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에게 당한 세입자들…보증금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 세입자들이 지난 27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축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보유해 임대사업을 영위하던 빌라왕이 최근 사망하면서 부동산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빌라왕이 무자본 갭투기로 주택을 사들여 온 데다가 고액의 체납 내역이 확인돼 수백명에 달하는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지켜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들은 대위변제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 다만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들은 구제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1일 HUG에 따르면 보증보험에 가입한 빌라왕의 세입자는 614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세입자의 절반 수준이다. 피해자는 대부분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으로, 2억원 안팎의 보증금을 걸고 전세살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HUG는 빌라왕 급사로 보증금을 내어줄 사람이 사라진 상황이라 구상권을 청구할 대상만 정해지면 보증보험 가입자의 보증금 반환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HUG와 협력해 보증금을 내어주는 기간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약속했다.

통상적으로 집주인이 사망하면 친족을 대상으로 상속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민법 제1000조 1항은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을 상속인으로 정하고 있다. 빌라왕의 유족은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선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하락장이 본격화되면서 빌라왕 보유 주택 매매가격보다 세입자 보증금 액수가 더 커졌고, 빌라왕이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62억원을 납부를 거부해 자산보다 채무가 훨씬 많아서다.

혈육들이 상속을 포기한다면 임차인들은 향후 가정법원이 상속재산관리인을 지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상속재산관리인이 선임될 때까지는 보통 1년가량 소요된다. HUG도 대위변제 과정에 돌입할 수 있다. HUG가 책임지고 보증보험 가입자들에게 보증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상속대위등기 과정에서 보증보험 가입자들도 취득세를 부담해야 하는데, 보증금을 통째로 날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이다.

전세 사기를 당한 임차인이 전세 피해 지원센터에서 피해 사실을 접수하고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보증보험 미가입자들은 보증금 반환 여부가 불투명하다. 미가입자들은 상속재산관리인이 정해지면 소송→판결→경매를 진행해 보증금을 되찾아야 한다. 다만 감정가격이 보증금을 밑도는 수준일 가능성이 커 손해가 불가피하고, 선순위인 조세채권이 존재해 경매 자체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경매를 통해 누군가에게 매각된다면 낙찰자가 집주인의 지위를 승계받는다. 세입자가 우선변제권과 대항력을 갖추고 있다면 낙찰자가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전액 정리해 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세입자가 물건을 낙찰받게 된다면 생애 최초 특별공급 신분을 상실하게 되고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전세자금대출 한도보다 낮아 불리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전세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세입자의 경우 보증금을 받기 전까지는 이사를 가지 않고 계속 살아도 된다. 이사를 가야 한다면 반드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세입자가 이사를 가더라도 낙찰자에게 전세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하게 해 주는 제도다.

정부도 사태 수습과 대책 마련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정보 공개와 전세 사기 단속 체계 개선을 강조했다. 은행권과 논의해 전세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전세 사기 피해 지원 센터를 통해 법률 상담 및 임시 거처를 제공할 예정이다. 주택도시기금 예산도 지원한다. 보증보험 미가입자들에게는 가구당 최대 1억6000만원을 저금리(연 1%)로 대출해 주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전세 확정일자 이후에 발생한 당해세 범위만큼 임차인 보증금을 우선 변제하는 내용의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경찰과 검찰도 전세 사기 전담 수사팀을 꾸려 관용 없는 조사를 진행해 엄중히 처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