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카타르 16강 유효기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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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풍에도 꿋꿋하게 소신 지키는 그런 지도자가 성공 이끈다
한국 축구는 지난해 12년 만에 원정 16강을 이루며 국민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예전엔 보지 못한 공격적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즐거움의 유효 기간은 2022년으로 끝. 한국 축구는 새해부터 4년 동안 새 사령탑에게 지휘봉을 맡겨야 한다. 현재로선 국내 지도자와 외국인 감독 모두 논의 대상이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와 지난해 카타르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성공 사례를 통해 어떻게 지도자를 뽑고 도와줘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히딩크와 벤투는 한국 대표팀을 맡는 동안 끊임 없는 비판과 경질설에 시달렸다. 한일월드컵을 2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지휘봉을 잡은 히딩크가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두자, “전술 훈련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벤투도 4년 내내”한국 축구에 빌드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귀 따갑게 들었다. 막상 월드컵이 끝나자 탄식 대신 환호성이 터졌다. 월드컵 1년 전 0대5 대패를 되풀이했던 히딩크는 ‘허동구(한국식 애칭)’, 일본에 두 차례나 0대3으로 완패해 원성을 샀던 벤투는 ‘벤버지(벤투+아버지)’가 됐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축구 대표팀은 성적이나 경기 내용에 팬들과 언론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진하면 선수 선발이나 기용뿐 아니라 전술 변화까지 요구받기도 한다. 축구계에선 히딩크나 벤투가 학연·지연에 얽히지 않는 외국인이라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소신껏 대표팀을 이끌어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뛰어난 리더십을 지닌 한국인 지도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축구 좀 안다’는 축구계 인사들이 걸핏하면 이들을 흔들어댔고, ‘한국인’이라는 게 핸디캡이 돼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고 소모품 신세가 되어버렸다. 협회도 여론에 휘둘려 이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팀 중 한국만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이었다. 역대 월드컵 우승팀 감독 중 외국인이 사령탑에 앉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한국인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이끌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내 지도자들을 지켜본 축구협회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아직은 시기상조 같다.
“자신감이 부족하다” “해고당할까 봐 지는 걸 두려워하고 눈앞 대회 성적만 생각한다”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걸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은 2018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순수 국내파’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대표팀을 이끈다. 그 역시 수없이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팀을 이끌었다. ‘선수들을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고 전술을 통일하는 작업에 매우 뛰어났다’는 게 재신임의 이유다. 일본은 2030년 4강,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감독이 바뀌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일관된 시스템 속에서 후임자가 선임자의 결과물을 더욱 업그레이드시켜야 실현 가능한 목표다.
국내 지도자들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국 축구와 함께 세계 무대 더 높은 곳에서 호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지도자들 먼저 바뀌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선진 축구를 몸으로 부딪혀 익혀야 한다. 선수들만 유럽·남미 무대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겨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다. 협회도 이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계속 모래성만 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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