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44] 바버라 월터스
뉴욕 맨해튼엔 ‘월터스’란 이름이 들어간 거리와 건물이 있다. 루 월터스 거리와 바버라 월터스 빌딩–이 두 사람은 부녀 간이다. 브로드웨이 쇼비즈니스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프로모터 루 월터스의 딸로 태어난 바버라 월터스는 53년간 현역으로 앵커의 자리를 지키며 미국 방송 역사를 새로이 썼고 은퇴한 후 자사 빌딩 이름이 헌사됐다.
유명인의 딸이었지만 집안 형편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불안한 환경이었고, 자신이 꿈꾸었던 명문대도 가지 못했으며, 결혼 생활마저 안정적이지 못했다. 1929년생인 그가 본격적으로 방송계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1960년대는 여전히 여성에겐 가혹한 시대였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는 여성은 똑똑해서도 안 되고 글래머여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인 폭력이 지배하던 정글과 같은 곳에서 바버라는 수없이 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마침내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동경하게 되는 ‘인터뷰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권력자부터 범죄자까지 그의 인터뷰의 스펙트럼은 광활하다. 바버라는 지미 카터부터 버락 오바마에 이르는 모든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부터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과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까지 종횡무진으로 만났다. 그의 끈기는 대단해서 존 레넌을 암살했던 마크 채프먼에게 12년간 편지를 보내 결국 교도소내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예측 불가능성이 높은 미디어의 세계에서 그를 끌고 간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동력이 불안감과 부담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항상 오디션을 본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피를 말리는 순간들과 힘겹게 싸웠고 2022년 세밑에 9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캐나다 레게 밴드의 이 노래의 제목은 바로 그가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인터뷰이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죄인으로 아님 성자로? 영웅으로 아님 악인으로?(How do you want to be remembered?/As a sinner or a saint, as a hero or a villain?) 2023년 새해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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