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95세로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 장례미사 주재
건강 악화 현 교황 사임에도 관심 집중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은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처음 알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8일 수요 일반 알현 말미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매우 아프다”며 신자들에게 기도를 호소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이후 이틀간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송년 미사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에 대해 “매우 고결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며 “그를 교회와 세계에 선물한 신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 소식이 발표된 후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그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였던 거인을 잃은 슬픔에 잠긴 천주교인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는 믿음과 원칙에 따라 성당에 평생 헌신한 저명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모든 이에게 평화와 선의를 전파하고, 성공회와 가톨릭 간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끊임없이 애썼다”고 말했다.
“탁월한 신학자이며 지식인이고 보편적 가치의 옹호자”(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더 형제애가 있는 세상을 위해 영혼과 지성을 다해 분투한 분”(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신앙과 이상의 거인”(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교황청은 신자들이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내년 1월 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돼 이후 사흘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공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장례 미사는 1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직접 주례한다. 현 교황이 선종한 전 교황의 장례를 직접 주재하는 것이 처음이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를 반영하듯 교황청은 장례 미사에 이탈리아와 베네딕토 16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장례 미사 뒤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 소식이 알려진 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주변에는 전 세계 취재진과 추모객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교황청은 오후 4시 조기를 게양하고 조종을 울렸다.
그의 출생지인 독일 생가에도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생가와 베네딕토 16세가 세례를 받은 성당 밖에는 바티칸 깃발 위에 검은 리본이 걸렸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보수적 신학자로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1977년 뮌헨 대교구 교구장 추기경이 된 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해 바티칸에 입성했다. 교황이 된 것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힘이 컸다.
라칭거 추기경은 2002년 만 75세가 됐을 때 은퇴를 희망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더 늙은 나에게 너무 필요한 존재이기에 안 된다”며 오히려 라칭거를 추기경 회의 대표로 임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에서 라칭거 추기경이 3분의 2를 득표할 수 있었던 데는 추기경 회의 대표라는 자리가 크게 작용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제265대 교황직에 오른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나이가 78세로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최고령 교황이자,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으로 주목받았다.
베네딕토 16세는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세속주의에 맞서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데 힘썼다. 동성애에 대해 “본질적인 도덕적 악”이라고 규정하는 등 타협을 거부하는 강고한 보수적 발언과 행보로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해 대중적인 인기는 적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가톨릭교회를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반발을 낳았다. 특히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한 가톨릭 주교를 복귀시킨 일은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일은 베네딕토 16세가 독일인이고, 젊은 시절 나치의 청년조직인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다는 점과 결부해 더욱 논란이 됐다.
그의 재임 기간에 사제들의 성추문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며 분노와 환멸로 신자들이 대거 떨어져 나갔고, 그로 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사임 직전 해인 2012년엔 수행비서이자 집사로 지낸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교황청 내 부패와 권력 투쟁을 보여주는 내부 편지와 문서를 유출해 베네딕토 16세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이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더는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할 힘이 없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명예 교황’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후임 교황에게 무조건 순명하겠다고 언약한 바 있다. 그는 사임 이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시국 내 한 수도원에서 지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몰두해왔다.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故) 김수환 추기경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뮌스터대에 교수로 발령받아 교회 쇄신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을 때 수강생 중 한 명이 김수환 학생신부였다. 김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즉위 미사 때 추기경단 대표로 순명 서약을 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2월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2006년 11월에는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했고, 2007년 2월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 접견 후에는 친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베네딕토 전 교황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김수환 추기경의 안부를 물으며 “뮌스터대 시절 그가 독일어를 잘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그 학생을 통해서 한국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9년 7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다. “과거 분단국 출신인 베네딕토 16세가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희망한다”며 방한을 초청하기도 했다.
한편 베네딕토 전 교황의 선종으로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에도 관심이 쏠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선출된 후부터 베네딕토 교황처럼 사임하는 교황이 될 거라고 언급해왔다. 악화하는 그의 건강 상태가 영향을 미쳤다. 교황 선출 10년인 오는 3월 13일을 전후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