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위로 띄우는 ‘촛불’…우주 개발 미래에 ‘점화’
양초의 주성분 파라핀 고체연료에
액체 산화제 결합해 ‘가성비’ 구현
구조 간단하면서도 성능까지 훌륭
1970년 4월11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 미국의 달 탐사 우주선 아폴로 13호가 길이 110m짜리 대형 로켓인 ‘새턴 5호’에 탑재돼 발사를 기다린다. 점점 줄어들던 발사 카운트다운이 ‘제로’를 가리키며 새턴 5호가 공중에 뜨자 엄청난 진동이 내부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들의 몸을 세차게 흔든다. 새턴 5호는 대기권 밖으로 빠르게 상승하며 검은 우주 속으로 뛰어든다. 미국 영화 <아폴로13>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떠나는 장면이다. 새턴 5호는 현실에 정말 존재했던 당시 인류 우주기술의 대표작이었다. 추력이 점보 제트기 40대의 힘을 합친 3500t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큰 덩치의 로켓도 필요하지만, 소형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자주 올려보내는 작은 발사체도 많이 필요해졌다. 그 중심에는 성격이 다른 엔진을 뒤섞은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이 있다. 각 엔진들의 장점을 조합해 발사 비용을 낮추려는 것이다.
<아폴로13>에서 새턴 5호 발사 장면이 가진 또 다른 시사점은 로켓의 ‘일회성’이다. 로켓은 엔진 연소가 끝나면 바다에 떨어지거나 대기권에서 타면서 쓰레기가 된다. 다음 발사 때에는 새 로켓을 또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로켓을 여러 번 쓰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로켓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재사용 발사체 개발에 대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짬뽕 로켓’으로 비용 감소
국내에서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 기술을 이끄는 건 민간 기업 이노스페이스다. 지난달 브라질에서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을 단 발사체 ‘한빛-TLV’를 시험 발사하려고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날씨나 외부 안전관리시스템 문제 등으로 올해 1분기로 발사 시점을 미뤘다.
한빛-TLV는 길이 16.3m, 직경은 1m인 1단짜리 소형 발사체다. 중량은 8.4t이고 탑재 중량은 20㎏이다. 추력 15t급 엔진의 비행 성능 검증을 위해 발사할 계획이었다. 이노스페이스가 향후 발사에 성공하면 지구 밖 우주의 시작 시점으로 여겨지는 고도 100㎞ 준궤도에 도달한 한국 첫 민간 발사체가 탄생한다.
한빛-TLV의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은 연료의 경우 고체를, 산화제는 액체를 쓴다. 원래 일반적인 로켓 엔진은 연료와 산화제가 액체든 고체든 같은 성질로 통일돼 있다. 액체 엔진은 연료로는 등유나 액체수소, 산화제로는 액체산소를 많이 이용한다. 고체 엔진은 연료로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많이 쓰고, 산화제로는 질산암모늄 같은 물질을 주로 활용한다. 액체 엔진은 미국의 새턴 5호, 한국의 누리호 등 민간 로켓에 주로 들어간다. 고체 엔진은 미사일에서 다수 활용한다.
액체 엔진은 연료 효율이 좋다. 점화 후 가스레인지처럼 추력을 조절할 수 있다. 반면 개발과 제작 비용이 높다. 고체 엔진은 반대다. 연료 효율이 좋지 않다. 성냥불처럼 한번 켜면 추력 조절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계적인 구조가 간단해 싸게 만들 수 있다.
이노스페이스의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은 연료로는 고체인 파라핀, 산화제로는 액체산소를 썼다. 파라핀은 불을 밝힐 때 쓰는 양초 성분인데, 연소 속도는 빠르고 폭발 위험성은 낮다. 이노스페이스는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은 고체와 액체 엔진의 장점을 결합한 것”이라며 “기계적인 구조는 단순화하면서도 추력 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액체 엔진과 고체 엔진의 발사 비용은 꽤 차이가 있다. 액체 엔진과 고체 엔진을 각기 탑재한 유럽의 발사체인 ‘아리안5호’와 ‘베가’는 한 번 발사에 각각 2000억원과 400억원이 든다. 액체 엔진이 5배 비싸다. 하이브리드 엔진은 액체 엔진과 대등한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간단한 구조로 고체 엔진에 가까운 개발·관리 비용만 쓰면 되는 ‘가성비’를 구현한 것이다.
무인 우주왕복선·재사용 로켓 등
우주 문턱 낮출 기술 연구도 활발
■‘재사용’ 기술 개발도 속도
한쪽에선 재사용 발사체, 즉 여러 번 쏠 수 있는 발사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모델은 팰컨9 등 재사용 발사체를 보유한 스페이스X다.
정부는 내년부터 개발에 들어갈 ‘차세대 발사체’에 재사용 발사체 전환을 쉽게 만드는 기술을 넣을 예정이다. 누리호보다 엔진 힘을 키울 예정인 차세대 발사체는 2032년 달에 착륙선을 투입하는 임무를 띤다. 현재 누리호는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상승하는 동안 1~3단부를 분리한 뒤 바다로 낙하시키는 형식으로 폐기한다.
재사용 발사체를 만들려면 임무를 다한 로켓을 지상으로 안전하게 하강시킬 수 있는 방향 제어와 추진 기술, 그리고 대기권에서 동체가 타지 않게 할 단열 기술이 필요하다.
지난해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이제 막 본격적인 우주개발 시대를 연 정부가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은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염두에 두는 건 발사 비용 때문이다.
2021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중량 1㎏ 물체를 지구 저궤도에 올리려면 유럽의 아리안 5호로는 8900달러(1100만원), 미국 아틀라스V로는 1만3400달러(1600만원)가 소요된다. 반면 재활용 가능한 팰컨9 로켓으로는 2700달러(340만원)면 된다.
재사용과 관련해 국내에선 조금 다른 각도의 연구도 진행 중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6일 서울대에 ‘재사용 무인 우주비행체 고도화 기술 특화 연구센터’를 개설했다. 여러 번 발사할 수 있는 무인 우주왕복선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2028년까지 354억원이 투입된다. 서울대 등 14개 대학,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4개 기업,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이 참여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 공군이 운영하는 ‘X-37B’와 비슷한 개념의 우주 비행체를 개발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X-37B의 외형은 과거 미국이 사용하던 유인 우주왕복선과 비슷하다. 하지만 크기가 시내버스 정도로 좀 더 작고 사람이 타지 않는다. 2010년 첫 비행을 했고 가장 최근이었던 6번째 비행에선 908일간 지구 궤도에 머물렀다. 과학실험 내용이 공개되는 것 외에 정확한 임무는 기밀이다. 한국도 국방을 목적으로 우주에 비행체를 띄우고 재사용까지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이니만큼 향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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