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교통은 지하로, 지상은 국민에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철도와 도로는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이어줌으로써 사람과 물류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지역 간 사회적·문화적 격차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철도와 도로는 도심부를 가로질러 도시 내 경계와 단절의 요소가 됨으로써 도시핵심부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공사와 운영 과정에서 소음과 진동, 분진 등을 유발하여 정주 여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발전과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철도와 도로가 의도치 않게 유발한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철도와 도로의 지하화' 사업이다. 도시 상부에 자리한 철도와 도로를 지하로 내려서 상부 도시 공간 구조를 새롭게 설계해 도시 공간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하화 사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되고는 했다. 막대한 사업비로 경제성이 충분하지 않고 여러 가지 제도적 제약으로 기존 철도·도로 상부 부지 활용이 어려우며 지하 공사에 수반되는 기술적 어려움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난제에 대한 해답은 미국 보스턴 빅디그(Big Dig), 시애틀 SR99 프로젝트와 프랑스 리브고슈, 독일 슈투트가르트21 프로젝트 등 선진국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반 시설의 지하화를 통해 도시공간을 복합적·입체적으로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도시 위의 도시' '1세기에 한 번'이라는 슬로건이 이들이 추구하는 미래형 도시공간의 지향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지하화를 재평가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함으로써 철도와 도로의 지하화를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지상 철도와 고속도로 노선의 지하화는 지하화에 따른 편익보다 지하화에 소요되는 비용이 과다해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그동안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하화는 단순히 소요되는 비용과 경제적 편익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즉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 번째 문제인 경제성 부족은 지하화를 통해 새롭게 활용 가능하게 될 기존 철도·도로 시설 부지를 입체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도시를 재구조화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즉, 도심에 새롭게 확보되는 부지를 주거용지나 상업용지로 재활용함으로써 경제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도심 내 단절된 공간이 통합 공간으로 재탄생됨으로써 지역주민이 얻게 되는 사회적·문화적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국유재산인 철도·도로 시설의 상부 개발, 매각 등 활용이 엄격히 제약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제도적으로 차근차근 풀어갈 계획이다. 정부는 철도시설 부지 등 국유재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개선, 융·복합적인 도시 공간 조성을 위한 도시계획 혁신방안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 문제인 지하 건설공사의 기술적 어려움은 첨단화된 기술로 극복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터널은 발파공법으로 건설해 주거지 등 도시지역에서는 소음·진동에 따른 갈등과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해왔는데, 이제는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는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TBM 공법은 이미 GTX-A 구간과 수도권 제2순환선(김포-파주) 한강터널 공사에 적용되고 있다. TBM 공법은 다수의 디스크커터를 장착한 커터헤드를 회전시켜 암반을 압력에 의해 파쇄하는 공법으로, 발파공법에 비해 소음·진동이 거의 없고 굴착 속도가 높아 공사 기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정부는 국내 TBM 공법 경쟁력을 높이고 한국형 중·대단면 터널굴착장비(K-TBM) 연구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대규모 지하화 사업이 착수되는 시점에는 K-TBM 활약도 기대해 볼 만하다.
도시성장기에 지역과 국가발전을 견인해온 철도와 도로가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따라 도시 아래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남은 자리에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 도시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철도와 도로 지하화를 계기로 도시공간구조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023년은 국가 차원 메가 프로젝트로 '교통의 지하화, 국토의 입체화'의 원년이 될 것이다. 도시 공간구조의 혁명이 시작되는 해가 될 것이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주민들과 소통·협력이다. 추진과정에서 주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경청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첫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2022년 5월 16일 취임했다. 주택공급 로드맵 발표 등으로 최우선 과제였던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다. 현장 행보는 독보적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장을 방문해 소통하고 점검하는 현장형 장관으로 불린다. 타 부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브리핑과 간담회로도 화제가 됐다. 원 장관은 사법·입법·행정을 모두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능력도 발휘하고 있다는 평이다. 최근에는 민관 원팀을 꾸려 제 2 중동붐을 일으킬 해외 수출 지원에 나섰다.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정부 부처 내 처음으로 모빌리티를 전담하는 국 단위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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