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걸이 승 맛본 페퍼저축은행, '패배 안주 위기'에서 첫 발 떼다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우리 멤버들이 패배하는 것에 익숙해질까봐..."
지난 달 31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3시즌 도드람 V-리그' 3라운드 여자부 경기에서 페퍼저축은행이 한국도로공사를 세트스코어 3-1(25-21, 22-25, 25-23, 25-16)로 완파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개막 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페퍼저축은행은 2022년의 마지막 날에 비로소 승점 3점의 단 열매를 맛봤다. 직전까지는 개막 17연패를 기록했다.
페퍼저축은행의 시행착오는 길었다. 직전 시즌에는 총 31경기 중 3승 28패를 기록했다. 이 중 2승은 당시 내홍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시즌 초반과 후반에 한번씩 따왔다. 나머지 1승은 하위권을 맴돌던 흥국생명에게서 리그 종료 직전 얻어냈다.
그러나 올 시즌은 '한 번쯤 해볼'만한 상대조차 없었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김연경이 복귀하며 현대건설과 본격적인 선두탈환권에 들어섰다.
내홍 이후 김호철 감독을 영입해 팀 분위기를 안정화 시킨 기업은행, 강소휘의 기세가 올라오며 순식간에 3위로 박차고 올라간 GS칼텍스, 막강한 엘리자벳의 공격화력이 버티고 있는 인삼공사 등 모두가 1~2점차로 순위권 경쟁을 시작했다.
반면 페퍼저축은행은 시즌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부터 얕은 가용선수풀과 부상에 허덕였다.
미들블로커 하혜진은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확정됐다. 더불어 아웃사이드 히터 지민경과 신인 최대어 미들블로커 염어르헝이 무릎 부상 및 수술로 인해 올 시즌은 코트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기존 세터였던 구솔이 미들블로커로 옮겨가는 등 고육지책을 감행했다.
사실상 팀은 이한비, 박경현, 최가은, 서채원, 이고은, 문슬기, 김해빈, 박은서 등 10명 근처의 선수들이 백업없이 올 시즌을 이끌게 됐다. 외인 1순위인 니아 리드를 영입했으나 늦은 입국으로 개막 직전에 투입되어 호흡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었다.
일단 공격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멤버들은 사실상 모두가 포지션을 떠나 공수겸장이 되어야만 했다. 이 중 중원 최가은의 성장세가 눈에 띄었지만 팀 전력 자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주장 이한비는 잔부상으로 신음했지만 빠질 수 없었고 박은서와 서채원도 마찬가지였다.
이현이 원포인트서버로 역할을 전환한 가운데 주전 세터로 영입된 이고은이 코트를 지휘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리시브가 불안정한 바람에 이고은 역시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몸까지 굴려 디그에 적극적으로 나서다보니 체력 고갈과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박사랑이 백업으로 대기했지만 한참 부족한 상황이었다.
10연패를 기록하는 날, 김형실 전 감독이 자진사퇴하며 코치였던 이경수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굳어진 얕은 선수풀은 손 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대행은 그간 흔들렸던 리시브와 이단연결을 주목했다. GS칼텍스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오지영을 영입하며 팀이 갈구했던 '리더'와 수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팀이 16연패 그늘에 깊이 빠져있던 상황이었다.
이 대행은 무엇보다 팀이 '패배주의'에 잠기는 것을 염려했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패배가 길어지면 지는 것에 안주할까봐 걱정된다"고 전한 바 있다.
오지영 영입은 빠르게 빛을 발했다. 수비가 크게 안정화되며 이고은이 토스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덩달아 공격이 상승세를 탔다. 니아 리드가 시즌 개인 최다 득점인 38득점(공격성공률 54.29%)으로 활약했고 이한비가 17득점으로 뒤를 받쳤다.
이는 창단 최초로 도로공사를 꺾는 쾌거로 이어졌다. 직전시즌까지 합하면 도로공사에게는 상대전적 8패를 기록 중이었다. 이 날 오지영은 리시브 21개 시도에 15개 정확, 디그는 26개 중 21개 성공으로 팀의 뒤를 지켰다.
2승은 아직 기약할 수 없다. 팀의 분위기는 막 올라오기 시작했을 뿐 완벽히 날개를 피지 않았다. 그러나 승리의 쾌감을 한번이라도 봤다는 것 자체가 호재다.
이번 승으로 단 맛에 또 한번 눈을 뜬 페퍼저축은행이 올 시즌을 어떻게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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