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익숙한 관행과의 결별
부처 이기주의 다 내려놓고
비상한 각오로 해법 찾아야
대통합 이끄는건 지도자의 몫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생존을 외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기업들이 내놓은 신년사를 보면 버텨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녹아 있다. 올해가 왜 힘들지는 모두가 안다. 고금리와 에너지대란의 충격에 이어 살 떨리는 경기 침체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는 해법은 익숙한 관행과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기존 사고의 틀에 갇혀서는 답을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과거와는 다른 접근법이 불가피하다.
말레이시아의 경찰 개혁은 고정관념을 깬 좋은 사례다. 거리에서 여성 보행자의 가방을 낚아채는 오토바이 도둑이 2009년에 기승을 부렸는데 말레이시아 경찰들은 인원 부족으로 인해 범죄를 좀처럼 줄이기 어려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컸던 때라 경찰 인원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었다.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저서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이 난제를 소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경찰 인력을 증원하는 대신에 다른 부처의 행정 직원 4000명을 경찰서로 전환 배치하는 묘수를 택했다. 그리고 각종 보고서 작성에 매달려 있던 내근 경찰 7400명을 순찰 업무에 투입시켰다. 원래부터 행정 업무에 능숙했던 공무원들은 경찰서의 문서 작업을 능숙하게 처리해냈고 다시 거리로 나간 경찰들은 소매치기범을 속속 잡아냈다. 정부는 수억 달러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놀라운 성과가 가능했던 건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인력을 과감히 재배치한 정부의 결단에 있었다. 다급하고 절실하면 기존 관행도 깨게 된다.
미래학의 대가 존 나이스비트는 그의 책 '미래의 단서'에서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는 첫 단계는 눈앞의 장애물부터 제거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국가 부흥은 과거의 악습을 일소할 때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집권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가 올해 노동·교육·연금 개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하나만 제대로 해내도 대단한 성과인데 3가지 해묵은 과제를 한꺼번에 꺼내 들었다. 기업 경쟁력 제고와 투자 확대를 위한 '법인세율 3%포인트 인하'도 거대 야당의 발목 잡기로 좌초된 판에 노동계의 극렬한 저항을 뚫어낼 재간이 있을까.
3대 개혁을 힘없이 주저앉히고 2024년 총선을 맞이하는 게 야당이 원하는 그림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통 큰 제스처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예상을 뛰어넘는 '낮고 겸허한 자세'로 3대 개혁의 동참을 호소하는 것이다.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의 부활을 이끈 빌리 브란트 총리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했다.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계 폴란드인을 추모하기 위해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 유명한 브란트의 '무릎 꿇기'다. 겨울비로 젖은 바닥 위에 무릎을 꿇은 브란트 총리의 예상 밖 행동에 독일인의 자존심은 꺾였지만 세계인들은 그의 진정성을 받아들였고 용서와 화해의 물꼬가 터졌다.
브란트 총리의 당시 사례가 지금 한국의 상황과 같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대의를 지향하는 지도자의 진정성이다. 검찰총장 출신의 원칙주의자인 윤 대통령이 저자세를 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전임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 중이고 사사건건 여야가 충돌하는 최근 양상을 감안하면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게 탐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과의 공조는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3대 개혁의 안착과 한국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민주당 지지층까지 설득해내야 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가뜩이나 국력을 한데 결집해도 버텨내기가 힘들 거대 위기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전략과 결연한 실행이 계묘년을 맞이하는 윤석열 정부의 다짐이어야 한다.
[황인혁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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