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골탕먹인 꾀돌이…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도
‘꾀 많은 토끼가 살아남기 위해 굴을 세 개나 파 놓는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말처럼, 토끼는 예로부터 지혜와 슬기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 속에서는 백수의 왕인 호랑이가 작고 약하지만 임기응변의 지략을 발휘하는 토끼에게 번번이 당하고 만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호랑이 꼬리를 물속에 담가놓아 얼리는가 하면, 자갈을 밥이라고 속여 불에 달궈 먹게 하는 식이다. 이 이야기들은 힘 없는 서민이 권력자를 재치 있게 골탕 먹이는 은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류와 토끼의 깊은 관계는 선사시대로 올라간다. 인류에 의해 숲이 사라지면서 초원이 토끼의 서식지로 떠올라 개체 수가 늘어났다. 대략 5만년 전부터 토끼는 인류의 사냥감으로서 단백질 공급원이 됐고, 모자와 토시 같은 의복 재료와 고급 붓을 만드는 데도 활용됐다. 1600년 전 고구려 덕화리 2호분 고분 벽화, 신라의 수막새, 고려의 동경(銅鏡), 조선시대 창덕궁 대조전 굴뚝과 경복궁 교태전 뒤뜰의 석련지 같은 문화재에서 토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토끼는 네 번째 ‘묘(卯)’에 해당한다. 방향은 정동(正東), 시간은 오전 5~7시, 달로는 음력 2월을 지키는 방위신이다. 계절로는 봄에 해당하며, 농경사회에선 농사가 시작되는 동시에 풍년을 기원하는 달이었다. 또한 토끼는 강한 번식력으로 다산(多産)과 번성, 불로장생을 상징했다. 달 속에 산다는 옥토끼가 절구로 찧어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선약(仙藥)이었다. 그래서 ‘수궁가’에서 병이 든 용왕에게 필요한 불사약은 바로 토끼의 간이었다. 민화에서는 한 쌍으로 이뤄진 토끼 두 마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원앙과 마찬가지로 다정하고 금실 좋은 부부 관계를 의미한다.
‘놀란 토끼 눈을 하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 같은 속담에서도 토끼는 역시 친숙한 존재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예전 ‘토끼 두 마리를 쫓다가는 다 놓친다’는 부정적인 속담이 현대에 와선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로 변형됐다는 것. 한번에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성취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긍정적 변화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생팬’ 그 시절 영광 다시 한 번... 정년이 인기 타고 ‘여성 국극’ 무대로
- 러시아 특급, NHL 최고 레전드 등극하나
- 김대중 ‘동교동 사저’ 등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 국어·영어, EBS서 많이 나와... 상위권, 한두 문제로 당락 갈릴 듯
- 배민·쿠팡이츠 중개 수수료, 최고 7.8%p 내린다
- 다음달 만 40세 르브론 제임스, NBA 최고령 3경기 연속 트리플 더블
- 프랑스 극우 르펜도 ‘사법 리스크’…차기 대선 출마 못할 수도
- [만물상] 美 장군 숙청
- 檢, ‘SG발 주가조작’ 혐의 라덕연에 징역 40년·벌금 2조3590억 구형
- 예비부부 울리는 ‘깜깜이 스드메’... 내년부터 지역별 가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