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 플라스틱 러브 - 이강
건태는 미스터 구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여러번 봤다. 영상은 미스터 구가 왜 다크투어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미스터 구는 처음에 죽은 앨버트로스의 배에 플라스틱이 가득 들어 있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마치 보름달물해파리에 한방 쏘인 느낌이었달까요. 그 사진을 본 뒤로 자신의 배 속에서도 뭔가 꾸르륵 하고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그래서 숨을 쉬는 것조차 더부룩했다고 말했다. 사타구니가 마치 새우말이나 게바다말 같은 해초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니까요. 자꾸 짠 내가 배꼽까지 타고 올라왔거든요. 미스터 구는 하루에도 몸을 몇번이나 씻었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그러니까 미스터 구가 처음부터 다크투어를 기획한 건 아니었다. 미스터 구는 마술사였다. 아니 사실은 연극을 연출했고 가끔은 대본도 썼고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다큐멘터리는 이어서 주로 어린이극이나 청소년극을 연출한 미스터 구의 작품 중 몇장면을 보여줬지만,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미스터 구는 공연이나 연습이 없는 날이면 바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엔 오염되어 버려진 곳들이 많아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제가 하는 작업은 대지 미술이나 랜드아트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뭐 딱히 신선한 발상도 아니죠. 이미 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미스터 구는 밀물과 썰물 때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조수 웅덩이에서 요가 동작을 하고, 돌말이 모여 있는 곳에서 플라스틱을 주워 탑을 쌓고 108배를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예술인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했다. ‘프로젝트 씨위드 다크투어’의 시작이었다. 때마침 다크투어가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물론 다크투어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요. 묘지 같은 곳을 가거나 아니면 전쟁과 관련된 곳을 방문하거나. 식민지 역사를 둘러보거나 홀로코스트 장소를 찾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재난·재해 지역을 가기도 하고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하지요. 저는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본질적인 것, 이 오염된 공간 안에서 무언가를 사람들이 느끼면 좋겠습니다. 밥을 씹어 먹듯 음절 하나하나에 힘주어 말하는 미스터 구의 말투에는 좀체 가볍거나 장난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와,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진짜 신기했어요. 정말 그렇게 초현실적인 광경이 마술처럼 펼쳐져서 말로 표현하기 힘이 드네요.
다크투어에 참여했다는 사람의 인터뷰가 오히려 더 과장되고 익살맞았다.
건태는 미도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다. 더불어 미스터 구의 창작집단 ‘프로젝트 씨위드’가 인천 시민예술축제 기간에 맞춰 다크투어를 무료로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딱 7명만 모집한다고 했다. 건태는 미도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의사도 건태와 미도에게 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리라고 얘기했었다. 결혼한 지 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든 건태와 미도는 주중에 각자의 일로 바빴다. 주말이라고 해도 미도는 주로 거실에서 건태는 작은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끼니때가 되면 같이 밖에 나가 밥을 먹고 돌아왔다. 예상과 달리 미도는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 갯바위 앞에서 떠밀려오는 미역과 다시마를 건져 머리에 얹고 갯지렁이처럼 천천히 팔을 꿈틀대는 미스터 구의 모습에 미도는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참 오래간만이었다.
건태와 미도가 모임 장소에 도착한 건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제법 이른 시간인데도 집합 장소인 시청 앞 열린 광장에는 공연 준비와 설치하는 이들, 아침부터 일찍 나온 시민들이 한데 모여 번잡했다. 다크투어의 모임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스터 구는 긴 장대에 비닐로 만든 거대한 해파리와 미역을 달아두었는데 멀리서 보면 대형 쓰레기봉투가 펄럭대는 것 같았다. 15인용 승합차가 그 앞에 대기 중이었다. 플라스틱 패널에 물감으로 갈겨 쓴 ‘프로젝트 씨위드’란 글자도 바람에 나부꼈다.
미도가 건태에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게 그 예술가들과 함께 떠나는 다크투어란 거지?
건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승합차 앞에 모여 있었지만, 아직 확신하기엔 일렀다. 장난스러운 문자를 받은 건 어제였다.
