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혁신클러스터] ① 페인트 회사를 생명공학기업으로 바꾼 담대한 실험...“이게 바젤의 저력”
노바티스 로슈 론자 글로벌 1위 생명공학 기업 포진
노바티스 심부전 치료제 엔트레스토 연매출 4조원
“저항 무릅쓴 변화가 ‘바젤의 정신’” “혁신⋅개방이 핵심”
글로벌 3위 제약사인 노바티스의 스위스 바젤 본사 건물 1층 로비에는 레고 블럭 20만개로 만든 거대한 붉은 심장이 있다.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심장 조형물에는 ‘7,349,865′이라는 숫자와 ‘엔트레스토(entresto)로 치료받은 사람들’이 적혀 있다.
엔트레스토는 2015년 노바티스가 개발한 심부전(心不全) 약이다. 사람의 심장은 1분에 60~70번 뛰며 혈액을 퍼나른다. 심부전은 심장이 과부하로 늘어져 혈액을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엔진(심장)이 퍼진 상태다.
엔트레스토는 늘어진 심장근육을 수축시켜 다시 움직이게 한다. 10년 전 이 병으로 쓰러지면 5년안에 10중 7명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엔트레스토를 복용한 환자들은 사망률이 절반으로 줄었다. 의료계에서는 이 약을 두고 ‘15년 만에 나온 혁신 신약’이라고 불렀다. 엔트레스토의 지난해 매출은 35억 5000만 달러(약 4조 5330억원)다. 이는 셀트리온(1조 9116억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1조 5680억원)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 라인강 따라 세계 1위 의료 대기업 포진
‘백신사업부’가 없어서 코로나19 시기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노바티스는 전 세계 1~2위를 다투는 대형 제약사다. 최초의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CAR-T) 항암제인 킴리아,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 등을 개발했다. 연매출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 ) 이상 블록버스터만 14개에 이른다.
노바티스 본사가 있는 바젤에는 로슈, 론자같은 굵직한 생명공학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로슈는 진단기기 분야 세계 1위이고, 론자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의 1위 기업이다. 바젤은 인구는 19만5000명, 면적 23.91k㎡으로 인천송도 크기의 소도시인데, 글로벌 대형 의료 기업들이 한 데 모여 있다.
‘바이오의 심장’이라고 하면 미국의 보스턴을 떠올리지만, 유럽 바이오의 심장은 바젤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 특유의 정치⋅사회적 안전성 개방성에 법인세 감세가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냈다.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접한 지리적 이점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 영토를 포함한 바젤 경제권으로 묶는데, 그 인구가 300만에 이른다. 바젤 인구의 36%가 외국인이고, 이들 대부분은 제약사에 근무한다. 인재풀도 훌륭하다. 이곳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대인 바젤대가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생명공학과 교수를 바젤대에서 스카웃했다. 바젤투차정에 근무하는 앙케 홀나겔(Anke hollnagel) 박사는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늗 데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바젤 주민 10명 중 4명은 외국인
바젤투자청의 크리스토프 클로퍼(Christof Klöpper) 대표는 바젤의 경쟁력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답했다. 바젤은 원래 ‘생명공학’을 하던 곳이 아니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노바티스다. 노바티스의 전신은 석유화학 합성염료, 페인트 회사다.
지역 화학업체였던 치바(CIBA)와 가이지(Geigy)가 1970년 합병하고, 이 회사가 1996년 합성LSD를 개발한 산도스를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클로퍼 대표는 “(치바가이기가) 잘나가던 페인트 회사를 제약사로 바꾼다고 할 때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라며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변화를 이끌어 낸 결단이야 말로 바젤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바젤투자청이 조성한 바젤 바이오 클러스터는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와 벤처 투자자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다. 바이오벤처 인큐베이터인 ‘바젤런치(Basel Launch)’을 통해 최대 50만 스위스프랑(약 6억 8340만원) 규모의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고, 제약사 벤처투자자 로펌 등을 연계한다. 프리 시리즈에서 시리즈A 투자를 받을 때까지 도움이 된다.
최근 바젤을 찾는 국내 제약사들도 부쩍 늘었다. 지난 10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유한양행 힌미약품 등과 이곳을 방문했다. 지난달에는 한국바이오협회가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박현숙 세포(CEFO)바이오 대표, 김순학 스템온 대표,지놈앤컴퍼니 대표가 바젤을 찾았다. 바젤투자청은 최근 한국인 매니저도 고용했다.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글로벌본부장은 “노바티스나 로슈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간의 협력 프로그램 등 결실을 만들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 20년만에 바젤 본사 공개한 노바티스
노바티스가 올해 바젤 본사를 20년 만에 공개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언론 중에서 조선비즈가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았다. 정문에서 단풍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가면, 본사 건물과 라인강을 따라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캠퍼스 중앙에 비단잉어를 키우는 연못과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등 신진 조각가의 공공 작품을 곳곳에 배치해 비밀의 정원에 온 것 같았다. 건물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1층 통창으로 내부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바젤투자청의 앙케 홀나겔(Anke hollnagel) 박사는 “연구원을 포함한 직원들이 사무실 밖에서 서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캠퍼스를 설계했다”라며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디자인부터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파빌리온 역사관은 노바티스의 역사를 알려주는 ‘페인트’ 전시는 물론이고 ‘존엄사’같은 주제로 석학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전시관도 마련됐다.100%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파빌리온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노바티스 본사와 역사관은 바젤에 있지만, 혁신 신약을 연구하는 바이오메디컬연구소(NIBR)는 미국 보스턴에 있다. 바젤이 고향이지만,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격전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당시 제이 브래드너 전 대표이사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제약 바이오 산업을 엔터테인먼트에 비유한다. 미국 중심 시장이고, 글로벌 스타를 낼 확률이 희박하지만, 한 번 성공하면 대박을 기대할 수 있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예술(연구)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 가수와 제목은 기억해도, 연예기획사(제약사)는 크게 주목을 못받는다. 히트 상품을 만들어도 ‘특허(유효)’가 있어서 17년이 지나면 시장을 빼앗긴다.
노바티스의 브래드너 전 사장은 연구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우리 회사가 혁신신약을 개발하지 않으면, 우리의 경쟁자가 신약을 개발한다. 남이 잘되는 것보다 어차피 내가 하는 게 낫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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