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그후]고양이 학대글 3초만에 '빛삭'…인터넷 커뮤니티의 '변신'
눈이 있을 자리에 피가 고여있었다.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흰색 고양이 사진이었다. 고양이는 표정을 잔뜩 찡그렸고 작성자 A씨는 게시글 제목을 '피눈물이 난다'고 지었다. A씨는 같은 날 학대 글을 최소 10개 올렸다. 길고양이를 산채로 불태우고 신체 부위를 절단한 사진들이었다.
사진을 올린 건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다. 본래 야옹이 갤러리는 2005년 개설돼 애묘인을 위한 게시판으로 운영됐다. 애묘인들은 고양이 기르는 팁을 공유했고 직접 찍은 고양이 사진을 올렸다.
게시판이 '학대범들'의 공간으로 변해간 건 지난해 7~8월부터다. 그전까지 디시인사이드에는 '길고양이 갤러리' 게시판이 있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게시판이었다. 발톱에 차량이 흠집 났거나, 택배가 훼손되는 등 나름대로 길고양이를 싫어할 이유가 있었던 이용자들도 있었다. 어떤 이용자들은 단순히 '학대'를 즐겼다.
지난해 여름 새끼 길고양이를 지퍼백에 넣고 죽이는 사진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게시자는 사진을 생중계하듯 수시로 올렸다. 그것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로 여러 게시자가 길고양이를 때리고, 밥그릇에 독약을 풀었다는 게시글들을 올렸다. 신체 부위를 훼손하는 등 잔혹한 해외 영상도 공유됐다. 디시인사이드는 같은 해 7월 8일 게시판이 '고양이 확대'를 목적으로 운영된다고 판단하고 게시판을 '접근 제한' 조처했다.
학대범들은 야옹이 갤러리로 모였다. 처음에는 길고양이, 애묘인, 캣맘을 혐오하는 표현을 써 분란을 일으켰다.
지난 1월28일 길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우는 영상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고양이를 철제 포획 틀에 가두고 토치로 머리에 불을 붙였다. 비판이 거세자 작성자는 "더 많은 고양이를 태워야겠다"고 새 글을 올렸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그는 같은 해 6월20일 자정 고양이 학대글을 최소 10개 무더기로 올렸다. 길고양이를 불 태우고 신체 부위를 절단한 사진들이었다.
작성자의 사용자명은 'VPN테스트'였다. VPN(가상사설망)은 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를 바꿔주는 서비스다. 작성자는 이런 서비스로 자신의 IP 주소를 해외 IP 주소로 바꿔서 접속하는 위치를 숨기고 있었다.
A씨가 야옹이 갤러리 이용자는 아니었다. 어느 날 한 학대범이 통조림 캔으로 길고양이를 유인한 뒤 뜨거운 물을 붓고 게시판에 공유했다는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아 모니터링 요원이 됐다.
명절은 모니터링 요원들 비상이 걸리는 날이다. 학대범들은 공휴일과 명절에 더 잔혹한 사진, 영상을 올린다. 사진, 영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심리로 풀이된다. 길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운 지난 1월 VPN테스트의 학대 사진도 설 연휴 전날 올라왔다.
A씨는 추석 연휴 첫날 몇시간 게시판을 감시했다. 학대 글을 보지 못했다. 돌이켜 여름과 비교하면 최근 몇주 사이 학대 글이 눈에 띄게 줄었다. A씨는 "학대글이 올라오자 마자 들어갔는데 '존재하지 않는 게시물'이라며 3~4초만에 삭제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디시인사이드 '모니터링 강화'의 성과였다. 올해 초 야옹이 게시판 학대 문제가 불거진 후 디시인사이드는 '학대 를 일부러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학대로 접속량, 광고료가 늘어나 예상 외 이득을 본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동물권단체들은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를 동물학대 방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디시인사이드는 논란이 불거진 후 게시글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툴(Tool)'을 개발했다. 한국 본사의 전 직원이 수시로 게시글을 감시하고 12명 규모 전담 관리팀도 운영한다. 야간에는 베트남·중국 등지 50여명 모니터링 요원이 게시글을 감시한다.
지난 9월 6일에는 VPN으로 바뀐 IP주소 게시판 접속을 2주간 차단했다. 일부 학대범들이 VPN으로 IP 주소를 바꿔 수사 기관 추적을 피하자 내놓은 대책이다. 디시인사이드는 올초 해외 IP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담당자가 실시간으로 게시판을 감시하다가 해외 IP로 문제성 글이 다량 올라오면 특정 IP 주소들의 접속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VPN 서비스를 사용하던 학대범들은 지난 9월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당시 게시판에 '접속이 안 된다' '이러면 개념글에 어떻게 보내느냐'는 글들이 올라왔다. '개념글'은 디시인사이드에서 추천, 댓글이 여러 개 달린 글을 말한다. 학대범들은 VPN 서비스로 IP 주소를 바꿔 가면서 댓글을 여러 번 달아 학대 글들을 개념글에 올려왔다.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오는 글은 줄었지만 어딘가에서 동물학대는 계속되고 있다. 동물권단체 카라는 지난 10월 햄스터를 학대한 고등학생 B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B씨는 햄스터를 전기 파리채에 올려놓고 전기 충격을 주거나 신체를 훼손했다. 햄스터를 짓눌러 죽게한 뒤 변기에 버리기도 했다.
B씨는 학대 장면을 사진, 영상으로 찍어 자신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방에 공유했다. 텔레그램 방에는 구경꾼 세명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동물학대가 심리적인 문제라고 분석한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8월6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작 나는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동물이 돌봄을 받는 것에 대해 (동물학대범이) 굉장히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환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학대범들이 자랑하듯 학대를 하는 게 특징이다"라며 "우리 사회가 동물을 존중하는 인식을 갖춰서 그런 비도덕성을 모니터링하고 고발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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