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위로와 치유의 기운’ 사회에 퍼져나갈 겁니다”
[짬][짬] 곡성 이화서원 김재형 대표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자리한 인문연구 공간 이화서원을 이끄는 김재형(56) 대표는 ‘빛살’이라는 이름을 쓴다. 최근 <동학편지, 다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노래하다>(모시는 사람들)라는 책을 낸 것도 세상에 따스한 빛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인공지능과 가상세계를 좇는 시대에 동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 대표는 지난 12월26일 전화 인터뷰에서 “농민운동가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뒤 농민 운동의 전통과 전라도 혁명의 흐름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그가 다른 농민운동가들과 약간 달랐던 점은 동학 경전을 통해 동학의 근원적인 의미를 궁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부산 출신인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2001년 곡성 죽곡을 새 삶의 터전으로 선택했다. 실핏줄처럼 흐르는 마을 앞 강의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농민열린도서관을 설립해 농민들과 책을 모아 함께 읽고 공부했다. 버스도 띄엄띄엄 다니는 오지인데도 전국적인 지명을 가진 명사들을 초청해 인문학강좌를 열었다.
김 대표는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고전을 읽었다”고 했다. 그때 동학을 만났다. 장일순·김지하·김종철 선생을 통해 동학을 접한 뒤 경전을 구해 읽었다. 처음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상에 마음이 끌렸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다가 수운 선생을 만나 동학 지도자가 됐던 해월은 ‘농민 성자’로 불렸다. 해월은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있다. 곡식은 천지부모의 젖이다’는 말처럼 농민의 마음을 체화시킨 설교가 많아 감동의 깊이가 컸다. 그런데 해월의 설교를 주해한 책이 따로 없었던 게 아쉬웠다. 김 대표가 2018년 해월 선생의 사상을 담은 책을 번역해 <동학의 천지마음>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수운 선생님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숙제처럼 남아 있었어요.”
부산 출신 대학 나와 전남 곡성으로
농민들과 공부 하다 ‘동학’ 만나
‘동경대전’ ‘용담유사’ 풀이집 펴내
“인공지능·가상세계 해결책 찾아”
주역 공부도…2023년 ‘재중괘’ 뽑아
“이웃과 따뜻한 밥 나눠 먹는 마음”
김 대표는 곡성교육지원청의 지원으로 지난해 <동학> 강좌를 열었다. 이 강좌를 계기로 느리고 긴 호흡으로 동학의 핵심 경전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동학편지, 다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노래하다>는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편지 형식으로 16차례에 걸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동학의 핵심 경전을 현대말로 풀이하고 해제를 붙인 책으로, 처음 동학을 접하는 분들이나 한문을 모르는 청년들도 이해하기 쉽다. 특히 농촌에서 치열한 문제 의식을 갖고 살았던 저자가 현대적 감수성을 살려 쓴 책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가사체인 <용담유사>를 4·4조 운율을 유지하면서 현대말로 풀이한 점도 흥미롭다.
김 대표에게 “현대 사회에서 동학이 갖는 의미”에 관해 물었다. 그는 “150년 전 생각이지만 지금 읽을 때 의미가 더 강하게 살아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경천·경인·경물 등 삼경 사상 중 자연과 물질문명도 공경한다는 의미인 ‘경물’은 요즘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와도 인격적인 만남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동경대전>의 시에 담긴 ‘산하대운’이라는 말에서 따 오는 2월22일 ‘산하대운 순례’를 떠난다. 그는 “산하대운은 기후위기 등 ‘지구적 변화’를 예측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지구를 위한 기도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화서원 인문학 운동의 또 다른 축은 <주역>이다. 2016년 세상에 선보인 <시로 읽는 주역>은 64괘가 가지는 의미를 자작시로 푼 책이다. 김 대표는 주역의 음양오행 우주론으로 세상의 변화와 개인 삶의 우주적 의미를 읽는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의 ‘즐거운 주역 놀이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된 청년 도반 7~8명이 곡성으로 이주해 함께 공부하고 있고, 30~40명의 평화 활동가들이 이화서원 연구원으로 연대하고 있다. 100여명의 후원자들이 이화서원 공부 공동체를 지원하는 든든한 힘이다. 김 대표는 “농촌으로 청년들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장년 세대가 후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덕경>도 김 원장의 사유 세계를 이루는 세 축 중 하나다.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2021)이라는 책은 노자를 세 나라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이화서원은 매달 한 차례씩 줌을 통해 한·중 시민들이 <도덕경>을 함께 읽는 공부 모임도 3년째 진행하고 있다. 김 원장은 “도덕경은 주역의 해설서였다. 급변하던 시대 변화를 읽기 위해 노력했던 수운 선생도 뛰어난 주역 해석가였다. 동학-주역-도덕경의 세 축이 모두 연결된 하나”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23년 계묘년의 세운으로 주역 64괘 가운데 ‘가인괘’(家人卦)를 뽑았다. 가인괘 중 효인 ‘재중괘’(在中饋)는 따뜻한 밥을 나누어 먹는 마음을 의미한다. 김 대표는 “새해엔 이웃과 따뜻한 밥을 나누는 위로와 치유의 기운이 사회에 퍼져나가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하고, 그 힘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사회를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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