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79]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
‘유어예(遊於藝)’라는 말을 좋아한다. 놀기는 놀더라도 ‘예(藝)’ 안에서 놀면 후유증이 적다. 그 예가 종합적으로 녹아 있는 공간이 원림(園林)이라고 생각한다. 원림은 한자 문화권의 상류층과 식자층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공간이다. 나는 원림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중국의 졸정원(拙政園)을 비롯한 전통 정원들을 보러 다녔다. 특히 양주의 원림 중에서도 개원(价園)이 취향에 맞았다. 일본 교토의 정원만 해도 볼만한 곳이 금각사 정원을 비롯하여 20여 군데가 넘는다. 문제는 이러한 정원(원림)들을 조성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가산가수(假山假水)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원림은 돈이 적게 들면서도 그 효과는 크게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연에 있는 진산진수(眞山眞水)이기 때문이다. 호남의 양대 원림인 담양 소쇄원과, 강진 백운동 원림이 그렇다. 백운동 원림은 진산(眞山) 중의 진산인 월출산 자락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원림의 핵심인 석가산(石假山)이 필요 없다. 뒷산이 바로 엄청나게 기가 센 월출산 옥판봉이 산수화처럼 도열해 있지 않은가! 옥판봉은 마치 금강산 만물상 같은데, 중국, 일본 정원의 석가산은 감히 여기에 대지도 못한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 왔을 때 원주 이씨들 소유의 이 백운동 원림에 출입하게 되었고, 백운동 주인의 어린 아들인 이시헌(李時憲)이 9세 때부터 다산 문하에서 놀게 되었다. 다산은 강진 유배가 끝나 1818년 두물머리로 돌아가면서 18명의 제자와 다신계(茶信契)를 맺었다. 이시헌은 당시 17세로 나이가 어려 다신계의 공식 멤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경기도 두물머리의 다산에게 월출산 옥판봉 밑의 찻잎으로 떡차를 만들어 꾸준히 보낸 제자는 이시헌이었다. 이후로도 백운동 집안은 10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다산가에 차를 보내는 신의를 지켰다.
차의 제조 방식은 다산이 직접 알려준 삼증삼쇄(三蒸三曬)의 방식이었다. 3번 솥에다 찌고 3번 말리는 방식. 다신계의 약속은 이시헌의 손자뻘인 이한영(李漢永·1868~1956)에 의해 지속되었다. 또한 이한영은 왜정 때인 1920년대에 우리 차가 일본 상표로 둔갑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어서 ‘白雲玉版茶(백운옥판차)’라는 국산 브랜드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한국 최초의 차 브랜드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다부(茶父)이다. 이한영이 살았던 집이 원림 옆의 월남사지 3층 석탑 아래에 있었고, 그의 고손녀 이현정이 삼층석탑처럼 꿋꿋하게 차명문가(茶名門家)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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