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후진국 3…공정위의 가당찮은 ‘노조 때려잡기’

박현 2023. 1. 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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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2월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화물연대의 조사방해 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침햇발] 박현 | 논설위원

공정거래위원회는 흔히 ‘경제 검찰’로 불린다. 1980년 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에 따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공정위가 하는 일을 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대기업보다는 화물연대나 건설노조 등 ‘노조 때려잡기’에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공정위가 노동조합 활동을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한다는 얘기는 기자 생활 30년 하면서 이번에 처음 들었다. 실제로 화물연대가 2002년 설립된 이후 20년간 파업을 했지만 공정위가 강제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파업이 끝났는데도 조사를 계속하는 집요함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부당한 담합을 막는 게 주목적인 공정거래법을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에 적용한다는 건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를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드는데, 대부분 지입제로 일하는 화물기사들은 명의만 사업자이지 실상은 특수고용노동자(특고)다. 화주인 기업이 운임을 비롯한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노동법상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자 각종 특고를 양산해놓고 인제 와서는 이들도 사업자이니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근대 반독점법의 효시는 1890년 제정된 미국의 셔먼법이다. 당시 석유·철도·철강업 등에서 독점의 폐해가 만연하자 만들어졌는데, 이때는 노조 파업도 기업의 담합과 성격이 유사한 것으로 봤다. 이후 이 조항이 노조 탄압용으로 악용되자 1914년 클레이턴법을 제정해 이를 수정했다. 이 법은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나 상업적 거래의 품목이 아니다”라며 노조 활동을 반독점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공정위는 미국 기준으로는 1세기, 한국 기준으로도 40년을 거슬러 반독점법을 노조에 적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활동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다면 다른 법률로 처벌하면 될 일인데 굳이 공정거래법까지 동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것도 법을 좀 안다는 이들이 권부 핵심을 장악한 현 정권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게 더 고약하다.

이런 행태는 윤석열 대통령의 왜곡된 노동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조 부패’ 척결을 위해 노조 재정을 들여다보겠다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노조의 생명인 ‘자주성’은 헌법도 보장하고 있는데 이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이를 상장회사들처럼 일반에 공시까지 하겠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주주로 삼는 상장회사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노조는 애초에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해 ‘소수의 귀족노조가 노동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노노간 착취 구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 어떻게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월 300만~400만원 버는 화물노동자들로 구성된 화물연대가 귀족노조인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근본적으로 대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비용 절감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주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현실 인식이 잘못돼 있는데 올바른 처방이 나올 턱이 없다. 최근 행태는 1980년대 군사정권의 강압적 태도를 연상케 한다. 당시 군사정권은 전투경찰과 백골단(사복 체포조)을 동원해 파업을 강제 진압했다. 현재 검찰정권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 형식논리를 내세워 옭아맨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 비타협적으로 제압하려는 태세는 유사하다.

윤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가 우리 사회에서 시대적 의미를 가지려면 ‘재벌-관료 유착’을 구심점으로 한 기득권 카르텔 구조를 깨뜨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 노조 제압에 나서고 있는 공정위 관료들만 해도 퇴직 뒤에는 대기업이나 로펌에 재취업해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이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공정위는 남소 우려를 제기하며 전속고발권 폐지에 반대하는데, 진짜 속내는 자신들의 권한이 약화될 수 있어서다. 또한 주요국에서 도입돼 소비자 권익 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집단소송제의 확대 논의도 대기업 로비와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로 10년 넘게 공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업 등에서도 만연해 있는 게 202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기업과 대형 금융회사의 로비와 관료들의 부당한 지대 추구 행위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자유’ 시장경제를 꽃피우게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개혁의 주 대상은 재벌·관료를 중심으로 한 특권층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주요국들은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 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특권층의 지대 추구 행위들이 많이 걸러졌지만, 고속성장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다시 말하건대, 지금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가 필요한 이들은 재벌·관료·부유층이 아니라 바로 민초들이다. 새해에는 윤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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