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한류]③ “넘쳐나는 은행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죠” … 베트남서 디지털로 승부 띄운 신한금융

호치민(베트남)=김유진 기자 2023. 1.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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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오프라인 채널 한계 디지털 금융으로 극복
전자지갑 중심 결제시장 판도 흔드는 신한카드, 페이업체와 맞손
베트남 정부의 ‘현금 없는 사회’ 전략… 디지털 경쟁력, 성장 기회로

“같은 건물에 한국계 은행이 또 들어온다고요?” 베트남 1위 외국계 은행인 신한은행은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은행 간 경쟁이 심해졌다고 느꼈다. 신한은행을 벤치마킹한 다른 은행들이 신한은행 지점 옆에 잇달아 점포를 내는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치킨집 옆에 치킨집이 개업’한 꼴이었다.

신한은행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속도를 내면서 기회를 잡았다. 기업이 생산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기업금융을 제공하고 임직원 급여 지급에 필요한 은행 계좌 개설을 통해 현지 고객까지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성장의 향기가 진했던 탓인지 신한은행은 기업금융의 파이를 나눠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한국기업의 신규 진출마저 축소되며 신한은행은 리테일 및 로컬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정경원 신한베트남은행 부법인장은 기업금융의 성장세가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정 부법인장은 “우리를 타깃으로 은행들이 점포를 내기 시작하며 고객과 수익이 경쟁사로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이 돼버렸다”며 “점포전략도 리테일 및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신한베트남은행 지점./사진=김유진 기자

기존 오프라인 전략으로는 지속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신한은행은 디지털 금융에 집중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디지털 경제 전략과 코로나19 이후 청년층이 중심이 된 디지털 금융의 확산 또한 신한은행이 기존 오프라인 기반 사업 전략을 더는 고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신한은행은 오프라인 채널에서는 베트남 국영·민영은행과의 경쟁에서 밀리지만, 본점의 디지털 경쟁력을 기반으로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베트남 금융권의 디지털 경쟁은 치열합니다. 1위 국영은행은 120억원을 들여 디지털 컨설팅을 받았고, 다른 국영은행의 경우 5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까지 디지털 관련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의 신한은행인데’, ‘베트남 시장이 별 게 있겠어’라는 생각은 성공을 어렵게 할 뿐입니다.
정경원 신한베트남은행 부법인장

베트남 은행이 디지털 금융에 투자가 미미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베트남 국영·민영은행은 비대면 영업 확대 등 디지털 금융을 내재화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25년까지, 2030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계획’에 세우고, 현금 없는(Cashless)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 국민의 은행 계좌 보급과 비현금 결제 확대를 통한 디지털 금융 전환을 추진하는 중이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현지에서 정부가 주주로 참여하는 국영은행 4곳을 포함해 46개의 은행과 디지털 금융 경쟁을 하고 있다. 200개가 넘는 핀테크 업체도 경쟁 상대다.

지난 12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정경원 신한은행 베트남 부법인장./호치민=김유진 기자

디지털 경쟁의 선단에서 신한은행은 ‘대마(大馬)’의 모습부터 버렸다. 전통금융사와 핀테크사가 뒤섞여 치열한 경쟁을 하는 시장에서 적시에 핀테크와 협업할 수 있게 조직 체계부터 수정한 것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5월 현지 디지털 사업 전담 조직인 ‘퓨처뱅크그룹’을 설립하고 디지털 금융의 발전 전략을 민첩하게 고민하고 있다.