9시 시청 앞 열린 광장에서 집합. 점심 제공. 운동화와 편안한 복장. 저녁 6시에 출발 장소에서 해산 예정. 마술 같은 여정에 동참하기로 한 여러분의 용기를 환영합니다. 참석이 불가할 경우 대기자를 위해 반드시 이 번호로 회신해주십시오.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요원 미스터 구와 프로젝트 씨위드.
건태는 문자가 어딘가 장난스러워 가족 단위로 온 어린이들만 북적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모집 요강에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만 참여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건태는 안도했다. 그래도 외국인 커플까지 있는 건 의아했다. 건태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 것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영 이상하면 중간에라도 집으로 다시 가버리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최 측, 그러니까 프로젝트 씨위드는 바빠 보였다. 운전기사와 영상에서 봐서 익숙한 미스터 구 이외에도 모자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붙이고 영상을 찍는 여자와 확성기를 들고 있는 남자가 서로 감독님, 영상작가님 하고 존대하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출발과 동시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배우로 추정되는 두 남자가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한명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장했고 다른 한명은 해파리였다. 아무리 9월초라고 하지만 아직 햇볕이 뜨거운데 저런 비닐을 뒤집어쓰고 얼굴에 페인팅까지 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싶었는데 정작 그들의 움직임은 가벼웠고 유연했으며 의상 역시 공들여 만든 티가 났다. 해파리가 생존키트라며 참가자들에게 종이상자 하나씩을 나눠주면 미세 플라스틱이 참가자들의 손을 잡고 한 명씩 버스에 태웠다. 건태와 미도는 버스에 앉아 상자를 열었는데 거기엔 물과 약간의 비스킷, 젤리, 에코백, 바닷새의 90%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었다 따위가 적힌 책자, 다크투어 5만원 상품권과 설명서가 들어 있었다.
-뭐야, 이것도 나름 홍보인가 봐.
미도가 상품권을 흔들며 작게 말했다. 건태는 프로젝트 씨위드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문을 읽었다. 오늘은 행사주최 측에서 지원해서 무료 여행이지만 평소 이 체험을 하고 싶다면 십만원 상당의 비용을 내야 하는 모양이었다. 뭐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한사람당 십만원을 내고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건태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미스터 구를 쳐다봤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참가자들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미스터 구의 창작집단 ‘프로젝트 씨위드’가
다크투어를 무료로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태는 미도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의사도 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리라고 얘기했었다.
결혼한 지 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든 건태와 미도는…
-저희 프로젝트 씨위드와 귀중한 토요일을 함께 해주시겠다고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직은 도대체 이게 뭐야? 싶으셔서 어리둥절하시겠지만, 그냥 오감을 열고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즐겨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이제 강화도로 먼저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들어가 잘 알려지지 않은 P지역과 M지역을 주로 돌아볼 예정입니다. 다크투어라고 해서 너무 겁먹지 마세요. 일단 도착하면 맛있는 점심부터 먹을 겁니다. 점심 메뉴를 말씀드리자면-알레르기가 있으신 분은 알려달라고 미리 문자를 보냈는데 아무도 없으셨던 관계로-한식 백반입니다. 일단 가시는 길은 편안히 눈 좀 감고 가시고요. 웰컴투 아워 매지컬 프로그램 프로젝트 씨위드.
미스터 구는 외국인 커플을 위해서 영어로도 열심히 설명했다. 미스터 구는 그들이 인천 시민예술축제에 참가한 외국인 아티스트로 본인들의 공연이 없는 날이라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한 거라고 덧붙였다. 건태는 가뜩이나 기묘한 프로그램에 외국인까지 함께 다닌다고 생각하니 다소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커플이야말로 여행을 가장 즐겁게 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서 마임을 한다는 남자는 뭐가 그리 신기한 건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찍기 바빴다. 그는 터널에 들어갈 때 찍고, 나올 때 찍고, 승합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배로 이동하는 모습을 찍고, 갈매기에게 새우깡 주는 걸 찍고, 섬에 들어가는 모습을 찍고, 서해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갯벌과 멀리 번득이는 바다를 찍었다.
