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내가 옹졸해진 이유

김참 증권부장 2023. 1. 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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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지난해 나는 늘 작은 일에만 분개했다.

말해봐야 나의 옹졸함만 드러나지만, 한번 나열해보기로 한다.

그러나 나는 작은 일에는 분개했지만, 정작 분개해야 할 일에는 분개하지 않았다.

코로나와 팍팍해진 일상에서 시작된 나의 옹졸함이 불의(不義)는 참지만, 불익(不益)은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체화될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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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생각해보면 지난해 나는 늘 작은 일에만 분개했다. 말해봐야 나의 옹졸함만 드러나지만, 한번 나열해보기로 한다.

팀원은 왜 꼭 일이 몰릴 때 코로나에 걸리는가?(코로나에 걸리면 일주일을 쉰다) 프렌차이즈 카페에 가면 주문할 때만 왜 코까지 마스크를 올려 써야 하는가?(자리에 앉으면 바로 마스크를 벗는다) 아주머니들은 지하철 임산부석에 왜 당당하게 앉아있는가?(노안일 수 있다) 나는 왜 아까운 연차를 전부 소진하지 못했는가?(내가 할 일이 없었다) 내가 먼저 식당에 왔는데, 주문은 왜 다른사람부터 받는가?(내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내 아파트값은 떨어졌는데 재산세는 왜 더 내야하는가?(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작은 일에 분개하는 이유는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타고난 성격이 모래, 먼지, 풀같이 작고 옹졸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번엔 사는 게 팍팍해진 탓이라 핑계 대고 싶다.

3년간 그토록 기다리던 포스트 코로나가 시작됐지만, 일상은 더 고단해졌다. 지난해부터 R(Recession·경기 후퇴)의 공포는 현실화됐고, 기업 수출은 물론 내수 경기마저 얼어붙었다. 일부 기업들은 경기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며 인력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환율은 가파르게 올라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고, 매일 같이 뛰는 물가에 식당에 가면 메뉴판에서 가격부터 보는 것이 버릇됐다.

새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신문지상 올라오는 경제 전망은 전부 암울하기 그지없다.

자영업자대출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자영업자의 부실위험 규모가 4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리고 청년들의 희망이었던 가상화폐 시장은 몇몇 사기꾼들로 인해 끝장난 지 오래다. 원자잿값 급등과 공급망 불안은 우리 경제를 그나마 지탱하던 기업 수출에 계속해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금리는 더 오를 것이고, 한국은 이에 키 맞추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이 자명하다. 그러면 부동산 ‘빚투족(빚내서 투자)’ ‘영끌족(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은 이 시기를 더는 버텨내기 어려워질 것이다. 증시는 외풍에 흔들리며, 코스피 2000선도 지키기 어렵다는 암울한 분석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작은 일에는 분개했지만, 정작 분개해야 할 일에는 분개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주머니를 불린 대장동 사건, 이태원에서 청년들의 죽음, 매일같이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 지난 정권 미친 듯이 오른 부동산 등에 대해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모두 차분해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는 공동체적 유대감이 약화되면서 개인별 파편화가 심화되고 있다. 남 일은 남 일일 뿐 주변을 돌아보는 건 사치가 됐다.

코로나와 팍팍해진 일상에서 시작된 나의 옹졸함이 불의(不義)는 참지만, 불익(不益)은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체화될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새해니 희망을 이야기해야겠다. 옹졸해진 성격 탓인지, 이름값 있는 전문가들의 경제 전망이 제발 전부 틀렸으면 한다.

재작년 연말 2022년 증시전망 기사를 위해 증권사 전문가들에게 설문을 돌렸다. 그들 대부분은 지난해 코스피 지수 밴드를 2800~3300으로 예상하며,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유망 종목은 현재 주가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삼성전자를 꼽았다. 결과적으로 주식 전문가들의 전망은 모두 틀린 셈이 됐다. 그들은 올해 코스피 지수 밴드를 2000~2500선으로 예상했다.

세상일이 몇몇 전문가가 예측한 대로 될 리는 없다. 누구나 궁지에 몰리더라도 새해가 시작되면 희망을 꿈꾼다. 새해라고 모든 것이 리셋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증시와 부동산, 가상화폐 시장 모두 안정되고, 시중에 돈이 돌면서 그간 고생했던 자영업자들의 숨통이 트였으면 한다.

고단했던 한 해가 갔다. 새해에는 부디 더는 옹졸해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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