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사진가 김중만, 금강산 찍는 꿈 품은 채 떠났다

노형석 2023. 1. 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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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폐렴으로 별세…향년 68
김중만 사진가. 2015년 11월 <한겨레> 인터뷰 당시 서울 청담동 스튜디오에서 찍은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한국 연예계 스타들의 초상사진과 독도, 아프리카, 나무, 꽃 등을 담은 정물·풍경사진 연작들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사진가 김중만씨가 3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

유족들은 김 작가가 최근 폐렴에 걸려 치료를 받다 이날 오전 숨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고인은 스타 초상사진 명장으로 첫손에 꼽히는 작가였다. 배용준, 장진영, 비, 전도연, 이병헌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대표 초상사진들을 찍었다. 그가 촬영한 연예인들만 100명을 넘는다. 특히 요절한 배우 장진영(1972~2009)을 머리카락 흩날리는 처연한 자태로 포착한 사진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기억된다.

고인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정부에서 파견한 국외 공공의료 전문 의사였던 부친을 따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가서 생활하다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으로 유학했다. 애초 서양화를 공부했으나 학교 친구가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는 작업을 도와주면서 매혹된 것이 계기가 돼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5년 프랑스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1977년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은 그는 이후 40여년간 상업·순수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행로를 밟아왔다.

인생사 자체도 파란만장했다. 1979년 귀국한 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연예계 스타들의 초상과 패션 사진을 찍어 상업작가로 유명해진 그이지만, 1985년 강운구 사진가 주선으로 귀국전을 차렸다가 사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된 뒤 2년 넘도록 돌아오지 못했던 적도 있다. 1995년에는 마약 복용을 의심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을 유랑하는 삶을 이어가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괴물> <타짜> <달콤한 인생> 등 영화 포스터 작업에도 참여했다. 1998~99년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뒤 국내 작가 중 최초로 아프리카 동물 사진 전시회를 연 데 이어 사진집 <동물왕국>을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006년 고비사막 기행을 다녀온 뒤 상업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공표한 뒤로는 독도 연작(2012~14)과 둑방길 나무 연작(2008~18)으로 2014년과 2018년 사진집 발매과 대형 전시회를 잇따라 열면서 정물·풍경 등 순수예술 사진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015년 미술 출판의 명가 열화당에서 2년간의 준비 끝에 낸 문고본 사진집 <김중만>은 판형은 작지만, 그의 작업세계를 망라한 결정판으로 꼽힌다. 1975년 프랑스 니스에서 여성들의 관능미를 포착한 ‘섹슈얼리 이노선트’ 연작을 시작으로, 80년대 국내에서 강제 추방돼 머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잿빛 일상 기록 연작, 90년대 말 아프리카 대초원의 야수와 함께한 생태 작업 등을 두루 망라해 생전 그가 ‘가장 염원하며 공들인 사진집’이라고 기뻐했던 성과물이었다.

최근 수년간 몸이 불편해졌지만, 지난해 1~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사진 축제 ‘브뤼셀 포토 페스티벌’에도 나무 연작들을 출품해 그의 근작들이 전시 대표 포스터 배경 작품으로 쓰이는 등 마지막까지도 작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고인은 상업사진의 대가였지만, 기존 사진계에서는 그의 작품세계를 폄하하는 시선도 상존했다. 작가 또한 생전 이런 사진계의 선입견을 의식한 듯 2000년대 이후 한반도 자연문화유산의 진경을 자신의 미학으로 오롯이 포착하는 작업에 몰두하며 작업세계를 넓히는 데 골몰했다. “한국의 자연을 찍으면서 비로소 나의 정체성을 찾았고, 이 땅 곳곳에 깃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빠지게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고인은 18세기 그림 거장 겸재 정선이 묘사했던 북한 금강산 진경을 사진 미학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필생의 과제로 준비해왔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한 채 삶을 등졌다.

유족으로 아들 김내오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 발인은 3일 오전 7시. (070)7816-0233.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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