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기정학 시대 살아남으려면 AI·양자·에너지 기술 확보해야”

김우영 기자 2023. 1. 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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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인터뷰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일본 히토쓰바시대 국제관계 석사,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 KAIST 미래전략연구센터장, 한국시니어비즈니스학회 회장, 미래학회 부회장
“기정학(技政學)의 시대가 왔다. 앞으로 국가가 어떤 전략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국가 안보와 동맹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12월 12일 인터뷰에서 새해 산업의 변화를 이같이 전망했다. 서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KAIST 미래전략연구센터는 매년 미래전략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2023년의 핵심 키워드는 기정학으로 선정됐다.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정학의 시대에서 첨단 기술의 확보 여부가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기정학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한국이 기정학 시대에서 확보해야 할 미래전략 기술로 인공지능(AI), 양자, 에너지 기술을 꼽았다. 그는 “만약 다른 국가에 이 기술이 종속된다면 군사·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2023년 반도체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수출 규모가 2022년보다 4%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은 주력 산업이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세계 경기가 부진하면 산업 전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필두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공급망 문제와 중국의 경제 성장 정체로 반도체 등 소재·부품 수요 감소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고조되는 기후 위기도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국내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 /김영사 제공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에서 기정학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미 세계는 기정학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처음으로 제시한 기정학 개념은 첨단 기술의 보유 유무가 시장 경쟁과 통상을 넘어 국가 안보와 동맹 관계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이 국가 간 관계의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2023년을 기점으로 기술을 매개로 한 국가 간 관계 형성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칩4(Chip 4, 미국·한국·대만·일본) 동맹’이 대표적인 기정학 사례인가.

“그렇다. 미국은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을 선언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 재편을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할 계획이다. 일본도 미국, 대만과 기술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을 기술 동맹의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한다. 호주도 2021년 총리실 산하에 전략기술정책조정실을 설립하고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에 참여함으로써 첨단 기술과 자원의 공급망 안정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은 기정학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지금 한국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한가운데 서 있다. 반도체, 배터리, 첨단 통신 기술과 산업을 보유한 한국도 기술 주권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정학 시대를 기회로 만들려면 국가 전략 및 핵심 기술로 평가되고 있는 반도체와 이차전지를 넘어 차세대 미래전략 기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어떤 차세대 미래전략 기술을 확보해야 하나.

“우선 AI와 양자 기술이다. 향후 국가 경쟁력에 필수불가결한 기술들이다. 만약 다른 국가들에 이 기술들이 종속된다면 앞으로 군사·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AI와 양자 기술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는 배경이다. 원자력·수소·이차전지와 같은 차세대 에너지 기술도 필수다. 국가 안보와 민간 수요를 모두 충족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경기 침체 우려로 기업들이 2023년 연구개발(R&D)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기업이 시장에서 생존하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모 대기업 회장이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 즉, 초격차 기술을 가진 기업이 모든 열매를 독식하는 시대다. 단기적인 경기 침체를 넘어 중장기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면 R&D 투자는 필수다.”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연대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한가.

“그렇다. 기술 주권의 개념이 ‘기술을 개발하는 주체의 완벽한 자급자족 및 민족주의 추구’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디지털 전환과 초연결 시대가 심화하고 있는 오늘날 모든 기술을 자급자족하겠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면 기술 역량의 내재화와 기술의 안정적인 조달·협력 체계 구축이 필수다. 지금은 특히 디지털 기술 분야의 표준과 관련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디지털 표준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 통상, 안보, 동맹 관계 등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디지털 표준화를 선도하고, 이를 위해 다른 나라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다각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라인에서 엔지니어들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한국 산업의 약점으로 지목돼 온 소부장 기술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고질적인 대일 무역 적자와 일본 경제 종속이라는 불명예는 한국의 미약한 소부장 기술에 있었다고 본다. 한국도 독일과 일본처럼 제조 강국이 되려면 소부장 강국이 돼야 한다. 제조에 필요한 첨단 소재와 정밀 부품, 우수한 장비가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제조 강국이 될 수 있어서다. 또 소부장 기술은 초격차를 견인하는 핵심 기술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전략적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기술 축적의 과정이 필요하다. 결코 단기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특히 소부장 기술 대부분이 기초과학에 기반하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가 약하고 단기적 성과 위주의 한국 R&D 체계를 비춰 볼 때 소부장 기술과 산업이 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결국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소부장 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기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인 소부장 기술 강화 방안은 무엇인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개발한 소재 관련 기술들을 산업계로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소재 분야의 창업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첨단소재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해 대학이나 연구소의 창업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또 기업과 투자자가 참여하는 창업 생태계 조성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필요한 2023년 R&D 전략은.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과거 일본의 수출 규제와 소부장 사태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기초연구에 초점을 맞추면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에서 선제적으로 원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또 자율성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도전적 R&D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 국가 R&D의 90% 이상이 성공으로 기록되는 것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성공보다 도전적인 실패를 추구할 수 있게 연구 성과에 대한 기준과 평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Part 1. ‘검은 토끼’가 맞이할 도전들

①'RABBIT’으로 풀어본 새해 경제⋯R의 공포에서 탈출할까

[Infographic] 2023 세계 경제 대예측

Part 2. 전문가 2023년 진단

②[Interview]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③[Interview]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④[Interview]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

⑤[Interview] 다니엘라 러스 MIT 컴퓨터공학·AI연구소장

⑥[Interview] 거노트 와그너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

⑦[Interview]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⑧[Interview]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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