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재벌집 막내아들' 봤다면 무슨 생각 했을까

정철운 기자 2023. 1. 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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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특별한 세 가지 지점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한 장면.

“사람들 참 이상해요. 북쪽에서 김씨 부자가 권력을 세습하는 건 그렇게나 못 참아들 하면서, 남쪽에서 재벌 3세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건 왜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걸까요? 아니, 어차피 자격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송중기)의 대사다. 이 드라마는 몇 가지 지점에서 매우 특별한데, 그중 첫 번째는 경영권 세습을 대놓고 부정적으로 묘사한 이 드라마를 JTBC가 편성한 사실이다.

JTBC 대표이사 홍정도는 할아버지 홍진기, 아버지 홍석현으로부터 중앙일보JTBC 등 중앙그룹을 물려받은 '미디어 재벌' 3세다. 더욱이 홍석현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외삼촌이다. 드라마는 여러 측면에서 이병철-이건희-이재용을 떠올리게 했는데, 분명 삼성家에 우호적이진 않았다. 경영권을 세습한 사주의 방송사에서, 사주와 특수관계에 있는 또 다른 경영권 세습 재벌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주나 '일류기업' 입장은 개의치 않은 듯한 편성이었다.

이 드라마의 이례적 '금토일' 편성을 두고 드라마 업계에선 중앙의 자회사 SLL(옛 JTBC스튜디오)의 올해 매출을 높게 잡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있었다. SLL은 2024년 IPO(기업공개)를 예고한 상황인데, 시가총액 2조 원대의 스튜디오드래곤처럼 '대박'이 나려면 최대한 몸값을 높여놔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드라마 주인공이 누굴 떠올리게 하고, 누굴 풍자하는지 따위는 상관없다는 자세. '재벌집 막내아들'에 등장하는 재벌의 모습 그대로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한 장면.

“몸 조심하래이. 아무도 믿지 말고.” 수많은 명언을 남기고 떠난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이성민)이 진도준에게 던진 이 한마디에 이 드라마가 특별한 두 번째 지점이 있다. 2회부터 15회까지 진양철의 압도적 카리스마가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 가운데 가족 간 혈투는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무부장관 출신 홍진기의 맏딸 홍라희,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3남 이건희가 혼인하며 한 때 혼맥으로 돈독한 관계를 이어간 두 집안처럼 말이다.

2016년 JTBC의 국정농단 보도 이후 두 집안은 사실상 갈라선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이재용은 구속됐고, 홍석현은 삼성생명·중앙일보 집무실을 떠나야 했다. 연평균 100억 규모였던 JTBC 삼성 광고는 그해 10분의 1 이하로 급감했다. 삼성 광고 분류 대상에서 A등급이었던 중앙일보가 한겨레경향신문과 같은 C등급으로 이동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복수의 JTBC 기자들에 따르면 삼성 광고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JTBC가 삼성에 '한 방 먹인' 느낌도 있다.

시사저널은 2017년 4월 기사에서 “탄핵 정국 초기 삼성 주변에선 중앙일보JTBC 쪽의 보도 공세에 분노한 이재용 부회장이 외가에 서운함을 느낀 나머지 모친인 홍라희 전 관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며 “재계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홍씨 가문이 삼성을 접수하려 한다'는 근거없는 소문마저 나돌았다”고 보도했다. 결국 드라마 성공의 원동력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극사실주의'였던 셈이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한 장면.

그래서 시청자들은 마지막 16회에 분노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감옥에서 나온 이재용은 윤석열정부 들어 사면된 뒤 회장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연말 이명박 전 대통령도 사면 복권시켰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16회의 어설픈 '권선징악'은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이었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세 번째 지점은 시청자들이 정리해고에 눈 깜짝하지 않는 진양철에 분노하지 않고 황당하게 무너진 순양가(家)의 결말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내가 포기한 건 수능 하루, 대학 4년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 나에게 허락된 선택은 최선을 다해 더 가난해지는 길뿐이었다.…시간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그런 것처럼.” 윤현우(송중기)의 독백처럼 우리는 '인생 2회차'가 아니면 답 안 나오는 현실에 놓여있다. 시청자들은 회장 사모님 비데를 설치하던 윤현우가 진도준의 몸을 빌려 미래를 보는 재벌집 막내아들로 인생 2회차를 사는 모습에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

“스스로 내려올 수는 없을 겁니다. 본인 힘으로 올라간 자리가 아니니까.” 진화영(김신록)을 향해 폼나게 독설을 뱉던 진도준은 꿈처럼 사라지고 윤현우 인생 1회차만 남았다. “투기성 주식투자에 1400억을 날리는 동안 37개 사업체가 연쇄 도산했고 946명이 직장을 잃었어요.…화해와 용서요?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게, 그게 회복적 사법인가요.” 정의를 향한 검사 서민영(신현빈)의 '갈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오히려 결말이 꿈같고, 자본을 향한 진양철의 독기는 차라리 현실적이어서 체념 섞인 공감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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