아직 제대로 된 체험을 하지도 않았는데 건태는 벌써 허리가 쑤셨고 어디 기대 서서라도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생존키트에서 젤리를 꺼내 우적우적 씹었지만 입에 모래가 낀 듯 텁텁했다. 미스터 구가 점심식사 장소라고 안내한 곳도 실망스러웠다.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폐업 직전의 가게였다. 가게 앞에 수족관이 있었지만, 생선 한 마리 없이 텅 비어 있었고 물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간판에 붉은 글씨로 회, 바지락칼국수라고 쓰여 있는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햇볕이 점점 따갑게 이마를 쑤셨고 무엇보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가게 앞마당에는 파라솔을 꽂은 파란색 플라스틱 탁자 몇개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수저와 기본 찬을 깔아놓은 것 같은데 미스터 구는 굳이 평상을 가리키며 거기에 다 같이 앉아 먹겠다고 했다. 평상은 마치 무대처럼 높았는데 계단을 몇개나 밟고 올라가야 했고 미도는 불편했는지 건태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불편한 건 건태도 마찬가지였다. 힐끗 보니 할머니 한명이 가게 안에서 밥을 푸느라 바빠 보였고 십대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부지런히 국을 날랐다.
-디스 이스 코리안 트레디셔널 씨위드 수프. 유 노우? 디스 이스 해파리냉채. 스파이시 벋 베리 헬시 푸드.
미역국, 해파리냉채, 김치, 생선 한마리씩. 반찬을 훑어보던 건태의 눈썹이 꿈틀대는 걸 미도는 알아차렸다. 건태는 미역국을 싫어했다. 아니 어쩌면 그날 이후로 안 먹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결혼하고 두번째로 맞는 건태의 생일이었다. 그날, 미도는 황태미역국을 끓였다. 그런데 건태는 애써 끓인 미역국을 먹기 싫다고 말했다. 못 먹겠다고 했다. 아니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했나. 건태는 식탁에 숟가락을 탁, 하고 내려놓더니 젓가락으로 미역국을 휘휘 저었다. 흐물흐물한 미역이 한데 엉켜 코처럼 흘렀다.
-내가 지금 이래. 내 꼴이 꼭 이 미역 같다고.
건태는 삽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등에 땀이 흥건하게 번질 때까지 그러니까 어떤 날은 한시간도 넘게 용을 썼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건태는 도저히 삽입할 수 없었다. 미도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송도에 아파트 한채를 갖고 있었고, 그 아파트의 집값은 최근 몇년 동안 몇배로 뛰었으며, 미도는 경기도 외곽의 초등학교에서 최연소 행정실장으로 근무했다. 건태는 박사 학위를 딴 후에 큰 고생 없이 모교에 자리를 잡았다. 외적인 삶의 면면만 따지고 보자면 불행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건태가 겪고 있는 유일한 불행이라면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마다 미도의 하반신이 플라스틱으로 변해버리는 데 있었다. 그들이 마침내 성의학 전문의가 운영하는 정신과를 찾았을 때 의사에게 던진 건태의 첫마디는 진심이었다.
아니, 정말 플라스틱이 된다니까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왜 그 있잖아요. 염산, 황산, 질산을 부어도 녹지 않는 그 플라스틱이요.
…
이런 커플들이 사실 많아요.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오신 겁니다.
제가 앞으로 숙제를 내줄 텐데 집에서 잘해 오시면 됩니다.
-아니, 정말 플라스틱이 된다니까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정말 플라스틱이 되어 버린다고요. 왜 그 있잖아요. 염산, 황산, 질산을 부어도 녹지 않는 그 플라스틱이요.
그 옆에서 미도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에겐 어떤 성적인 트라우마도 없어요. 예전 남자친구들이랑요? 안 했죠. 무서워서요. 오염될까봐. 혹시 병이라도 걸리면 어떡해요.
-얘는 하루에 손을 스무번은 더 넘게 씻는 거 같아요. 그리고 하려고만 하면. 내가 무슨 독침이라도 쏘는 것처럼 잔뜩 긴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폐기물 취급받는 기분입니다.
의사는 건태와 미도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커플들이 사실 많아요. 그런데 다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우리 병원에 찾아옵니다. 이건 심리적인 문제가 더 큰 거라 행동치료를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제 환자 중에 전문직이 많은 편인데 비뇨기과 의사도 있고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도 있습니다. 무려 결혼 17년 만에 온 커플도 있어요.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오신 겁니다. 제가 앞으로 숙제를 내줄 텐데 집에서 잘해 오시면 됩니다.
