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 새해의 소원, 부끄럼을 아는 정치
부끄럼은 사회 유지 근본적인 힘
그런 의미에서 뻔뻔함은
반사회적이자 반정치적이다
우리 정치가 ‘내 탓’하길 바라고
최소한 적반하장 하지 말았으면
‘뻔뻔함’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은 ‘shamelessness’이다. 우리말로 ‘부끄럼(shame)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애덤 스미스는 이 ‘부끄럼’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탐구했던 도덕철학자였다. 스미스 자신에게 경제학은 곁다리 학문으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내내 도덕철학을 강의했던 학자였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스미스의 주저가 <국부론>이 아니라 <도덕감정론>임을 알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의 도덕성이 이성적 판단의 결과라기보다는 우리 감정의 소산이라 여겼다. 특히 ‘부끄럼’이야말로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스미스는 우리 모두는 제3의 공정한 관찰자와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 관찰자의 실체는 쉽게 말해 우리 자신(의 양심)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짓말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 안에 있는 이 공정한 관찰자는 사실상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
만약 자신의 행위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거나 사회의 일반규칙에 어긋나는 경우 우리 대다수는 필연적으로 부끄럼을 느낀다. 우리 행위가 심각하게 도리와 규칙에 어긋날 경우 때로 이 부끄럼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끄럼의 고뇌”에서 시작해 “부끄럼의 공포”, 때로는 “부끄럼이란 보복의 분노”에 시달린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과오를 씻어내지 않고는 “이 부끄럼의 공포가 남은 일생을 망칠 수도 있다”.
스미스는 우리가 이런 부끄럼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일상의 삶을 누리는 동안 사소한 약속에서부터 사회의 규칙, 더 크게는 정의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부끄럽지 않기 위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사회를 이롭게 만든다. 이렇듯 부끄럼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아주 쉽게,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볼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떠올려보자. 그건 내 낯이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부끄럼이다.
이처럼 부끄럼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게끔 만드는, 근본적인 도덕감정이다. ‘뻔뻔하다’는 것은 가장 ‘반사회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반사회적 인물들의 공통적 특징이 바로 이 부끄럼을 모르는 ‘뻔뻔함’에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뻔뻔함’이 ‘부끄럼을 모른다’는 의미라는 건 서구 도덕이론에서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뻔뻔함을 이르는 사자성어는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이를 풀어보면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얼굴이 두껍다’는 말은 타인의 시선에 괘념치 않는다는 뜻인데, 이 말이 생겨난 고사를 보면 매우 정치적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하(夏)나라의 임금 태강(太康)은 정치는 돌보지 않고 사냥과 놀이에 몰두하다 군주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를 보고 태강의 다섯 동생이 노래를 지어 형을 나무랬는데 <상서(尙書)>에 전하는 ‘오자지가(五子之歌)’이다. 동생들은 이 노래를 통해 나라의 근본이 백성인데도 이를 돌보지 못하고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경제를 파탄낸 형을 비판했다. 이 중 막내인 다섯 번째 동생은 태강이 “낯이 두껍고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한탄하였는데, 여기서 ‘후안무치’라는 사자성어가 유래했다. 여기서 ‘뻔뻔함’은 책임감 없이 공적인 일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반정치적’ 태도이다.
교수들이 2022년 한국 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잘못이 있으나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한 일은 모두 내 덕분이고 잘못된 일은 모두 네 탓으로 삼고 싶은 ‘뻔뻔함’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일지 모른다.
하지만 스미스와 태강의 예를 통해 보았듯이 그런 ‘뻔뻔함’은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반정치적이다. 자신을 속이고 타인의 시선을 모른 체하는 일이다. 이런 ‘뻔뻔한’ 정치 앞에서 정작 부끄럼을 느끼는 이들은 평범한 우리 국민들이다.
새해가 왔으니 바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직업이 정치에 대해 말하는 일인 만큼 올해는 이 소원을 공적인 일에 쓰기로 했다. 올해는 우리 정치가 ‘고통스러운 부끄럼’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잘못된 일은 ‘내 탓’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만약 이게 너무 큰 소원이라면 최소한 ‘적반하장’의 태도라도 버렸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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