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모아 매출 수백억… 김정빈 수퍼빈 대표 “재활용도 본격화”

이은영 기자 2023. 1.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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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잘 버리는 재미 주기 위해 창업”
”폐기물 수거→물류→소재화, 세계 유일“
”2025년 5000대 보급·소재화 3만t 목표”
쓰레기도 돈이다, 재활용도 놀이다.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수퍼빈을 ‘로봇공학과 디자인이라는 두 개의 무기로 폐기물과 전쟁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로봇공학 기술을 활용해 폐기물 중에 자원화가 가능한 것들을 골라내 쓰레기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뛰어난 디자인과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수거로봇에 적용해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에 대해 자부심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퍼빈은 분리수거 인공지능(AI) 로봇 ‘네프론’으로 주목받은 회사다. 네프론의 안내에 따라 생수병이나 알루미늄 캔 등을 넣으면 이미지와 무게로 각각을 식별해 개당 10원의 포인트를 제공한다. 잘못 넣으면 거절 이유가 안내되며 다시 반환된다. 포인트는 2000원이 넘으면 현금화할 수 있다.

네프론은 주로 각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구입한다. 지난해 말 기준 세종시와 충북을 제외한 전국 지자체와 기업에 총 688대가 보급됐다. 지자체 중엔 경기 안양시에 가장 많은 100대가 보급돼 있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원이나 역 주변,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장소에 주로 있다. 기업 중엔 네이버가 제2사옥 ‘1784′에 30여대를 비치했다.

수퍼빈의 자원순환로봇 네프론. 키오스크 화면 안내에 따라 페트병과 캔 등의 라벨과 뚜껑을 제거한 뒤 넣으면 개당 10원의 보상금 포인트가 지급된다. 수퍼빈은 네프론으로 모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플레이크 소재로 재활용한다. /수퍼빈 제공

김 대표는 가정에서 분리수거로 내놓는 플라스틱, 종이, 캔 등 쓰레기는 재활용 가능한 일종의 자원인데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작년 10월까지 페트병 약 1억209만개, 알루미늄 캔 4884만개가 네프론을 통해 수거됐고, 누적 환전 금액은 9억8000만원에 달한다.

수퍼빈은 2016년 네프론 시제품을 처음 출시했고 작년까지 400억원이 넘는 누적 투자금을 받았다. 폐기물 수거에 그치지 않고 수거된 페트병을 다시 플라스틱 소재로 쓸 수 있도록 플레이크(페트병을 잘게 파쇄한 것)와 펠릿(플라스틱 병이나 섬유를 만드는 재료)으로 만드는 사업도 준비 중이다.

최근 경기 화성 공장이 준공 허가를 받으며 양산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이로써 수퍼빈은 자원 회수부터 재생산까지를 아우르는 자원순환 기업이 됐다.

기술력과 혁신성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이 친환경 분야 유공자에게 수여하는 ‘어스샷’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어스샷은 환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올해 수상에는 실패했다. 김정빈 대표를 지난달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만났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가 플라스틱 소재화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이은영 기자

-철강회사에 재직하다가 수퍼빈을 창업했다. 계기가 궁금하다.

“호기심이었다. 재활용품은 상품 가치가 있는 폐기물인데, 왜 그걸 모아다 주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폐기물의 경제적 가치와, 폐기물을 선별해서 배출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싶었다. 그 수단이 로봇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국내 분리수거와 재활용 시스템은 어떤가.

“우리가 그동안 믿고 있었던 분리수거 체계는 효율적으로 잘 작동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보통 분리수거 자루 앞에 서면 일단은 최대한 분리수거 자루에 담고 본다. 종이, 플라스틱, 캔, 비닐 등 5~6가지 종류로 뭉뚱그려 버린 뒤 자루에 넣기 민망한 것들은 종량제봉투에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재활용이 안 되는 복합소재들도 이리저리 마구 분류돼 버려진다. 오염이 심한 폐기물이 섞이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수거 단계에서부터 엉켜버리니 물류나 가공 단계에서는 손을 댈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들의 품질도 같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분리수거해 버리는 폐기물 중에 실질적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높아 봐야 30%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네프론’을 도입했는데 폐기물 수거 시장 내 반발은 없나.