미도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 사이는 정말 좋다는 걸 아셨으면 해요. 그것만 빼고요.
건태와 미도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거렸다. 주둥이가 뭉툭하고 등 쪽에 가시가 돋아 있는 게 난생처음 보는 생선이라 손이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래전에 구운 건지 바싹 말라 고부라져 있었다. 해파리냉채도 흔히 알던 모양과 달랐다. 너무 큼지막했고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렸는데 흐물흐물해서 도통 입으로 넣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스터 구는 귀한 보리굴비를 먹듯이 머리까지 쩝쩝대며 핥았다. 왜 입맛이 없으세요? 그럼 그 생선은 제가 대신 해결해드릴까요? 건태와 미도 앞에 놓인 생선까지 남김없이 발라 먹는 미스터 구의 거무튀튀한 입 주변은 곧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이 동네도 한때는 갯벌에서 이것저것 많이 잡혔어요. 고둥이나 쏙·망둑어 같은 거 들어보셨죠? 어느 순간부터 다 사라지고 해파리만 우글거리는데 어떤 피디가 텔레비전에 나와 그럽디다. 쓰레기 더미에서 해파리가 가장 잘 자란다고. 그러니 여긴 해파리가 자라기에 최적의 장소죠. 자포라고 알죠? 해파리의 독침. 그것 때문에 해파리가 많은 바다엔 다른 생물이 없어요. 여기도 그래. 온통 해파리랑 색깔 이상한 미역 같은 거. 플라스틱 쓰레기뿐이지. 근데 뭐랄까. 난 여기서 작업하면 영감이 쏟아져요.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느낌이랄까. 척추가 곧추서면서 찌릿하달까. 덕분에 처음 보는 해파리에 몇번 쏘이기도 했는데. 뭐랄까. 느낌이 아주.
말끝을 흐리는 미스터 구의 한쪽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쿰쿰하면서 저릿한 냄새가 났다. 건태는 그게 미스터 구의 위장에서 올라온 냄새인지 주변에서 바람을 타고 온 냄새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건태는 단전에서부터 뭔가 꾸르륵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미도를 쳐다봤다. 의외로 그녀는 별다른 동요 없이 미스터 구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모두 식당 앞마당에 앉아서 프로젝트 씨위드의 공연을 감상했다. 평상에 있던 밥상을 치우니 그럴듯한 무대로 보이긴 했다. 해파리 분장을 한 배우-아마 다시 서울에 올라갈 때까지 의상을 벗지 않을 테지만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화음을 넣고 중얼중얼하기 시작했다. 노무라입깃해파리, 라스톤입방해파리, 짝. 커튼원양해파리, 푸른우산관해파리, 짝짝. 평면해파리, 보름달물해파리, 짝짝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미스터 구는 그 소리에 맞춰 비닐 뭉치와 페트병을 무대로 던졌다. 해파리는 그걸 열심히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미스터 구는 무대 아래에서 플라스틱 깡통을 두드렸고, 감독이라는 사람은 파도와 폭우 소리 같은 음향 효과를 내기 위해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다. 영상작가는 그 모든 장면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순간 건태는 단전에서 치밀어 오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건. 그건 당혹감이었다. 망했어. 이 여행은 망했어. 건태는 그래도 공짜로 왔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싶어 미도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눈으로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미도는 건태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까닥이며 퍼포먼스를 스마트폰에 담고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공연 이후 미스터 구와 함께 걸어간 데는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갯벌이었다. 야트막한 산이 갯벌을 빙 두르고 있었고 갯질경이, 해홍나물 같은 염생식물이 군데군데 보였다. 하지만 갯가의 갈대 사이로 군데군데 쓰레기가 무성했다. 2층짜리 폐건물도 보였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모양새였다. 건태는 영화 세트장에 갑자기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미스터 구와 그 일행이 이 여행을 위해 일부러 조악하게 만들어놓은 건 아닐까. 갯벌에 높이가 다른 구조물들이 우뚝 솟아 있는 게 영 뜬금없었다. 미스터 구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구조물들을 가리키며 원래 미역을 널었던 곳이라고 말했다. 미역 맨 것을 말리기 위한 구조물들이 지금은 모두 흉물스럽게 변해버렸다고, 아직 철거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지평선 끝으로 검은 파도 거품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었나.
