 성폭력이 여성 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닌 남녀 사이의 일이라는 인식 등 기존의 ‘폭력’ 개념이 담아내지 못했던 젠더에 근거한 차별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 적극적인 젠더 이슈 의제화가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기조로 젠더 관련 정책과 의제를 개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이에 따라 여성 문제, 젠더 문제가 지워지거나 다른 문제로 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언론의 의제화가 더욱 절실하다. 정부가 지우고 대체하는 말과 개념이 무엇이고 왜 그런지, 그리고 이것이 지워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고 의제화하는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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