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적’ 못 박아야 정신무장?...MZ세대 장병은 달랐다[문지방]
軍 수뇌부, 장병 정신무장 우려하지만
우리군 정신전력지수는 매년 높아져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
2016년 국방백서
'북한=적'이라는 표현이 이달 발간할 '2022 국방백서'에서 6년 만에 부활할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 화해·평화 무드가 조성됐던 문재인 정부 때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표현이 빠진 대신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이 우리의 적'이라고 썼었는데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채 대화하자고 손 내미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죠.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초 페이스북에 "주적은 북한"이라는 다섯 글자 메시지를 올리며 향후 행보를 암시했습니다. 예상대로 당선 뒤인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임을 국방백서 등에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못 박았죠.
국방백서를 고치기 전 우리 군이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장병 정신전력 교재에 '북한군과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적'이라는 내용을 명시한 건데요. 군복무한 분들은 매주 수요일 했던 '정훈교육' 기억하시죠? 바로 그 정훈 교재에 표기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 "주적은 북한"→국방백서·장병 정신전력 교재 개정
이처럼 북한을 적이라고 명토 박는 건 정신전력 중 '대적관'(상대방을 적으로 명확히 인식하는 것)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입니다. 군 수뇌부들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장병들은 물론 국민들의 대적관도 약화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자유로운 성향이 강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세대) 장병과 초급 간부들의 정신무장이 덜 됐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인사 청문회 직전인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장병들의 대적관 약화가 경계작전 태세의 이완으로 이어졌다"며 "대적관 중심으로 교육체계를 정립할 것"이라고 말했었죠. 우리가 누구와, 왜 싸울 준비를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넣어놔야 기강 해이 탓에 발생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지난해 1월 1일 강원 동부전선에서 30대 탈북민이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어 재입북하는 사건이 발생해 군이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특히 우리 군 최고위층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며 정신전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했습니다. 정규군만 90만 명으로 세계 2위 수준 군사력(글로벌 파이어 파워 평가기준)을 갖춘 러시아가 정규군 36만 명이 전부인 우크라이나에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로 군인들의 정신 무장 차이를 꼽은 것이죠.
두 나라의 전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주민을 나치 추종자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시작됐는데요. 사실 러시아 내부에서도 그 의도를 이해 못 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었습니다. 적 개념이 불명확했다는 뜻이죠.
정상근 국방정신전력원 박사는 "민주국가가 전제주의적 국가보다 승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 있다"면서 "민주국가는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전쟁 자체를 벌이기 어려운 데다 침공당해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군인은 물론 국민들도 ‘우리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적극성을 띤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에서 '과'로 축소된 정신전력 담당 조직 "국 단위로 재편돼야"
이처럼 정신전력은 현대전에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다만 군 수뇌부가 느끼는 것처럼 우리 장병의 정신전력이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볼 근거는 명확하지 않은데요. 오히려 더 단단해졌음을 보여 주는 지표는 있죠.
국방부가 2016년 이후 매년 측정하는 '장병 정신전력지수'라는 게 있습니다. 대적관, 국가관, 안보정신, 사기, 단결력 등의 요소를 더해 장병들의 정신전력 수준을 수치화한 것인데요. 2016년 77.1이었던 지수는 △2017년 79.8 △2018년 80.2 △2019년 81.2 △2020년 81.9 △2021년 82.3으로 매년 증가했죠. 한마디로 정신무장이 더 단단해졌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군 관계자는 "대적관은 최근 다소 약화했지만 정신전력의 다른 요소들이 강해져 전체 지수가 향상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한=적'으로 명시하는 효과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우선 찬성 측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우리 군인에게 북한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대적관이 흐트러졌다고 주장합니다. 5년 전 정신전력 교재 집필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정부 측에서) 교재에 ‘북한이 도발했다’거나 ‘침략했다’는 내용은 넣지 말아달라거나 ‘킬체인’(우리 군의 선제타격 전략) 관련 서술은 아예 빼달라고 해 초고의 70%를 들어냈다”고 말했습니다. 자칫 남북관계를 망칠 수 있으니 우리 장병의 적개심을 들끓게 하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는 건데요. 정치가 안보를 짓눌러 제 역할을 못 하게 했다는 설명입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군인들에게는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북한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게 정신전력 강화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북한=적'이라는 표현을 지운 것도, 반대로 윤석열 정부 들어 이를 되살린 것도 대적관 강화 효과 등을 제대로 분석해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죠. 군사안보적 요인을 고려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조치라는 건데요. 한 군사 전문가는 "우리 군의 정신전력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구체적 정보는 없고, 연구도 활발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더 심각한 건 국방부의 정신전력 담당 조직이 과거보다 축소됐다는 겁니다. 3성 장군을 지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과거에는 '투스타'(소장)가 이끄는 국방부 정훈국이 정신전력 문제를 담당했는데 지금은 정신전력문화정책과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쪼그라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신전력을 국 단위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국방백서나 장병 정신전력 교재에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MZ세대의 특징에 맞춰 우리가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겁니다. MZ세대는 스스로 이해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지만 납득이 되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과업에 임하는 세대이니까요.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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