그건 거품도 파도도 아니었다. 검은 미역과 해파리 아니 플라스틱이 한데 엉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모자반류의 해조가 검은 띠를 이루며 바다를 가득 메운다는 사르가소해를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이곳에 어느 순간부터 플라스틱이 바다에 쓸려오더니 다음엔 해파리 떼가 밀려왔지요. 해파리가 밀려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해파리냉채를 해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어요. 자세히 보면 플라스틱과 검은 비닐이 끈끈하게 엉켜 있어요. 아직 이런 현상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 프로젝트 씨위드는 이런 걸 또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프로젝트 씨위드 많이 홍보해 주시고요. 자, 우리 이제 여기저기 흩어져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콜라주 작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파리인지 플라스틱인지 헷갈려서 막 아무거나 함부로 집어 올리진 마세요. 다양한 모양이 있는 걸 그냥 관찰하세요. 라스톤입방해파리 같은 경우엔 한 개체의 몸 안에 다른 개체가 들어가 있는 특이 종도 있어요. 포갬 현상이라고도 합니다만. 너무 멀리까지 가지는 마시고 저 건물 안에도 들어가 보시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찍어 오세요. 30분 뒤에 여기서 만나겠습니다.
오후 3시의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에 꽂혀 입이 턱턱 말라오는데도 사람들은 별말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뭡니까 이게.
건태가 갯벌로 미끄러져 걸어가는 미스터 구를 붙잡았다.
-저기요. 내가 이런 땡볕에 쓰레기나 보자고 여기 온 줄 아십니까.
미스터 구는 침착했다.
-아, 네. 이런 예술 프로젝트가 처음이시면 당황하실 수도 있는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처음부터 안내문에 여행이 아니라 예술에 방점을 찍었다고 공지하지 않았습니까. 마술 같은 하루가 펼쳐질 거라고. 그게 어떤 하루가 될지는 마음을 여는 참가자의 태도에 달렸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 열심히 참여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서울로 올라가서 해명할 건 더 해명하고 제가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건태는 미스터 구의 대답에 기가 막혔다. 미도가 건태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렸다. 건태는 자의식에 절어 있는 예술가 나부랭이의 뻔뻔함보다 미도가 대신 나서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게 더 거슬렸다.
-그러니까 당신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미도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정작 책망받아야 할 사람은 미도 아닌가. 건태는 최근에 부교수로 임명된 이후에 더 바빠졌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그리고 이제는 시도하기도 전에 흐물흐물해졌다. 물컹해졌다. 미도 때문이다. 처음엔 미도의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제자리였다. 똑같았다. 더군다나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미도는 침대에서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 답이 없었다. 무슨 오염물질 내지는 독극물 취급을 하며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통에 꼭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젤을 사서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미도의 다리는 플라스틱으로 변해버렸고 건태가 지쳐 나가떨어진 뒤에야 서서히 온기를 되찾고는 원래 알던 고요한 얼굴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건태도 그다지 원하지 않게 되었다. 건태는 저 멀리 앞서 걷는 미도를 봤다. 미도는 파우치를 옆구리에 끼고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불안은 말린 미역 같은 걸지도.
아주 적은 물만 있어도, 미세한 자극만 있어도 충분했다.
미도의 불안은 멈추지 않고 불어나기만 했다.
내심 자신이 비정상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플라스틱으로 변한 하반신을 보면 혀가 굳었다.
-미도야. 야 이미도. 야! 야.
