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직은 무조건 최저임금?…휴게실에 환풍기 설치요구 무리인가요"
"청소노동자, '저임금' 당연하단 생각…가장 큰 벽"
[편집자주] 거리는 흐름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엔 언제나 ‘정체’된 사람들이 있다. 경찰과 검찰, 지방자치단체 등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절망감을 안고 돌아섰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절박함은 30도 폭염에도, 영하 10도 한파에도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든다. 이들에게 거리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마지막 절규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청소노동자 윤경숙씨(65)는 서울시 도봉구 삼양로 덕성여대 캠퍼스에서 1년째 시위하고 있다. 시급 400원을 올리기 위해서다. 재작년 최저시급 인상분만큼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이 윤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다. 휴게실 내 환풍기와 샤워실 설치 등 근로환경 개선도 이들은 1년째 요구하고 있다.
'시급 400원 인상'과 '환풍기·샤워실 설치'는 애초 실현 불가능한 요구사항인 걸까?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언론 보도는 이어졌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들은 새해에도 거리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 조합원 중엔 대학 나온 엄마도 있고 아직 공부하는 엄마도 있다. 그만큼 사회가 변했고 청소노동자들도 변했다. 그러나 사회는 30년 전의 사고방식으로 저희를 대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는 저임금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가장 큰 벽처럼 느껴진다."
지난 21일 덕성여대 인문사회관에 있는 휴게실에서 만난 윤씨의 말이다. 며칠 전 뇌동맥류 재발로 수술을 받았다는 윤씨는 청소노동자의 '큰 벽' 같은 현실을 들려줬다.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임금인상 제시한 학교
지난해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은 최저시급보다 230원 높은 9390원이었다. 이들은 2021년 최저임금 인상분(5.0%)만큼만 2023년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학교 대자보에 담았다. 시급에서 400원 더한 9790원이다.
이에 대한 학교의 대답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임금 인상이었다. 학교 측은 5년간 12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12명은 현재 인원의 23.5%에 해당한다.
학교는 이를 위해 교수연구실, 실습실, 학과실 등을 청소 면적에서 제외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청소에서 제외한 장소들이 실제로 따져보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윤씨는 "알고보니 면적에서 제외한다는 곳들이 거의 다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들이었다"며 "청소 면적을 제대로 논의했거나 계산했다는 느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저 당장 인력 감축 설득을 위한 '면피용 제안'이었다고 평가했다.
윤씨는 "용역회사랑 계약이 내년까지인데 세상 어떤 노조가 향후 5년간 인원 감축 조항을 지금 약속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바라겠냐"며 "협상을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과 생활임금 보장, 휴게실 개선과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총장실 앞 무기한 철야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엔 집중 결의대회도 진행한다.
윤씨는 "집단교섭이기 때문에 12개 대학이 다 됐는데 우리 때문에 소급분을 지금 못 받고 있다"며 "학교가 어려운 건 알겠지만 덕성여대만 어려운 건 아니지 않느냐 그랬는데, (총장님 입장은)변함이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펜데믹 시기 때 3년 동안 멈춘 학교 정비와 학생 교육에 우선 투자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당장은 학교 재정에 무리가 있어 일단 이번 해는 임금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용역업체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원·하청 고용 구조에선 대학과 용역업체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가 가능하다. 청소노동자들이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대상은 용역업체(사용자)이지만 근로조건은 하청업체와의 교섭에서 결정되지 않고 대학과의 면담을 통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학교 측과의 면담 과정에서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확약을 받으면, 그제야 교섭권을 가진 용역회사 측이 이를 토대로 노조와 함께 임금·단체협약에 도장을 찍는다.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1년간 덕성여대를 '진짜 사장'이라고 부르며 피켓을 든 이유다.
윤씨는 이번 협상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학교도 그렇고 일부 학생들도 그렇고 청소노동자는 무조건 저임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큰 벽인 것 같다"며 "그건 청소하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아래 취급하는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조합원 중에는 대학을 나온 엄마도 있고 공부를 아직 하고 있는 엄마도 있다"며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서 청소노동자들도 변하고 있는데 30년 전의 사고방식으로 (저희를) 대한다면 이젠 그 갭이 너무 크다"고 강조했다.
◇ 휴게실에 환풍기 설치, 한여름 땀 씻을 샤워실 설치 요구도 무리인가요
청소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6월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용역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의 사망은 사건 발생 후 약 6개월간 기나긴 검토를 거쳐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당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고인이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질판위는 "환기가 잘 안 되어 곰팡이가 잘 생기는 샤워실의 곰팡이를 씻어야 하는 등 강한 육체적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 업무시간만으로 산정되지 않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지속했다고 판정된다"라고 명시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외에 요구하는 것이 바로 휴게실과 샤워실 개선이다.
윤씨는 "학생회관에 있는 휴게실은 계단 밑에 있어 구조적으로 위험하며 상당수의 휴게실은 환기를 할 수 없어 불쾌한 냄새가 난다"며 "인문사회관 휴게실은 환풍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근로감독관의 지적사항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14일 고용노동부에서 공공기관노사관계과에서 실태조사를 한 결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부적합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정부에 학교의 개선 의지만 전달됐을뿐 실행은 계속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8월18일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제19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사업장 휴게시설의 바닥면적과 천장높이, 위치, 조명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할 의무를 가진다.
개정 전에는 제재 규정 없이 휴게시설 설치에 관한 규정만 두고 있어 실효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개정 후 설치·관리 기준이 마련돼 처벌 근거가 생겼다.
기준에 따르면 휴게실의 최소면적은 6㎡,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는 2.1m 이상이어야 한다. 온도는 18~28℃ 수준 유지할 수 있는 냉난방 기능을 구비해야 하며, 습도(50~55%)와 조명(100~200Lux)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과 창문 등을 통한 환기 기능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윤 분회장이 근무하고 있는 인물사회관 건물의 용역 청소자 휴게실은 1층에 있다. 하지만 건물 자체가 지면에서 움푹 파여있는 땅에 지어져 사실상 다른 건물의 지하1층과 같다.
윤씨는 "지난 장마철 강의실에 녹색 곰팡이가 퍼져 그걸 닦는다고 애를 먹었다"며 "마침 그때 에어컨 공사를 해서 환기가 안돼 더욱 심했다, 결국 락스물로 여러번 닦았는데 숨쉬기가 힘들어 코로나 걸린줄 알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샤워시설은 있어도 사용하지 못했다. 규정상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직원과 학생이 쓰는 시설이라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다고 윤씨는 말했다.
이어 "일정 시간을 정해서 (청소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주시면 서로 편하지 않겠냐 의견을 냈었지만 아무 조치가 없다"며 "샤워시설 마련은 법적으로도 강제 조항이 없어 학교가 불이익 당할 일은 없지만 땀나는 여름에 청소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공공운수 서울지부는 11개 대학의 146개 휴게실을 조사한 결과 샤워실이 있는 곳은 16곳(10.6%)에 불과하며 개선이 필요한 휴게실도 조사 대상 146곳 중 71곳(48.6%)이었다. 71곳 중 46곳은 덕성여대와 마찬가지로 지하나 계단 밑에 위치해 있었다.
윤 분회장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덕성여대 휴게실이 이미 많이 개선되어 왔다는 점을 연신 강조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탄압을 받았던 옛날을 생각하면 이것도 나아진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지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뤄온 모든 것들을 학교가 예전으로 되돌리려는 것 같다"며 "이젠 더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고 더이상 노동 환경이 후퇴하는 일은 막을 것이다"고 말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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