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부끄러움 아는 새해가 되었으면
"누가 나를 심판하는가? 내가 바로 정의다." 유명 게임 '디아블로' 속 등장인물 '정의의 천사' 티리엘이 한 말이다.
6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한 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지난달 28일 부결됐다. 녹음 파일 등 다수 증거가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수당인 야당은 '방탄국회'의 오명을 쓰는 길을 택했다. 오히려 제1야당의 대표는 "검찰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통령 선거에서 댓글 조작을 한 혐의로 실형을 확정받은 또 다른 야당 정치인은 신년 사면으로 출소하자 "원치 않은 사면이었다"고 밝힌 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방문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부정을 저지른 정치인치고 사뭇 당당한 태도였다.
일부 진보 성향 정치인들이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거나 범죄 사실이 상당 부분 소명돼도 떳떳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가 바로 정의'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시절부터 자신은 정의의 편이었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범죄는 저질러도 된다는 생각이다. 부하 직원을 성희롱해도, 위안부 후원금을 유용해도, 자녀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입시 비리를 저질러도 나와 내 편이 한 일이면 정당한 것이 된다.
이런 자의식 과잉은 자신의 범죄를 들춰낸 사회 시스템을 악마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수사기관이 거짓 혐의를 만들었고 법원도 이에 동조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언론 보도를 정부가 통제했고 대통령이 법관과 국회의원까지 임명했던, 유신시대 때나 통했을 논리다. 최근 제1야당이 당대표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사 16명의 신상을 공개한 것도 이런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진 결과다. '정의의 천사'인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사를 국민들이 공격해줄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2022년 한국 사회를 표현한 한자성어로 잘못을 해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고 한다. 새해에는 잘못이 드러나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회 분위기가 회복되길 바란다. '정의의 천사' 같은 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형주 오피니언부 kim.hyungj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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