미도는 건태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뒤돌아보고 싶지도, 굳이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미도는 건태를 보면 자주 미안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건태는 자주 짜증을 냈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했다. 주말에는 거실과 방마다 떨어진 긴 머리카락을 주워 모으더니 왜 이렇게 흘리고 다니냐고 닦달했다. 방금만 해도 건태는 미스터 구에게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가. 정작 여기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본 건 건태였으면서. 미도는 본능적으로 다크투어란 말이 꺼림칙했지만, 간만에 무언가를 시도해보려는 건태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미안해서 따라왔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까 백반집에서 나온 미역국을 보며 자신을 쳐다보던 건태의 눈빛도 생각났다. 그러자 아주 잠깐이지만 마른 미역을 한줌 아니 두줌 정도 목구멍에 넘기면 어떨까를 상상했다. 미역이 배 속에서 점점 불어날까. 그러자 배 속이 꿀렁꿀렁해지며 팔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도는 목 디스크가 있었고 쉽게 긴장했다. 행정실 직원들과의 관계도 일반 교사들과의 관계도 영 어렵게 느껴졌다. 학교의 규모는 작지만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처리해야 할 업무는 과중한 편이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리한 요구를 무턱대고 하면 어쩌나 자주 걱정했다. 미도의 어깨와 승모근은 자주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인가를 먹으면 마음이 말랑해지고 위장은 편안해졌다. 미도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착한 딸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주 작은 자극에도 예민했고 청결에 집착했다. 부모님은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성격이 조용한 미도를 볼 때마다 거저 키웠다며 칭찬했지만, 손가락 마디 사이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손을 씻어대는 통에 언제나 핸드크림을 잊지 않고 챙겨야 했다.
불안은 말린 미역 같은 걸지도. 미도는 아주 조그맣게 말했다. 아주 적은 물만 있어도, 미세한 자극만 있어도 충분했다. 미도의 불안은 멈추지 않고 불어나기만 했다. 내심 자신이 비정상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플라스틱으로 변한 하반신을 보면 혀가 굳었다.
-질경련입니다. 아, 그건 옛날에나 쓰던 말이고요. 성기능장애지요. 정확한 명칭은 삽입 성행위 공포증입니다.
그래서 미도는 진단받았을 때 안도했다. 두 다리가 순식간에 플라스틱으로 변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의사는 미도가 불안의 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약 12번의 행동치료를 통해 불안의 강도를 낮춘다면 삽입 문제도 곧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미도는 의사가 내준 숙제를 한번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해냈다. 첫날 과제는 자기 성기를 거울로 보고 그려오는 것이었다. 사춘기 시절조차 성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미도는 그제야 겨우 용기를 내어 응시했다. 플라스틱으로 변해버린 하반신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물렁거리더니 이윽고 해파리처럼 투명하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수족관에서 보았던 푸른 빛이 도는 대형 해파리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누구의 것도 아닌 미도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과제는 끝이 아니었다. 다음 과제는 투명한 다일레이터를 하나씩 삽입하는 연습을 하는 거였다. 끝이 둥근 투명한 플라스틱 막대기는 1호부터 무려 5호까지 있었다. 호수에 따라 지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의사는 젤을 묻혀서 단계별로 넣는 연습을 하면 전혀 아프지 않다고 했다. 물론 미도는 처음엔 1호를 넣는 것만 해도 몹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의사가 준 약을 먹고 미도는 자신이 흐물흐물 움직이는 해파리라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상을 하면 긴장도가 조금 떨어지면서 몸이 가벼워졌다.
의사는 말했다.
-우리 병원은 발기 부전이나 섹스 중독이 있는 남자들이 오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어떻게 고치는지 아세요? 다 성감을 개발해서 고칩니다. 삽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푹 꺼져버리거든요. 그런 생각 없이 일체 삽입을 금지한 상태에서 성감을 깨워가다보면 내가 모르던 감각이 열리고 결국은 나를 제일 잘 자극하는 게 내 아내, 내 남편이니 자연히 부부 사이도 좋아질 수밖에요. 무슨 허튼짓인가 싶으시겠지만 20년, 30년 뒤에도 행복한 성생활을 누리고 싶으시다면 꼭 집에서 연습하세요.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들이 아주 많아요. 누른다거나 긁는다거나 간지럽힌다거나. 재밌고 즐겁게 논다고 생각하시고요.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온몸을 자극하면서 자극이 있는 부위를 최대한 많이 찾아오세요.
건태와 미도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건태는 자극을 위해 온도차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얼음을 얼려왔다. 미도의 배 위에 얼음을 올려놓자마자 미도는 화들짝 놀라며 건태를 밀쳤다.
-이렇게 차가운데 당신 미쳤어?
그건 건태도 마찬가지였다. 미도가 화장용 붓이라고 가져와서 건태의 팔꿈치를 쓸었을 때 너무 따가워 오히려 기분이 안 좋았다. 면봉으로 날갯죽지를 자극할 때는 간지러워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리석게 느껴졌다.
