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모두 2023년을 위기라 말하지만...

2023. 1.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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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연말연초 모임에 가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새해 경제는 어떨 것 같습니까?”
그래서 11월쯤 되면 전망서와 인터넷, 유튜브를 뒤집니다. 주말 카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의 전망도 세워봅니다. 

작년에도 준비를 좀 했습니다. 미·중 관계,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인플레이션,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부동산 가격, 남북 관계, 한국 기업의 경쟁력 등 이슈들을 점검해 봤습니다. 그런데 연말 수많은 점심·저녁 자리에서 그 흔한 질문을 하는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괜히 공부했나 싶었지요.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2023년처럼 전망하기 쉽고 수많은 기관들의 전망이 비슷한 해가 없었다는 것을…. 질문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위기·균열·금리 인상·전쟁·불확실성·수요 위축·하향 조정·감원 등 좋지 않은 뉘앙스의 말을 막 갖다 붙이면 2023년 전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전망대로 될까. 약간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2020년 3월이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한국경제신문 증권부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가가 1400대까지 떨어졌다가 1700대를 회복하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떨어진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주가는 이후 2년간 질주해 3300에 이릅니다.

이번 위기도 어쩌면 ‘두려움의 크기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설령 위기가 오더라도 그 타격은 덜할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이면지를 쓰는 등 ‘쌍팔년도식’ 위기 경영을 시작한 것을 보면 알고 있습니다. 이미 대비에 들어간 거지요. 예상하지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면 전치 8주가 나오지만 ‘저러다 사고 나지’ 싶은 상태에서 당하면 부상 정도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물론 두렵습니다. 전쟁으로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는데 계속될까 두렵고 어려운 때 공공 기관 감원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두렵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희망을 잃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이겠지요. 저출산과 국가 전략, 미래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사라져 골든타임을 놓칠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인간은 태초에 위기에 대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선사시대 동굴 속에 숨어 있던 소심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기롭게 동굴 밖으로 나와 “다 덤벼봐”라며 힘을 자랑했던 선조들은 모조리 다른 동물들에게 잡아 먹혔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동굴 속에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진화의 결과물로 인간의 위기 대처 능력을 키워 줍니다. 이 호르몬은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대처하도록 몸을 세팅해 줍니다.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혈액 방출량을 늘리고 정신을 집중하게 도와줍니다. 아마 한국은 지금 1인당 코르티솔 분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처럼 하나의 이슈를 전 국민이 공유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단일성 밀집성이란 특징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으며 위기를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실제 한국은 위기가 아닌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10% 안팎일 때도 위기라는 얘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위기를 체화한 사람들 같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국난 극복이 한국인들의 취미’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브루킹스연구소와 이코노미스트 등이 내놓은 신년 전망을 다뤘습니다. 전망은 비슷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겨울 겨울 겨울 그리고 또 겨울입니다. 그래도 신년호라 희망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모텔 청소부가 기업 가치 10조원이 넘는 데카콘의 주인공이 된 이수진 야놀자 대표,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가 세계적 창고형 마트 코스트코를 창업한 제임스 시네갈의 스토리 등을 담았습니다. 기자는 이를 ‘독한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새벽에 총살될 것을 아는 것만큼 정신을 깨우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위기는 사고의 시스템을 일깨워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여 줍니다. 영어 클라이스(crisis)도 상황에 대한 판단, 의사 결정, 구분을 뜻하는 크리네인(krinein)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위기의 2023년을 기회로 만들 준비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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