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터널 화재로 가족 잃은 가장 “그렇게 쉽게 타는 재질로…” 분통
아내·딸 잃은 김석종씨
뇌졸중 엄마 잘 챙기던 딸
참사 날도 요양차 가던 길
김씨 “재발 방지책 필요”
경찰, 발화 트럭 업체 수사
1일 오후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숨진 모녀간인 김식자씨(62)와 김연주씨(29)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빈소 내 전광판에는 김석종씨(65)의 이름만 덩그러니 올라와 있었다.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떠나보낸 김씨는 망연한 표정으로 흐트러진 넥타이를 고쳐 맸다. 조문객을 맞는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지난달 29일 밤 9시50분쯤 김석종씨는 충남 천안의 일터에서 돌아와 쉬던 중 사고 소식을 알리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전소된 차들의 차량 번호판을 통해 확인된 가족들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라는 말을 듣고 김씨는 과천으로 향했다.
운전 중에도 그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었다. 시신이 임시 안치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불에 탄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느라 하루를 더 보냈다.
김씨는 “나는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냈지만 딸은 항상 엄마를 잘 챙겼다. 지난 11월에는 경주 불국사에 가족여행도 다녀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2022년 연말에는 집사람, 딸과 다 같이 친척 집에 집들이를 가기로 했었는데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도 했다.
딸 연주씨는 소문난 효녀였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늘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챙겼다. 참사가 일어난 날에도 연주씨는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찜질방에 가던 길이었다. 2년 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6개월 전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회사 동료는 “평소에 부모님을 잘 챙긴다고 많이 이야기했다. 주변 사람에게 싹싹하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던 친구”라고 했다.
김석종씨는 “사고 현장은 나도 회사를 갈 때 자주 이용하던 길”이라며 “어떻게 그렇게 쉽게 타버리는 재질로 터널을 만들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49분쯤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을 지나던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플라스틱 재질의 방음터널로 옮겨붙은 불은 총 길이 830m 터널 가운데 600m 구간을 태웠다. 이 사고로 모두 5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쳤다.
경기남부경찰청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사건 수사본부는 전날 집게 트럭 소유 업체와 운전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차량 노후화로 인한 화재와 정비 미비로 인한 착화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등과 함께 합동 현장 감식을 벌여 불이 난 트럭의 차량 배터리 전기배선 등 모두 3종의 잔해물을 수거해 분석하고 있다.
또 방음터널을 공사한 시공사와 도로 관리 주체인 (주)제이경인고속도로에 대해 도로 건설·유지 및 보수 등 과정 전반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살피고 있다.
김세훈·김태희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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