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뇌가 뛴다]③한국의 플라스틱 흐름을 추적하는 여성과학자

최정석 기자 2023. 1. 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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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아버지 영향 받아 건축학자 꿈꿔
환경 연구자 길 선택...미국·콜롬비아 누벼
“산업생태학, 경제·환경 모두 지키는 학문”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1983년생이다.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생은 아직 젊은 실무진 축에 속하지만, 과학계에선 위상이 남다르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는 연구자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로 불린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들이 자신의 핵심 연구를 처음 시작한 평균 연령이 37.9세로 나타났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기초 과학과 공학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제2의 허준이’를 넘어서 한국의 첫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 그리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가 이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지난 2015년 1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전에 없던 ‘순환경제 패키지(Circular Economy Package)’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담은 제안을 내놨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20년 3월에는 ‘신순환경제 실행계획’을 공개했다.

순환경제는 재활용이나 재사용 방법을 활용해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회 경제 시스템을 목표로 한 개념이다. 친환경이란 개념이 그간 산업 발전이나 경제 성장과 충돌하는 면이 있던 점에 반해 순환경제는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만 소비되는 자원을 아껴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같은 방법을 적극 활용하는 경제다.

지난 29일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건물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박주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최정석 기자

박주영(41)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순환경제라는 개념이 나온 배경을 ‘생존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지방정부협의회(ICLEI)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전 세계 경제에서 쓰인 화석연료, 철 등을 포함한 전체 자원은 총 1조60억t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재활용된 자원은 8.6%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한 번 쓴 자원을 다시 쓰지 않고 그대로 소비해버리는 방식이 현재 세계 경제의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남은 폐기물은 고스란히 인류 생명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환경오염 영향으로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하면서 지구의 생물다양성은 큰 위기에 빠졌다. 물, 공기, 토양을 정화하고 기후를 조절하며 생명체에 먹이를 제공하는 등 생물다양성과 직결돼있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박 교수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이 분야에 내 역량을 쏟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건축업계 종사자이던 아버지 영향으로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에 입학해 건축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건축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던 중 환경 동아리에 들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박 교수는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함께 공부한 같은 학번 동기로는 최수연 네이버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박 교수는 대학원에 진학해 오염물질 처리 분야 연구로 2006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에서는 다시 한 번 전공 분야를 ‘산업생태학’으로 바꿨다.

산업생태학은 각종 산업을 자원 채취, 제품 생산, 사용, 폐기 등 단계로 구분한 다음 각 단계에서 자원이 얼마나 쓰이고 오염물질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산업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흐름을 파악하면, 단계별로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순환경제가 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학문이라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유럽연합이 처음 순환경제 개념을 내놓은 2015년을 기점으로 여러 국가 정부와 연구기관, 기업들이 산업생태학 연구자들을 찾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한국형 K-순환경제 이행계획’을 수립했다. 국가통합자원관리시스템(K-MFA)을 구축해 산업에서 쓰이는 자원의 이동 흐름에 대한 분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설립 이후 120여년만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교수에 임용됐다. 박 교수 연구팀은 지난 1982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산업계에서 플라스틱이 어디서 얼마나 생산된 뒤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나 폐기됐는지, 그 중 재활용은 얼마나 됐는지를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재활용을 비롯한 환경친화적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물질흐름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지난 29일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건물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지난 29일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건물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박주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최정석 기자

-‘산업생태학’은 어떤 분야인가.

“산업에 쓰이는 여러 자원의 생애주기와 거기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수준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산업생태학 관점에서 건축 산업을 연구한다 해보자. 그럼 일단 건축 산업이 크게 어떤 단계들로 이뤄지는지 나눠야 한다. 건축 산업은 5개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건축자재 생산, 건축물 제작, 건축물 사용, 건축물 폐기, 재활용을 비롯한 사후처리 등이다. 이후에는 각 단계에 어떤 자원들이 얼마나 쓰이는지, 거기서 탄소를 비롯한 오염물질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계산한 뒤 정리하는 게 산업생태학에서 하는 일이다. 이런 연구를 ‘전과정평가’라고 부른다.”

-산업 자원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면 매우 어려운 분야일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다. 산업에 쓰이는 천연자원이나 각종 재료는 모두 사기업에서 만드는데 기업이 그런 데이터를 구축해놔야 한다고 법에 쓰여있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산업에 따라, 자원에 따라 데이터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아예 데이터가 없어서 직접 산업 현장까지 따라가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도 있다. 유럽 산업생태학자들은 건축 산업을 연구할 때 아예 드론으로 찍은 건축물 촬영본을 기반으로 어떤 자원이 얼마나 쓰였는지 직접 계산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영상을 활용하는 등 여러 첨단 기술들이 나오고 있다.”

-‘과학자’라는 이미지가 하는 일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실험실이나 연구소보다는 산업 현장이 더 친숙하다는 느낌도 있다. 산업생태학자들은 전부 ‘육체파 과학인’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업종에 가까운 면도 있다.”

- 올해 초 ‘한국의 2017~2019년 플라스틱 물질흐름분석’이란 논문을 냈다.

