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6월부터 '만 나이'로 통일되면 정년 더 늦춰진다?
체감할 만한 생활상 변화 없을듯…지금도 정년·연금 수령개시 시점 등 만 나이
초등학교 입학, 술·담배 허용, 군 입대 등에는 연 나이 적용 유지돼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이아미 인턴기자 = 지난해 12월 27일 정부가 공포한 '만(滿) 나이 통일법'이 오는 6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만 나이 통일'은 국내에서 여러 가지 나이 계산법이 뒤섞여 쓰이면서 생기는 혼선과 각종 법적·행정적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이처럼 나이 셈법이 만 나이로 통일된다는 소식이 나오자 사실상 정년이 연장되는 것인지, 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기는 늦춰지는지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년 늦춰진다? 초등학교 입학 늦어진다?…모두 사실 아냐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나이 계산법은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 등 모두 3종류다.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세는 나이는 출생일부터 1살로 친다. 이어 다음 해 1월 1일부터 해가 바뀔 때마다 1살씩 증가하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극단적인 예로 생일이 12월 31일인 사람은 태어난 다음 날이면 두 살이 된다.
만 나이는 출생일을 기점으로 실제 산 날짜를 집계한다. 태어난 시점부터 생후 1주일, 100일, 6개월 식으로 따지다가 다시 생일이 도래해 1년(돌)이 됐을 때 비로소 1살이 된다. 만 나이는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방식이다.
연 나이는 일상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행정 서비스의 효율성 등을 위해 일부 법령에서 적용하는 개념이다. 생일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서 계산한다.
6월 말부터 시행되는 만 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 및 민법 일부개정법률)은 각종 법령, 계약, 공문서 등에서 표시된 나이를 원칙적으로 만 나이로 해석한다는 내용이다.
개정된 행정기본법은 "행정에 관한 나이 계산은 다른 법령 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 나이로 한다"는 조항을 새로 넣어 행정상 나이를 따질 때는 원칙적으로 만 나이로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개정 민법에서도 나이의 계산을 만 나이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 민법 내에서 나이 표기를 '○○세'와 '만 ○○세'의 두 가지를 혼용해 쓰던 것을 '만' 없이 '○○세'로 통일했다.
하지만 이처럼 만 나이로 통일된 후에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민법상 나이는 이미 예전부터 만 나이를 의미했고, 다른 법에서도 특별한 규정이 없는 이상 이를 준용토록 해왔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번 만 나이 통일 조치는 법률·행정에 쓰이는 나이 계산법을 종전과 다르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 나이를 적용해오던 것을 '재확인'하는 조치에 가깝다.
지금까지도 법률이나 공문서상 나이는 모두 만 나이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일상생활에서 세는 나이의 영향력이 드세다 보니 '만'이란 글자가 명기돼 있지 않으면 법조문이나 계약서에 적힌 나이를 세는 나이로 받아들여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민법 조문 내에서도 '만 ○○세'와 '○○세'란 표현이 뒤섞여 쓰인 점도 이런 혼란에 일조했다.
일례로 과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사례를 보면, 자동차 보험계약 시 연령한정 운전특약의 적용연령을 두고 분쟁이 있었다. 보험 약관상 만 나이를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에 대한 별도 설명이 없어 고객은 세는 나이로 해석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문에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또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는 사태 초기 예방접종을 앞두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비(非)권장 나이가 '30세 미만'이라고 고지되자 기준이 세는 나이인지, 만 나이인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만 나이 법제화는 이런 불필요한 분쟁·혼란을 줄이기 위해 법령을 명확하게 하고 만 나이를 성문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번 만 나이 개정으로 인해 '정년이 연장된다'거나 '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점이 늦어진다', '65세 이상 어르신의 교통비 지원 개시가 늦어진다' 등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이미 지금도 만 나이를 적용하고 있어 개정법 시행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나 공무원 채용시험 응시 제한연령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세는 나이가 아닌 연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조치로 법률·행정은 물론 사인 간 계약이나 일상생활에서도 만 나이가 보편 규범으로 더 깊이 뿌리 내리면 세는 나이의 위세는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나이를 둘러싼 사회적 혼란도 자연스레 수그러들 전망이다.
