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좌파 대부' 룰라 집권 3기…'1·2기 영광' 재현 시험대
제2 핑크 타이드 속 국제 영향력 강화 시도…남미국가연합 '우나수르' 탄력받을까
1.8%P 신승, 1·2기 때와는 확연히 다른 여건…극심한 분열 양상에 국민통합 최대 숙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2023년 새해 첫날인 1일(현지시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대통령의 취임으로 3기 룰라 정부가 막을 올리게 됐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려온 '극우' 성향의 전임 자이르 보우소나루 집권기 정책 기조에 대한 대대적 뒤집기가 벌써 현실화한 가운데 제2의 핑크타이드(분홍 물결) 조성으로 중남미 정치지형 전체의 좌향좌가 가속하는 등 안팎으로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003∼2006년, 2007∼2010년에 이어 2026년까지 집권 3기를 이끌게 된 룰라 대통령은 과거 1·2기 정부 시절 양적·질적 성장에 대한 국민적 향수에 부응하는 정책을 현실에 맞게 다듬어 다시 선보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지원 강화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할 수 있는 경제 성장, 공기업 영향력 제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과 신뢰 회복, 아마존 보호 등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극도로 분열된 민심을 어떻게 추스르느냐가 당면한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10월 말 대선 결선 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과격 시위로 취임식 당일에도 긴장이 고조되는 등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극심한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공공지출·국가 개입·산업 보호 정책 '부활'
1·2기 정부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된 각종 정책은 수정·보완돼 부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 성과인 '보우사 파밀리아'는 복원 또는 확대된다. 보우사 파밀리아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 저소득층에 생계비를 지원하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더해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법 개정 등을 통해 저소득층 구매력을 높이고 가계 부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한편 농산물·식료품 공급 확대와 연료비 인상 자제를 통해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개입적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와 고용 창출 프로그램이 대거 도입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상파울루 무역관은 대선 이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경제성장 촉진(PAC)이나 서민 주택 건설 계획 등을 통해 열악한 인프라 확충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며 "유급 휴가나 사고 보험과 같은 노동자 기본 권리를 보장하도록 고용주와 노조 간 합의를 권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유공사(Petrobras)나 전력공사(Eletrobras) 등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는 힘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룰라 대통령은 최근 "공기업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와 역할이 대단히 높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보호주의 성향이 다시 강화되는 한편 관세 인하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마존 수비수' 재등판…개발→보호 급선회, '지구의 허파' 회생할까
최근 마무리된 룰라 새 정부 조각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각료는 마리나 시우바 환경부 장관이다.
과거 룰라 정부에서도 환경 장관을 역임한 그는 '아마존 수비수'라고 불릴 정도로 저명한 환경 운동가다.
2003∼2010년 재임 시절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열대 우림 내 벌목 행위를 그 전보다 70% 안팎 줄인 룰라 대통령은 시우바 장관 재발탁을 통해 산업적 이익에 위배되더라도 '불법 벌채 단속'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내비쳤다.
브라질 정부는 환경 파괴 범죄자에 대한 무관용 처벌, 새로운 위성 시스템 도입을 통한 보호구역 감시, 삼림 벌채에 대한 정교하고 엄격한 전략 제시 등을 내세울 방침이다.
이를 통해 아마존 보호와 생물 다양성 확보 '주인공' 역할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우바 장관은 지난해 대선 캠페인 당시 보우소나루 정부의 아마존 개발 정책을 비판하며 "아마존 보존을 위한 도전은 (룰라 1기 정부 시기인) 2003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룰라 대통령은 또 이번에 신설한 원주민 부의 장관에 마라냥 출신 소니아 과자자라를 임명하며 원주민 권익 신장이라는 공약 실현을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제2 핑크 타이드'속 국제무대 영향력 강화 시도…남미국가연합 탄력 받을까
1990년대 말 이후 다시 중남미 주요 국가를 휩쓴 온건 좌파 물결('핑크 타이드') 속에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참여 및 활동 강화를 기반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주축이 돼 결성한 경제공동체다. 인접국 우루과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도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칠레,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수리남, 가이아나, 볼리비아 등 7개국은 준회원국이다.
다른 경제 공동체보다 국제적인 영향력이 다소 약한 편이지만, 최근 다른 지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교류의 증대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 역시 메르코수르와 FTA 체결을 위해 협상 테이블을 꾸준히 마련해 왔다.
중국과의 관계도 주목을 받는다. 특히 미국 견제라는 공통의 목표가 양국간 친밀도를 높일 것이라는 예측을 낳고 있다.
다만 룰라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경제인과의 만남에서 브라질 내 중국 약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어 2004년 브라질·중국 고위급 위원회 창설을 주도할 만큼의 '구애'는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남미판 유럽연합(EU)'으로 불리던 남미국가연합(Unasur·우나수르) 재건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2008년 룰라 2기 정부 당시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남미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남미 12개국 참여로 창설됐는데, 희미한 지향성과 결속력 약화로 사실상 낡은 간판만 남아 있는 상태다.
AP통신 등 일부 외신은 룰라 대통령이 남미국가연합 살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23∼25일 아르헨티나 방문을 계기로 가칭 '수르'(SUR·스페인어로 남쪽이라는 뜻)라는 남미 화폐 통합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다만 '정치적 통합' 구심체로서의 의미가 강한 남미국가연합을 현재의 온건 좌파 국가들이 흔쾌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현지 매체는 브라질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 각국 경제 상황이 안정적이지는 않은 상태여서 '상업적 통합'보다 우선순위를 높이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제시했다.
갈등 완화·국민 통합, 3기 정부 성공 가를 최대 시험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과의 득표율 격차인 '1.8% 포인트'는 룰라 3기 정부 4년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 숫자다.
당선 소감에서 '두 개의 브라질은 없다'고 강조하기도 한 룰라 대통령은 임기 내내 사회적 갈등 완화와 국민 통합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높은 지지율 속에 1·2기 정부를 이끈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는 각종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명백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기에 더해 대선에서는 승리했지만, 보수 또는 중도 색채를 띤 의회와의 관계는 국정 운영에서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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