정 부법인장은 “베트남은 성장하는 빠른 시장이어서 우리가 실패할 여유가 없다”며 “현지 디지털 전략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 디지털 전략을 잘하는 현지 은행을 벤치마킹하고, 한국 본점에서 성공한 전략을 이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이 현지 은행의 디지털 전략 중 채택한 부분은 핀테크와의 협업이다. 현지 은행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결제시장의 대세로 떠오른 전자지갑업체(E-Wallet) 업체 등 핀테크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도 주요 고객층인 ▲20~30대 사무직 근로자 ▲대학생 ▲워킹맘을 유입할 수 있는 핀테크 업체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다수 청년층이 결제수단으로 이용하는 전자지갑업체 모모, VN페이, 잘로 등과 제휴를 강화했다. 자사 애플리케이션 ‘쏠(SOL)’에 전자지갑에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이며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정 부법인장은 “은행이나 카드업체를 중심으로 결제시장이 발전한 한국과는 달리 베트남은 전자지갑업체가 수천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며 디지털 금융을 주도하고 있다”며 “전자지갑업체에 은행이 협업을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8월 베트남 은행권 최초로 100% 비대면 신용대출 상품인 ‘디지털 컨슈머론’을 출시했다. 모바일상에서 대출과 신용카드 발급 등을 100% 비대면으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핀테크 제휴 등을 통해 비대면 고객이 늘어나자 신한베트남은행은 새롭게 선보인 쏠 3.0도 이에 맞춰 현지 고객 친화적으로 구축했다.

정 부법인장은 “지난달 선보인 쏠 3.0은 베트남 20~30대를 타깃으로 개발됐다”며 “개발사도 베트남 현지 회사로 해서 이용자환경(UI)·이용자경험(UX)을 업그레이드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에 베트남 쏠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작년 말 22만6000명에서 12월 9일 기준 36만2000명으로 60% 넘게 증가했다.

신한은행은 디지털 금융과 함께 현지화된 오프라인 채널 확대도 이어갈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46개의 현지 점포를 보유하며 외국계 은행 중 최다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1~2%에 불과하다.

정 부법인장은 “현지 은행도 적극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데 신한은행이 디지털 금융만으로 드라마틱한 시장의 변화를 이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오프라인 채널을 제대로 갖춰 신뢰를 높인다면 디지털 금융 전략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한은행은 베트남에서 디지털 금융과 함께 오프라인 채널 현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Dual)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신한카드의 베트남 법인 신한파이낸스 간판./호치민=김유진 기자

신한은행과 함께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카드는 전자지갑업체가 장악한 디지털 금융 내 결제 부문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베트남은 노점부터 백화점까지 대부분의 상점에서 전자지갑을 통한 결제가 이뤄질 정도로 전자지갑 핀테크 업체가 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하지만 신한카드는 전자지갑과 신용카드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판단 하에 신용카드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다. 전자지갑은 연동된 은행 계좌에 현금이 있어야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금 사회’의 범주를 벗어나진 못했다. 베트남 결제시장에는 미래의 소득을 당겨 쓰는 신용이라는 개념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현금에 기반한 전자지갑업체는 카드사의 경쟁사가 아닙니다. 현금이 없는 고객한테 신용(크레딧)을 주고 물건을 사라고 하는 게 신용카드업인 만큼 사업분야가 완전히 다르죠.
오태준 신한카드 베트남 법인장

오태준 신한카드 베트남 법인장의 판단은 유효했다. 지난해 8월 출시된 신용카드 ‘더 퍼스트(THE FIRST)’는 기존 소매금융업 설계사 5400명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모집 인프라를 통해 월 7000장의 발급이 이뤄지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오태준 신한베트남파이낸스 법인장이 지난 13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유진 기자

신한카드는 앞으로 신용카드에 베트남 고객의 풍부한 모바일 경험을 접목하는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올해 2차로 출시되는 신용카드는 가상(Virtual) 카드 형태로 발급한다. 애플·구글과 협업해 스마트폰만 있어도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기반의 애플·구글페이를 출시할 방침이다.

디지털 금융을 추구하는 정부에서도 페이에 필요한 단말기 보급 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신한파이낸스는 내년에는 카드 발급이 월 1만장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 법인장은 “기존 대출 고객에 대한 카드 발급 확대 등을 통해 카드의 보편화에 힘쓰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카드 발급이 폭발적으로 이뤄졌듯이 베트남에서도 신용도 평가의 확대를 통해 신용카드가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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