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래산업으로서의 ‘농’

하라 켄야 일본디자인센터 대표이사 2023. 1.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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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됐지만 늘 새로운 농업
앞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
첨단기술·디자인과 융합땐
압도적인 전성기 맞이할 것
사진=Takashi Sekiguchi

‘농’이란 오래됐지만 늘 새롭고 그래서 미래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농’이란 ‘태양에너지를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식물에 저장하는 것’이라고 어느 농학자가 말했다. 이 말을 듣고서 ‘눈을 가렸던 비늘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농업이라고 하면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수분 그리고 태양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토양은 식물 뿌리를 받치고 양분을 공급하는 매개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토양이 없더라도 식물이나 농작물은 자란다. 물은 식물 뿌리에 흡수되는 것이다. 따라서 토양을 매개로 하지 않더라도 정밀한 파이핑(Piping)을 통해 식물에 물을 공급하는 방법만 확립되면 토양은 불필요해진다.

필자는 2022년 5~6월 충북 진천에서 ‘하우스비전 2022 한국 전람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농’이었다. 전람회를 공동 주최한 ‘만나CEA’라는 한국기업은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라는 첨단농업을 하는 회사다. ‘아쿠아포닉스’는 하층 수조에서 어류를 사육하며 어류에서 나오는 배설물을 양분으로 추출하고, 여과한 물을 상층에 있는 작물에 재배용수로 활용하는 하이테크 농업이다. 어류 배설물에서 얻은 양분은 액체비료로 만들어 작물에 공급하고, 수경재배에 이용한 물은 다시 여과해 어류가 사는 수조로 순환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물을 재배하면 수확량은 단위면적에 따라 일반 재배법의 약 20배까지 된다고 한다. 동시에 수조 안에서는 철갑상어류가 양식돼 캐비아 채취도 가능하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농업은 흙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물만 생산하는 산업은 아니다.

우리는 고도의 기술에서 비롯되는 ‘농’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동시에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보전한 다양한 지혜를 ‘농’이라는 개념으로 반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식량자급률을 보면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이 명확하다. 두 나라 모두 식량자급률이 30% 언저리다. 식료품의 건전한 유통이 위협받고 식량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가 안전보장의 첫번째 과제는 식량 확보다. 한국도 일본도 고도의 기술을 통해 산업이나 국가를 유지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공업에 지나치게 의존해 농업 존재를 경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국의 풍토와 환경을 이해하고 이에 적합한 농작물을 어떻게 건강하게 기르며 고도의 기술로 어떻게 농업을 수익성 좋은 산업으로 끌고 갈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른다.

한국은 서울이라는 대도시로 집중화가 극심한 국가다. 일본도 도쿄로 집중화 경향이 있지만 오사카·후쿠오카·삿포로·나고야 등 복수의 도시로 분산되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도시의 시대’는 서서히 종언을 고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풍요로운 농촌으로 이주해 어떻게 자신들의 미래를 행복하게 가꿔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농촌 젊은이가 도시에 사는 자신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을 가졌지만 오늘날에는 반대로 도시에 사는 젊은이가 지방으로 이주해 사는 미래를 그리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경험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지역 정책이 부각된다. 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나 특산물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농촌에서 어떤 자긍심이나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지, 농촌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 최선의 방안을 생각하는 지역 구조의 혁신, 즉 ‘지역시스템 2.0’의 구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방은 도시처럼 좁고 답답한 주거환경이 아니라 넓은 토지에 충실하게 주거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직장과 주거가 근접하면서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공간이다. 특히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다. 아름답고 멋진 환경을 가진 자연이 곳곳에 있다. 서울 집중화 현상과 하이테크 산업에 지나치게 몰입된 산업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농’이라는 개념을 확장해서 미래산업으로 이행할 시기가 도래했다.

최근 하우스비전에선 교외에서 고효율의 농업을 실천하면서 주변에 어떤 주거와 커뮤니티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과제로 설정했다. 건축가와 협력해 집을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그래서 구상이 ‘그림의 떡’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미래로 다가왔다. 이것이 하우스비전이라는 전람회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환경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풍요로운 주거를 교외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최욱 건축가의 ‘작은 집’은 작은 만큼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이 가능한 집이었다. 민성진 건축가의 ‘메타-팜 유닛’은 커다란 하이테크 유리온실 내부에 펼쳐진 집이었다. 바람과 비에 노출되지 않는 농장에 연구 거점으로서 집을 설계한다는 발상은 농촌에 대한 이미지를 근본부터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김대균 건축가의 ‘컬티베이션 하우스’는 환경이 제어된 유리온실에 교류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커뮤니티를 키운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나영훈 디자이너의 ‘100% 키친’은 음식물쓰레기 제로(0) 식당으로, 식량 손실문제가 심각한 도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새로운 먹거리의 규범을 제시했다.

필자가 제안한 ‘무인양품’의 ‘양의 집’은 평범한 단층에 폭이 넓은 창틀을 달아 주거공간과 바깥의 나무데크가 단차 없이 이어지는 구조다. 데크에는 ‘먹을 수 있는 정원’이라는 작은 채소밭을 배치했다.

21세기 산업이 본격화하면 ‘농’, 즉 ‘태양에너지를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식물에 저장하는 산업’이 첨단기술과 융합해 압도적인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결코 점진적인 유행을 낳지 않는다. ‘본질을 이해해서 가시화하는’ 근본적 변화다. 디자인의 관점을 농업에 접목하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자긍심과 행복이 충만한 미래산업으로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한다.

하라 켄야 (일본디자인센터 대표이사)

●하라 켄야는

디자이너, 일본디자인센터 대표,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교수. 2002년부터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고, <리디자인> <햅틱> <센스웨어> <하우스비전> 등 전시에 기반한 종합프로젝트를 다수 기획했다. 2019년 웹사이트 ‘저공비행-High Resolution Tour’를 만들어 일본 소도시를 소개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디자인의 디자인> <백(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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