의사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은 하지 못할 거라면—생크림을 올리건 기름을 바르건 손톱으로 긁건 타조 깃털로 간지럽히던—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집에 와서 쉬고 싶은데 그놈의 성감 자극 어쩌고를 생각하면 또다시 과업을 떠맡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건 사실 미도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미도에게 스스로 자극해서 쾌감을 많이 느껴봐야 한다며 바이브레이터를 구매하고 매일 연습하라고 했다. 미도는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이걸 통해서 삶의 질이 올라간 게 아니라 질의 삶이 올라갔습니다’란 댓글이 달린 제품을 구매했지만, 이사를 하면서 충전기를 잃어버렸고 그 핑계로 후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도는 파우치에 다일레이터 만큼은 꼭 넣고 다녔다. 그리고 그걸 하루에 한 번씩 끓는 물에 삶아서 소독했다. 의사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 남편이랑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건 삶을 수도 없는데. 미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손을 씻을 때마다 다일레이터도 꼼꼼하게 씻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씻는 걸 멈출 수 없었고 가방에 넣고 다니면 그제야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금도 미도는 파우치 안에 플라스틱 다일레이터를 넣고 있었다. 건태가 곧 미도를 따라잡았다.
-미도야, 들었으면 대답해야지.
그때였나. 미도의 눈이 커진 게.
-이거 봐.
이름 모를 염생 식물들과 쓰레기에 밀려온 거무튀튀한 해조류와 처음 보는 종류의 해파리 군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분홍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청백색이 오묘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갯벌에 오로라가 깔린 것 같았다. 투명한 몸 안에 미역을 기르고 있는 것도 있었다. 무수히 많은 촉수가 꼭 긴 소맷자락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건태와 미도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그건 해파리가 아니었다. 모두 미세 플라스틱이었다. 마치 비즈처럼 알알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군락을 이룬 채 끝도 없이 뻗어 띠를 만들었다.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닌 이런 어중간한 곳을 마치 침공한 거 같네.
미도가 꿈틀거리는 걸 손으로 집어 올렸다.
-뭐야. 만지지 말랬잖아. 잘못하면 진짜 큰일 나겠어.
건태가 기겁하며 물러났는데도 미도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플라스틱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맛조개처럼 보여. 근데 만지면 이상하게 아주 따뜻하고 말랑거리면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
미도는 그걸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평소 미도였다면 생각도 못 할 만큼 대담한 행동이었다. 온통 쓰레기로 뒤덮인 갯벌에서 감귤류 향기가 난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미도는 그걸 건태의 팔꿈치에 살짝 갖다 댔다. 단지 팔꿈치일 뿐인데도 혈관이 움찔거리면서 짜릿했다. 건태의 팔꿈치가 물감이 든 것처럼 조금 푸르게 변했다.
아무도 지평선 멀리 갈대 사이에 서 있는 건태와 미도를 찾지 않았다. 건태와 미도는 갯벌에 서서 아까 점심을 먹었던 식당을 바라봤다. 때마침 관광버스 한 대가 온 게 보였다. 형광 조끼와 원색의 모자를 쓴 할아버지와 할머니 수십 명이 식당 앞의 마당을 메우고 있었다. 마임을 하는 프랑스 남자를 비롯해 함께 온 일행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그러니까……. 그들은 흐물흐물 춤을 추고 있었다. 얼굴에 품바 분장을 하고 여기저기 천을 덧댄 한복 차림의 사내가 선글라스를 쓰는 게 보였다. 그는 쩔렁거리는 큰 가위를 들고 평상 위로 올라가 경음악을 틀었다.
짜라 짜라 짠짠짠. 짜라 짜라 짠짠짠.
건태와 미도가 서 있는 자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가시오가피 물드세요, 라고 외치는 걸걸한 목소리도 들려 왔다. 막걸리 쉰내가 온 갯벌을 떠돌아다녔다. 미도는 그녀가 알고 있던 단정하고 균일한 세계가 펄 모랫바닥 아래로 우르르 빨려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미스터 구와 그 일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신나게 춤을 추며 ‘에코백 2만 원’을 외치고 있었다.
짜라 짜라 짠짠짠.
