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대피소에서 맞는 우크라이나의 새해 “우리의 소원은 하나”
젤렌스키, 텔레그램 연설
“군인·피란민·땅 제자리로”
러, 12월 마지막 날도 폭격
푸틴, 샴페인 터뜨리며 자축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은 새해를 고통과 침묵 속에서 맞이하게 됐다. 새해 전야까지 공습에 시달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차디찬 지하철에서 밤을 보냈고, 러시아 국민들은 축하 행사를 자제하며 전쟁 동향에 촉각을 기울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 샴페인을 터뜨리며 전쟁을 자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월31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공개한 새해 전야 연설에서 “올해 우리는 모든 눈물을 쏟아냈고 기도하는 모든 이들은 소리를 쳐야 했다. 311일 매 순간 우리는 말할 것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3년이 어떤 일을 가져올지 알지 못하지만 우크라이나인의 소원은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귀환’의 해가 돼야 한다”며 “군인들은 가족에게, 피란민들은 고향으로, 일시적으로 빼앗긴 땅들은 영원한 자유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날도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과 로켓 공격을 퍼부었다.
수도 키이우에서는 공습으로 1명이 숨지고 최소 20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통행금지가 내려져 신년맞이 행사 자체도 불가능해졌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날 지하철역에서 새해를 맞게 된 우크라이나 가족들의 모습을 전했다. 유니세프 측은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와 반려동물을 데리고 가던 아이들, 크리스마스트리를 집으로 가져오던 부모들 모두 휴일을 준비하는 대신, 지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전했다. 공습을 피해 세 살 아들과 지하철로 피했다는 한 여성은 “새해를 축하하러 집에 가던 중 폭발음이 울렸고, 아들은 겁에 질려 지하철로 들어갔다”며 “이런 새해맞이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도 이날 대규모 행사를 자제하고 차분한 새해맞이에 나섰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불꽃놀이 등 새해 축하행사를 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도 대폭 축소된 새해 행사가 진행됐다. 한 60대 여성은 불꽃놀이 취소가 군인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도 있다며 “그곳(우크라이나)에서 우리 국민이 죽어가고 있다. 명절을 축하해도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방송된 신년 연설에서 전쟁과 관련해 “도덕적, 역사적 정당성은 러시아에 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강조하고 승리를 다짐했다. 이날 연설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년간 내놓은 새해 연설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이었다. 그는 연설 중 샴페인 잔을 들어 전쟁을 자축하는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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