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칼럼] 21세기 가장 극렬한 존재투쟁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무릎 높이의 좌판을 밀면서 수세미와 나프탈렌 같은 것을 팔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퀴가 달린 넓은 판자를 배 아래에 깔고 사람들의 발밑을 천천히 기어 다녔던 그들을 어른들은 ‘불구자’라고 불렀다. 장을 보다 그들을 만나면 엄마는 수건돌리기 게임의 술래처럼 조금 딴청을 피우는 듯한 얼굴로 슬며시 그 옆으로 다가가 돈 통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고는 빠르게 지나갔다. 물건은 사지 않았다. 그들도 분명 뭔가를 팔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걸 ‘구걸’이라고 불렀다. 2022년은 놀라운 해였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권운동가들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된 그 ‘비천한 자’들의 모습으로 연일 뉴스를 장식한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고 불렀다.
2021년 12월 이동권, 교육권, 탈시설 등 장애인의 권리를 요구하며 시작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시위는 꽃 피는 3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라며 공격을 개시하자, 대포 같은 카메라들이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향한 것이다. 대중의 비난과 혐오가 들끓어오르자 지지와 연대의 열기도 함께 끌어올려졌고 급기야 이준석과 박경석의 1:1 티브이(TV)토론까지 이어졌다. 온 세상이 ‘전장연, 전장연’ 하면서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장애인의 권리와 지하철시위의 옳고 그름을 논쟁하는 아름답고 토할 것 같은 4월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4월20일 온 국민의 시선이 아침 8시 지하철에 집중되었을 때, 박경석을 필두로 전장연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멀쩡한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주는 난감하고 충격적인 시위였다.
장애인들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커다란 틈을 가까스로 통과하는 동안 열차의 통제실에서는 수십년째 이 열차가 장애인을 태우지 않았음을 알리는 대신 장애인들 때문에 열차가 운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곳은 비장애인 중심 세상의 핵심 시간이자 핵심 공간. 모두가 이 초대받지 못한 자들을 내려다본다. 열차 문이 닫히면 이 시공간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던 존재들이 망령처럼 행진을 시작한다. 오직 어깨와 팔의 힘만으로 마비된 하반신을 힘껏 끌어당기면서 성난 시민들의 발아래를 기어간다. 고개를 치켜드는 것조차 버거운 몸이지만 동냥 그릇 같은 은색 깡통을 목에 건 채 요란하게 끌고 간다. 그 소리는 국가가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탓에 타인의 동정에 기대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모든 ‘비천한 자’들을 불러온다. 망령들이 외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차별받지 아니한다!”
비대칭의 몸 위로 모욕과 혐오가 빗발친다. “병신이 벼슬이야?” “이러니까 동정을 못 받지!” 문명인들이 이토록 거칠어진 이유는 지각을 하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이렇게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죠!” 20분을 늦은 여자가 20년을 갇혀 산 여자에게 자신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핏대 세우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또 다른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 흘린다. 다른 쪽에선 경찰과 실랑이하다 넘어진 장애인을 어떤 남자가 쇼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며 가차 없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어른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한 소년이 휴대전화를 꺼내 높이 치켜든다. 화면엔 “장애인의 시위를 지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전장연은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을 단번에 한국 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무대로 만들었고 놀랍게도 시위는 1년 동안 지속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이란 노동력을 이동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컨베이어벨트다. 컨베이어벨트 위의 인간은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그 레일에서 가장 먼저 치워진 자들의 이름이 바로 장애인이다. 지하철시위 때문에 갈등이 심해진 게 아니다. 지하철시위가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억압을 생생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그 억압은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만큼 엄청난 힘이다. 지하철시위는 21세기 가장 극렬한 존재투쟁이자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 존재들의 존엄한 행진이다. 하지만 이들을 비웃듯 전장연이 증액을 요구했던 2023년 장애인 권리 예산 1조3천억원 중 단 0.8%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1월2일 전장연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는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비난과 탄압을 견디고 감당하면서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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