성감을 자극하고 개발하겠다며 침대에 누워 있을 땐 간지럽거나 아프기만 했는데 둘은 우습게도 경음악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원투 쓰리 포. 하나둘 탭탭탭. 둘둘 탭탭탭. 건태의 손은 차가웠지만 물컹했다. 미도는 인제야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항상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 훈련을 하라고 했었다. 미도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허리가 휘었다. 둘의 다리는 갯벌 아래로 조금씩 조금씩 빨려 들어갔다. 미도의 몸은 점점 투명하게 변하고 미끌미끌해졌다. 건태의 몸도 흐물흐물해졌다. 마치 갯벌 안으로 녹아내리는 유기물처럼. 겹치고 포갠 숨이 따뜻했다. 그리고 점점 뜨거워졌다. 라스톤입방해파리 같은 경우엔 한 개체의 몸 안에 다른 개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있어요. 라스톤입방해파리 같은 경우엔……. 미스터 구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둘은 완전히 포개졌다.
아무도 없었다. 갯벌에는 오직 미스터 구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다 모이셨군요. 빨리 버스에 탑승하세요. 이제 서울로 돌아가겠습니다. 곧 비가 올 것 같아요.
[당선 소감] “이제 드디어 문학 여정이 시작되었군”…나무처럼 단단한 작가 될것
삶은 경이로운 것이군요. 이제 막 낯선 여행지에 도착한 기분입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경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노트와 연필을 들고 다니며 항상 무언가를 적던 아이였어요. 구부정한 것, 구부러진 것,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이는 아이였지요. 그 아이가 커서 이제 작가가 되었다니 어쩐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이제 마음껏 변신하는 삶을 살아야겠어요. 곤충의 눈으로, 나무의 눈으로, 가끔은 어린아이와 할머니의 눈이 되어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 깃든 비밀을 찾아낼게요. 그리고 계속 쓸게요.
문학보다 먼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라는 박상우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존경하는 명환, 시인 의숙, 기꺼이 첫 독자가 되어준 섭, 문학적 씨앗을 발아시켜준 진기 그리고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수많은 친구와 사람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덕분입니다.
또한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었다면 그건 오로지 엄마 이지은의 사랑과 믿음 때문일 겁니다. 사랑합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저의 가능성을 믿고 기꺼이 응원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 작품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히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괜히 두 주먹을 꼭 쥐어봅니다. “에잇, 이제 드디어 문학 여정이 시작되었군” 하고 외쳐도 봅니다. 멀리 가는 작가, 오래가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나무처럼 단단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심사평] “환경에 대한 고민, 내 몸과 마음의 문제로 밀착한 세련된 작품”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열두편이다.
도시와 농촌, 늙음과 젊음, 현재와 과거 등 다양한 소재를 폭넓게 다뤘다.
심사위원들은 그 가운데 네 편을 집중해서 논의했다. <산란하는 빛의 서사> <외상> <아카시아 향기가 훅> <플라스틱 러브> 등이다.
<산란하는 빛의 서사>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삶을 보여주는 형식이 독특했다. 다만 카메라에 포착된 장면들과 그 장면에 담긴 이야기들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자주 끊겼다.
<외상>은 밀린 외상값을 받으러 다니는 이야기가 흥미로우며 그 과정에 서민의 애환이 잘 담겼다. 그런데 유튜브 콘텐츠 회사 인턴 경력이 있는 주인공이 식당을 열면서 카드 단말기를 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어색했다. 더 나은 결말을 고민했으면 한다.
<아카시아 향기가 훅>은 모내기하는 들녘이 매우 꼼꼼하고 따듯하게 담겼다. 사람 좋아 손해만 보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과 애정이 봄날 풍경과 적절히 섞여 아름다웠다.
<플라스틱 러브>는 현실 고발과 비유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세련된 작품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치는 해변에서의 다크투어와 몸이 플라스틱처럼 굳어 사랑을 나누기 힘든 부부의 처지가 균형을 이루며 고조된다. 두가지 난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식도 깔끔했다.
상반된 매력을 지닌 <아카시아 향기가 훅>과 <플라스틱 러브>를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생태에 대한 고민을, 풍경에 그치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의 문제로까지 끌어들여 밀착시킨 <플라스틱 러브>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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