“특별히 없다. 폐기물 수거상을 대상으로 한 대면 회수 서비스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퍼모아’라는 서비스인데, 업체나 개인에게 우리만의 폐기물 수거 자격을 주고 그들이 대량으로 모은 폐기물을 매입하는 것이다. 네프론에서 모이는 것과 같은 품질이 되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5000개~1만개씩 수퍼빈에 팔 수 있다. 일종의 B2B(기업 간 거래) 서비스로 볼 수 있다. 내후년(2024년) 정도면 전국에서 충분히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퍼빈은 폐기물 수집, 선별부터 물류, 가공까지 모든 구간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곳은 마지막 가공 단계다. 가장 뒷단에서 발생한 수익을 앞단의 이해관계자에게 연결하는 것이다. 폐기물을 다뤄서 생기는 이익이 한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구조를 그릴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설계했다.”

그래픽=이은현

-소재화 단계까지 뻗어나갈 구상으로 시작한 것인가.

“아니다. 처음에는 자원 회수만 하려고 했다. 이 일을 잘하면 그 뒤의 소재화 등 자원순환 과정은 이미 시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더라.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폐기물을 수집하고 선별해도 그게 끝이었다. 오히려 기회라고 봤다. 그래서 사업의 영역을 하나하나 확장해나가다 보니 폐기물 시장 전체를 관통할 수 있게 됐다.”

-플라스틱 플레이크를 만들어 온 국내 경쟁업체가 있을 텐데.

“기존의 플레이크 공장은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수익원으로 삼아왔다. 페트병을 많이 처리하면 보조금이 몇백억원씩 들어오니, 만들어낸 플레이크가 안 팔려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폐기물이 들어올 때부터 여러 소재가 섞여있으니 플레이크로 가공해 만들어내도, 자신이 만들어낸 플레이크에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 이와 달리 수퍼빈은 엄격하게 선별한 페트병으로 플레이크를 만들기 때문에 품질은 자신있다.”

-아이엠팩토리는 언제 양산이 시작되나.

“현재 경기 화성 공장 가동을 허가받아서 돌리고 있다. 아직은 테스트 기간이라 품질을 분석 중이다. 현재 여러 대기업 계열 화학회사가 우리가 가공한 플레이크에 대한 구매 우선권을 갖기 위해 투자에 참여해 주주로 있다.

이정도 품질의 플레이크는 국내에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향후 판매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 내년(2023년)에 본격적으로 플레이크 판매가 시작되면 매출액은 2022년 90억원에서 2023년 385억원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왼쪽은 재활용선별업체가 수거한 페트병. 오른쪽은 수퍼빈이 네프론으로 수거한 페트병. /수퍼빈 제공
수퍼빈이 네프론으로 수거한 페트병을 활용해 양산할 예정인 플라스틱 플레이크(왼쪽)와 펠릿. /성남=이은영 기자

-다음 서비스는 무엇인가.

“펠릿이다. 현재 전북 순창에 두 번째 아이엠팩토리를 짓고 있다. 눈송이 같은 형태가 플레이크이고, 화학회사는 이 플레이크에 성분들을 넣어 펠릿을 만든다. 이 펠릿 공장을 직접 운영하려 한다. 펠릿으로는 플라스틱 병을 만들 수도, 섬유를 만들 수도 있다.”

-해외 시장도 진출하나.

“2~3년 뒤에 진출하려 준비 중이다. 지금은 이 시장의 가치사슬을 느슨하게 엮어 모양만 갖춘 상태다. 국내 사업을 통해 이것을 공고히 한 뒤 수출을 시작하려고 한다. 국가마다 워낙 특성이 다르다. 북미나 유럽 등은 이미 폐기물 순환경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출하면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사업하기가 좋을 것이다. 대신에 기존의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반면 동남아시아의 경우 시장에 플레이어가 없지만, 관련 제도나 인프라도 미비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전략을 세우려 한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우선 당장 2023년에는 아이엠팩토리 안정화를 우선으로 하려 한다. 아이엠팩토리는 우리의 캐시카우이자 순환경제의 마지막 단계다. 우리가 가공한 폐기물을 화학회사가 돈 주고 사가고 싶어 하는 품질이 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좀더 장기적으로는, 네프론을 더 적극적으로 보급하려고 한다. 2025년까지 화성공장과 순창공장에 연간 3만톤(t) 생산 체계를 갖추려 하는데 그러려면 네프론이 5000대는 보급돼야 수량을 맞출 수 있다.

더 이상 추가적인 투자 유치 없이 자본이 축적되면서 계속 공장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24년에 매출 800억원, 2025년에는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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