“쉽지 않았다. 플라스틱도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다. 종류도 많고 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재료도 여러가지다. 재료에 따라 탄소를 비롯한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수준도 다르다. 결국 플라스틱 한 종류가 생산·가공을 거쳐 소비되고 버려져서 오염물질이 얼마나 나오냐를 다 분석하는 데만 4700여개의 데이터를 쓰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은 몰라도 데이터 수집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모두 그렇지만 산업생태학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움을 참고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나.

“스스로 재미를 느낀다는 점이 가장 크다. 물론 산업 현장 곳곳을 다니며 데이터를 직접 모으는 건 어렵지만, 그 데이터를 분석해 하나의 완전한 도식을 그려내는 순간 희열이 엄청나다. 신기하고 재밌다. 그 맛에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997년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한 과학 실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주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지는 않다. 과학에는 관심이 많긴 했다. 초등학교 때는 우수과학어린이로 뽑혀 과학기술처장관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는 한 과학실험 프로그램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그때 가장 관심있던 분야는 건축학이었다. 아버지가 건축 업계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항상 그 모습을 옆에서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로도 그 쪽으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건축이 적성에 안 맞았다. 1학년때 그걸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일찍 눈치채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진로를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던 때 들어간 게 환경 동아리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환경 관련 스터디를 하는 과정에서 문득 이 분야를 깊게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경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석사 전공도 산업생태학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석사까지는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런데 문득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걸로 환경오염을 크게 막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건 자원 채취·가공, 제품 생산, 사용, 폐기 등 산업을 구성하는 여러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단계다. 그런데 환경오염을 더 크게 줄이려면 오염물질 처리를 넘어 산업의 모든 과정에서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박사 때 전공을 산업생태학으로 바꾸고 미국 예일대에 입학해 산업생태학 공부를 시작했다.”

-박사 유학 이후 바로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산업생태학 연구에 들어간 건가.

“첫 직장은 한국도 미국도 아닌 남미의 콜롬비아라는 나라에서 잡았다. 안데스대 경영대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산업생태학을 전공하는 사람 치고는 공학 쪽에만 지식이 너무 쏠려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콜롬비아는 개발도상국이라 친환경 경영 전략 구성, 청정생산 산업단지 조성 등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덕분에 효능감을 많이 느끼며 일할 수 있었다. 다만 언어가 다르고 집과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오래 일하는 게 어려워 3년 정도 일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산업생태학이 중요도가 크게 높은 학문인가.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 선진국들이 ‘순환경제정책’을 꾸리면서 중요도가 크게 높아졌다. 순환경제는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철학에 따라 재활용, 재사용 관련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가려는 움직임이다. 2015년 EU에서 처음 관련 정책을 제안한 이후 너도나도 순환경제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도 2021년말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내놨다.”

-순환경제과 ‘친환경’ 개념의 차이는 무엇인가.

“초점이 다르다. 친환경은 말 그대로 환경 쪽에 많이 치중돼있는 반면, 순환경제는 지금껏 친환경의 대립쌍처럼 여겨진 ‘경제발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친환경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경제나 산업을 눌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순환경제는 경제발전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같은 것을 만들더라도 좀 더 자원을 적게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품을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최대한 재활용·재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순환경제와 산업생태학이 맞닿아있는 지점은.

“전과정평가라고 볼 수 있다. 순환경제는 천연자원 채취·가공, 제품 생산, 제품 폐기 등 산업의 각 과정에서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생태학은 산업의 각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분석한 뒤 이를 기반으로 정책적인 조언을 하거나 오염 수준을 줄일 기술을 개발한다. 둘 다 산업의 전 과정을 단계별로 나눈 뒤 분석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산업생태학은 순환경제정책의 뿌리와 같은 연구 분야다. EU가 순환경제정책을 발표한 이후로 국제학술지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서 산업생태학 분야에서 나온 논문들이 게재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분야인 산업생태학 연구자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날이 갈수록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고 지구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생태계 건강과 직결되는 생물다양성은 각종 동식물 멸종이 이어지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생태학은 미래에 경제발전과 탄소중립을 모두 이뤄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다. 그런데 사실 데이터 수집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점만 부각하는 탓에 과학 분야에서는 중요도를 낮게 보는 시선들이 있다. 학문으로서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편견도 있다. 이런 생각이 바뀌어나갔으면 좋겠다. 순환경제는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나온 개념이다. 환경오염이 지속되면 이 땅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경제적 성과를 뒤로한 채 구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생태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박주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2004년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학사

2006년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석사

2012년 예일 산림환경대학원 박사

2012~2014년 예일대 산림환경대학원 박사후연구원

2014~2018년 콜롬비아 로스안데스 경영대학 조교수

2018~2022년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조교수 및 부교수

2020년 여성공학인대상

2020~2022년 4단계 BK21 에너지환경정책기술학 교육연구단장

2022~현재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부교수

한국차세대과학기술 한림원 정책학부 회원

국제산업생태학회(ISIE) Board member

Journal of Industrial Ecology 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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