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바버라 월터스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미국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는 성공비결로 ‘절실함’을 꼽았다. 연극 프로듀서 출신으로 파산한 아버지, 무능력한 어머니, 발달장애인 언니의 생계를 위해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밥벌이”였어도 버텨야 했다. 1961년 NBC 아침 뉴스쇼 작가로 입사한 그는 이듬해 우연히 대타로 마이크를 잡았다가 매끄러운 진행을 인정받아 앵커 자리를 꿰찼다. 1976년 미국 방송 사상 최초로 연봉 100만달러에 ABC로 이적한 그의 장기는 단연 인터뷰였다.
1970년대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지도자 등과 인터뷰를 잇따라 성사시킨 그는 여성 진행자에게 날씨나 생활정보 같은 뉴스만 맡기던 방송계의 유리천장을 부쉈다. 태도는 친밀하되 섭외는 집요했고 질문은 거리낌 없었다. 소련 비밀경찰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사람을 죽인 일이 있느냐”,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영화배우 숀 코너리에게 “정말 여자는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인터뷰 대상이 정해지면 예상 질문 250개를 뽑아 준비할 정도로 치열했다. 귀를 기울이며 공감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과 스캔들을 일으켰던 모니카 르윈스키는 인터뷰 대가로 300만달러를 주겠다는 폭스뉴스를 마다하고 월터스를 택했다. 게스트들은 속엣말을 꺼내며 종종 울었는데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마저 무장해제될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유명인사 저널리즘’이라며 그의 뉴스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새 책이나 영화 홍보 인터뷰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반세기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며 ‘인터뷰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는 2014년 “밀려나서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느니 정상에 있을 때 떠난다”며 은퇴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월터스가 93세로 별세했다. 성차별의 덤불을 헤치며 그가 낸 ‘미 사상 최초 여성 앵커’란 큰길을 이제 이후 세대가 걷고 있다. 여성 앵커의 단독 뉴스 진행은 더는 낯설지 않다. 한때 ‘제2의 바버라 월터스’를 꿈꾸던 소녀들은 이제 새로운 시대 소녀들의 또 다른 롤모델이 되고 있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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