군대 가는 나이, 술·담배 사는 나이에는 연 나이 유지하되 추가검토키로
다만 모든 법령이 만 나이를 기준으로 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법령은 연 나이를 준용하고 있다. 이번에 만 나이로 통일하는 김에 연 나이도 모두 만 나이로 바꾸면 좋을 듯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법제처가 현재까지 파악한 연 나이 규정 법령은 모두 62개이다.
김재규 국가행정법제위원회 위원이 지난해 11월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한 '연 나이 규정 법령 정비 필요성 및 정비 방안'에 따르면 이들 법령은 크게 ▲ '청소년 보호법' 관련 ▲ '병역법' 관련 ▲ 시험응시 나이와 교육 관련 등 3대 범주로 분류될 수 있겠다.
이들 법령이 연 나이 규정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소년 보호법이다. 이 법은 청소년을 "만 19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다만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제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문언을 다시 풀이하면 '연 19세 미만'을 청소년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연 19세가 되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았을 경우 여전히 만 18세여서 청소년으로 간주되는 폐단을 없애고자 지난 2001년 5월 청소년 보호법상 청소년의 정의를 만 나이에서 연 나이로 바꿨다.
예컨대 과거 만 나이 체제에선 대학에 들어가 선배들과 술집에 가면 생일이 지나지 않은 신입생은 법률상 청소년이라서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만 나이로 하면 또래 집단이라도 생일이 언제냐에 따라 규정 적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연 나이로 바꿔서 같은 또래면 같은 대우를 하겠다는 취지다.
청소년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령들은 모두 청소년 보호법을 좇아 연 나이 규정을 따르고 있다.
'담배사업법', '식품위생법', '전기통신사업법',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법령을 무리하게 만 나이로 바꿀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단, 김재규 위원은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는 청소년의 활동 중 복권이나 농약 구입 등은 또래 집단의 행위라기보다는 개별적인 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연 나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병역법도 연령을 연 나이로 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2조 2항에서 "이 법에서 병역의무의 이행시기를 연령으로 표시한 경우 '○○세부터'란 그 연령이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를, '○○세까지'란 그 연령이 되는 해의 12월 31일까지를 말한다"고 돼 있다.
또한 "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 검사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병역법이 1949년 8월에 제정됐을 당시엔 만 나이로 규정됐으나 1957년 8월 전부 개정되면서 연 나이로 바뀌었다.
이는 병력자원을 연도별로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병무 행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로 판단된다고 김 위원은 설명했다.
'국적법령', '여권법령' 등 병역법상 병역 의무와 관련한 규정이 들어간 법령도 병역법을 따라 연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험응시와 교육 관련 분야에도 연 나이 법령이 있다.
이 중 '공무원임용시험령'에선 "공무원의 채용시험에 응시하려는 사람은 최종시험예정일이 속한 연도"에 7급 이상은 20세 이상, 8급 이하는 18세 이상이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20세, 18세는 만 20세, 만 18세를 가리키는데, '해당 연도에 만 20세, 만 18세가 되는 이들'이라고 돼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연 20세, 연 18세를 뜻한다.
김 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공무원 채용시험이 한 해에 여러 번 있지 않기에 같은 연도 출생자라 하더라도 생일에 따라 응시 기회를 얻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연 나이 규정이 채택됐다.
교육 관련 법령에서 재정 지원 개시일 또는 종료일, 검정고시 응시 나이 등을 연 나이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김 위원은 병역 관련 법령, 시험응시·교육 관련 법령의 연 나이 규정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 채택된 것이므로 이를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런 연 나이 규정 법령에 대해 올해 중 국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필요하면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표] 연 나이 규정 법령 목록
※ 법제처 제공자료.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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