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들이다 끝난 ‘더 글로리’···복수한다며, 남자가 왜 거기서 나와[리뷰]

오경민 기자 2023. 1. 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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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어릴 적 학교폭력을 당한 문동은(송혜교)은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넷플릭스 제공.

김은숙 작가와 배우 송혜교의 첫 장르물로 기대를 모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부족하다. 집중이 될 만하면 끼어드는 로맨스가 복수극의 개연성을 해친다.

<더 글로리>는 학창 시절 박연진(신예은·임지연) 무리에게 극심한 학교폭력을 당한 문동은(정지소·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를 펼쳐내는 이야기로 소개됐다. 괴롭힘을 당하다 학교를 자퇴한 동은은 검정고시를 봐 교대에 진학한다. 이후 바둑을 배워 연진의 남편 하도영(정성일)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딸 하예솔(오지율)의 담임으로 부임해 평화롭던 연진의 일상에 파란을 일으킨다. 연진과 함께 자신을 괴롭혔던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최혜정(차주영), 손명오(김건우) 등의 약점을 잡아 이들을 압박한다.

그런데 복수의 대상을 궁지로 몰아가는 동은의 설계가 어딘가 허술하다. 연진의 딸 예솔을 향하는 듯했던 복수의 칼날은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예고편과 1화 등에서 강조한 대사로 예솔을 통해 연진에게 복수할 것처럼 경고한 동은은 8화에 이르자 다른 데 더 힘을 준다. 주변 인물들도 동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던 연진에게 일말의 불쾌감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동은은 여전히 연진에게 위협의 대상이나 적수는 아닌 듯 보인다.

‘복수자’여야 할 동은이 남자 주인공들 앞에서 자꾸 ‘연애 상대’로 기능하는 것이 극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동은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바둑을 가르쳐준 의사 주여정(이도현)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정은 영락없는 ‘백마 탄 왕자’다. 별 계기 없이 동은에게 빠져들고, 동은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는 적어도 파트1에서는 복수에 쓸모가 없다. 드라마는 건설회사 대표이자 바둑 애호가인 연진의 남편 도영과 동은 사이에도 묘하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의사 주여정(이도현)은 ‘칼 춤 추는 망나니’를 자처하지만 아직 ‘백마 탄 왕자’다. 그가 ‘망나니’가 된다면 오히려 캐릭터 붕괴가 아닐까. 넷플릭스 제공.

지난달 30일 공개된 파트1은 동은이 얼마나 심각한 폭력을 당했는지 보여주는 데는 성공한다. 고데(머리 인두)로 맨살을 지지는 장면 등이 극에 삽입돼 과도하게 폭력적·선정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교복 블라우스를 입은 동은의 가슴께를 보이게 할 목적으로 비를 맞게 하거나, 저항하는 동은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장면도 묘사된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맛 있는 대사’는 오히려 극의 분위기를 해친다. 진지하게 복수를 향해 달려가던 주인공이 주변 인물과 나누는 농담에서 조금의 쓴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들은 열연한다. 건조하고 처연한 송혜교의 얼굴이 반갑다. 동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정지소, 연진의 어린 시절을 맡은 신예은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서사 속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결국 뜸만 들이다 파트1의 전부인 8회가 끝이 난다. 파트2는 3월에 공개된다. 방송사는 물론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이 앞다퉈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공개하고 있는 중 시청자들은 파트2를 기다릴까.

연진(임지연)의 남편이자 건설회사 대표인 하도영(정성일)은 기원에서 만난 동은(송혜교)에게 끌린다. 2년 동안 연애하고 10년 동안 같이 산 아내 연진보다 방금 만난 동은의 말을 더 신뢰하는 듯하다. 넷플릭스 제공.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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