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독립 얻었지만 이동·주거는 여전히 고립

김세훈 기자 2023. 1. 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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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시설 밖으로 나온 지 7~9년차 장애인 3명의 ‘탈시설 그 후’
지난달 28일 김치경씨가 외출할 때 입을 패딩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자립이란 본인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산책하고 수필집 출간, 해외여행도
공동 생활 벗어나 활동 반경 확대
이동권 보장된 주거지 찾기 힘들어
공공임대주택 입주는 운이 좋은 편
대중교통 이용 땐 눈총 받기 일쑤

지난달 8일 국회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가 비준됐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9조는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을 명시한다. 2021년 8월 보건복지부는 2041년까지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작년 6월 탈시설 조례를 제정했다.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계 일각에서는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예산확충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향신문은 2014~2016년 시설을 나와 경기도 중원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 중인 장애인 세 명을 지난달 28일 만나 ‘탈시설 이후’의 삶을 들어봤다.

이들은 ‘자유로운 생활’에 만족했으나 이동·주거권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2014년 시설을 나온 뇌병변장애인 김은복씨(54)는 혼자 책 읽을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2020년에는 그간의 경험을 담은 수필집 <소중한 만남>도 출간했다. 김씨는 “공동생활을 하면 집중력이 분산돼 책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뇌병변장애인 전정숙씨(47)는 자율적인 취침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시설에서는 오후 10시에 자고 오전 6시에 기상해야 했다고 한다. 생활반경도 넓어졌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에 2번은 집 근처 마트와 공원에서 4~5시간을 보낸다. 2018년에는 자립생활센터를 통해 4박5일 베이징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전씨는 집의 침대 커버, 의자, 책상 등도 직접 골랐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시설에서 지내서 고향같은 느낌이 들지만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1995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치경씨(41)는 시설에서는 구속감이 심했다고 회상했다. 외출을 하려면 늘 허락을 구해야 했다. 입소 초창기에는 휠체어 탑승도 욕창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제한됐다. 2016년 시설을 나온 김씨는 3년 전부터 지하철 장애인화장실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장애인 복지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탈시설 장애인들의 장거리 이동이나 주거 안정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당장 시설을 나와 거주할 집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일반주택의 경우 출입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집 내부에 턱이 있으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기 어렵다. 전씨의 첫 집은 반지하였다. 전씨는 “방에서 죽은 쥐가 나오고 집 주변도 정비가 돼 있지 않아 밤에는 무서웠다”며 “이동이 가능한 곳을 찾다보면 계단이 없는 반지하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금은 세 사람 모두 경기 분당에 있는 40㎡ 넓이의 공공임대주택에 산다. 일반주택에서 1~3년가량 머물다가 청약에 당첨돼 집을 옮겼다. 김은복씨는 “나는 운이 좋은 경우”라며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 지역 공공임대주택 2곳 모두 4~5년씩 기다리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택시나 대중교통 이용도 만만치 않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탈시설 제도를 도입한 초기이다보니 서울과 그 외 지역의 편차가 크다”며 “현재 부족한 공공주택과 활동지원사를 함께 늘려가야 한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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