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02] 겨울 길을 간다
겨울 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이해인(1945~)
새해를 맞이하며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었다. 성직 수녀라는 특수한 신분, 수녀원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잉태된 시들이기에 그의 시를 읽기 전에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간절하고 소박한 시구들을 찬찬히 음미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별다른 수식 없이 “겨울 길을 간다”로 시작되어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에 이르러 잠깐 쉬고 싶었다. 계절의 변화를 이토록 간단히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봄날에 움트고 형형색색 피어나 땅과 하늘을 물들이다 여름에 만개하는 잎과 꽃들, 울창한 숲에 서식하는 벌레들이며 새들의 노래, 눈부신 빛과 그림자를 “호화롭던”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그 세련된 솜씨에 나는 감탄했다.
“서서히 옷을 벗으면”이라는 짧은 한 행을 읽었을 뿐인데 가을이 되어 잎을 떨군 나무들, 꽃이 진 자리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민들레의 영토를 개척한 클라우디아 이해인 수녀님. 새해에도 강건하시길…
*
겨울 길을 간다 (시 원문)
겨울 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이해인(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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