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세법, 6·25때 근로기준법 …'찐 선진국' 도약 걸림돌

임성현 기자(einbahn@mk.co.kr)양세호(yang.seiho@mk.co.kr) 2023. 1. 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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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의 조건 '프레임 대혁신'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70년간 꿈쩍 않고 있다. 노동 형태가 다양해지고 산업구조도 급속한 변화를 맞고 있지만 구닥다리 한국 노동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갈수록 동떨어지고 있다.

일제 식민 수탈의 잔재로 1934년 제정된 상속세법은 역사가 80년이 넘었다. 그동안 20여 차례 개정에도 여전히 기업 발목을 잡는 형벌식 조세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14년 일제 치하에 도입된 인감제도는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없어진 인감은 아직도 '유령'처럼 한국 행정에 남아 있다.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한국을 가로막는 '주적'은 바로 낡은 구시대 프레임이다. 대표적으로 정치, 노동, 세제, 교육제도에 뿌리박힌 잔재가 한국 경제 전반의 효율성과 활력을 끌어내리면서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게 현실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5대 강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며 "가장 먼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시스템이 정비돼야 하고 법치주의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1일 매일경제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주요 5개국(G5) 경제 강국 도약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시스템은 '정치'와 '노조'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4%가 '정치 시스템 개혁'을 꼽았다.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치가 되레 갈등의 온상이 된 것이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87년 체제의 유산인 낡은 헌법을 개정해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선거구제 등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처지는 노동제도 개선'을 최우선 개선 과제로 지목한 응답자도 27%나 됐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이미 세계 10위인 한국이지만 노동시장 경쟁력은 좀처럼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한국의 노동시장 경쟁력은 주요 63개국 중 42위에 그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7달러로 조사됐다. OECD 회원국 38개국 중 29위에 불과하다. 노조의 잦은 파업에 따른 근로 손실 일수는 미국, 독일 등 G5 국가에 비해 5~6배 많아 생산성 향상은 '언감생심'이다.

반면 캐나다 리서치 업체 프레이저재단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전 세계 165개국 중 151위로 '꼴찌'에 가깝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한국은 대기업·중소기업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하다"며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들의 흐름과 정반대로 역주행하는 세금제도 역시 경제 강국 도약의 걸림돌이다. 국민은 최우선 개선 과제로 정치와 노조에 이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세제개혁'(10.9%)을 꼽았다. 특히 세제 분야에서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세제 변화(52.9%)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법인세(16.4%), 시대에 맞지 않는 과도한 상속증여세(14.6%) 등이 뒤이어 꼽혔다.

저출산 고령화로 갈수록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다. 국민은 교육 분야 잔재로 '창의교육 가로막는 주입식 수업방식'(36.7%)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장관은 "산업화 시대 특성이 아직도 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에 적용되고 있어 다양성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매일경제 의뢰로 모노리서치가 지난달 21~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으로 진행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09%포인트다.

[임성현 기자 / 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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