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로 올라온 미술…비슷하면서도 다른 '2색' 매력
2차대전 전후 영국 탄광노동자들 이야기 '광부화가들'…함께 그림 보는 재미 쏠쏠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대사만 내뱉는 것이 아니다. 비록 연기이기는 하지만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칠하거나 벽면에 슬라이드를 띄워놓고 관객들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며 미술의 역사를 논하기도 한다.
현재 인기리에 공연 중인 연극 '레드'와 '광부화가들'은 기존의 전통적 연극의 범주를 넘어 미술을 무대 위로 끌고 들어와 예술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활용해 극에 각기 다른 독특한 재미를 더하고 있다.
'광부화가들'과 관객들, 함께 그림 속으로 빠져들다
연극 '광부화가들'(연출 이상우·김한내·김미란)의 재미 중 하나는 무대 전면부의 벽면에 투사된 그림들을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이 함께 감상하는 데에 있다.
극의 배경은 1930년대 중후반 영국 동북부 뉴캐슬의 탄광지대인 애싱턴의 한 노동조합 교육반.
무대 위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관객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등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그림 뿐 아니라, 영국 애싱턴 우드혼 탄광박물관이 실제로 수장한 광부화가들의 생동감 있는 작품들까지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고된 노동에 지친 광부들이 초빙된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삶과 예술을 토론하고, 또 함께 직접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그림은 대형 빔프로젝터로 무대 벽면에 투사돼 관객들에게도 극에 동참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무대에 투사된 그림 중 실제 '애싱턴 그룹'의 광부 출신 화가들인 올리버 킬번이나 윌리엄 스콧, 지미 플로이드가 남긴 다수의 작품은 이 연극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광부들은 서로의 그림에 대해 블루칼라 노동자답게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감상을 개진하면서 점차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눈을 떠 간다. 극의 핵심 인물인 올리버 킬번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뜨며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림을 그리던 그 몇 시간은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더라. 이상해, 내가 그린 것 같지가 않아."
2013년에 이어 다시 한번 올리버 역을 맡은 배우 강신일은 "예술가나 한 개인이 아닌 광부라는 그룹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점에서 이 작품이 좋게 느껴졌다"며 "올리버가 혼자서가 아니라 광부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광부화가들'의 세 번째 시즌은 오는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이어진다.
대형 캔버스에 배우들이 헐떡이며 칠하는 강렬한 '레드'
연극 '레드'(연출 김태훈)는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실존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를 주역으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관록의 배우 정보석과 유동근이 맡은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그의 조수 '켄'(강승호·연준석 분)이 끌어가는 2인극으로, 예술과 삶, 세대 간의 갈등과 이해 등을 밀도 높은 대사와 강렬한 색채의 무대 미술로 채운 수작이다.
미국의 극작가 존 로건이 써서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레드'는 2010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며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광부화가들'의 인물들이 주로 그림을 눈으로 보면서 예술과 삶에 대해 얘기한다면, '레드'의 두 주인공은 대사로 치열하게 예술을 토론하는 것에에서 나아가 무대 위에서 직접 그림 작업을 보여준다.
미술사의 온갖 사조들과 유명 작품들, 철학자와 작가 이름이 난무하는 지적인 토론을 벌이면서도 이들은 캔버스를 짜고, 안료를 섞어 물감을 만들고, 직접 붓을 들고 캔버스를 칠하며 화가의 작업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로스코는 켄에게 신경질을 내며 가루로 된 붉은 안료를 허공에 마구 뿌리기도 한다.
두 배우가 음악을 틀어놓고 거대한 캔버스에 강렬한 붉은 아크릴 물감으로 밑칠을 한 뒤 함께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강한 생명력과 역동성으로 객석을 압도하는 이 극의 명장면 중 하나다.
등장인물이 둘 뿐인 '레드'는 쉬지 않고 내뱉어야 하는 지적이고 밀도 높은 대사와 함께 로스코의 그림 작업을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기에 배우들의 체력 소모가 크다.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약하다 '레드'로 30여 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선 유동근(66)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캔버스를 공연 때마다 바꿔서 새로 칠하는데 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힘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캔버스와 안료의 제작·관리에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제작사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레드'의 이번 시즌 총 72회 공연에 연습까지 합치면 110개의 대형(가로 2.8m, 세로 1.8m) 캔버스가 소요된다. 소품과 무대 관리에 투입되는 스태프도 8명에 이른다.
배우들로서는 역사·철학·문학·종교 등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남달랐던 실존 화가 로스코를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도 적지 않다.
로스코 역으로 세 번째 출연하는 정보석(61)은 "예전 첫 공연 할 때 로스코의 예술적 고민을 내가 따라갈 수 없어 너무 괴로웠다"면서 "당시에는 그냥 대사만 외워 연기하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로스코의 고민들이 뭔지 좀 보여서 극장으로 오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레드'의 여섯 번째 시즌은 오는 2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이어진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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