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리노 생활과학 9] 실전요리① 고기굽기…고기는 익으면 왜 색깔이 변할까
지글지글, 치이익….
고기를 뜨겁게 달궈진 팬에 올리면 먹음직한 소리와 함께 피가 흐르던 고기의 표면이 순식간에 노릇노릇한 갈색으로 변합니다.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붉은색을 내던 혈액 속 헤모글로빈, 근육 속 마이오신 같은 단백질이 높은 온도로 인해 변성(變性)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때 먹으면 물러지고 풍미가 더해져 소화도 잘되고 침샘을 자극하지만 너무 오래 두면 캐러멜화와 열분해가 일어나 검게 변하며 오히려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짝 익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재료가 너무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죠.
요리는 주어진 재료를 소화하기 쉽도록, 혹은 맛이 좋아지도록 그 성질을 변형하는 작업입니다. 고기를 익히는 과정의 핵심은 응고와 가수분해입니다. 고기를 구성하는 근육은 수많은 근원 섬유(실 털)가 모여 근섬유(실)를 형성하고, 근섬유가 다시 다발(실 뭉치)로 모여 근육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고기나 채소를 익힌다는 것은 이 같은 섬유 조직을 일부 끊어내거나 분리함으로써 입에서 씹었을 때 연한 질감이 나도록 개조하는 공정입니다.
고기를 연하게 만들고 싶다면 섬유 간 결합을 끊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겠죠? 고기의 결합 조직(근육)은 근원섬유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알부민, 수분, 그리고 그물 구조의 콜라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콜라겐은 용수철을 닮은 3중 나선 모양의 기다란 분자인데, 구조 단백질로서 근육을 지탱하고 잡아주는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고기의 단단함(질김)은 바로 콜라겐에서 옵니다.
고기의 단단한 질감을 연하게 변화시키려면 가열과 숙성이 필요합니다. ‘겉바속촉’, 즉 스테이크를 먹을 때 겉은 바삭하면서 노릇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분홍빛이 나도록 굽는 기술을 말하죠? 비결은 ‘온도 기울기(temperature gradient)’에서 나옵니다. 스테이크의 겉과 속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적인 온도 변화를 뜻합니다. 실제 스테이크를 구울 때 표면과 중심부에 가해지는 온도는 크게 다르거든요. 스테이크를 맛잇게 구우려면 이런 온도 차이가 꼭 필요해요.
우선, 고기 표면에서는 높은 온도를 유지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단백질과 당분이 온도는 높고 습기는 없는 상태에서 서로 반응해 새로운 향과 색을 내는 분자, 즉 갈색 색소인 ‘멜라노이딘’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커피, 카카오, 아몬드 등 음식을 볶거나 빵을 구울 때 나는 풍미의 원인이 바로 이 반응입니다. 고기를 불에 올리거나 달궈진 팬에 올려 높은 온도를 가하면 표면의 수분이 빨리 제거되고 마이야르 반응은 가속화됩니다.
반대로 고기의 내부에서는 일정 한계를 넘지 않는 온도를 유지해 구조 변화가 조금만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색은 생고기의 붉은 색에서 분홍빛으로 바뀌되, 질감은 생고기에 가깝게 남아있도록 굽는 기술이죠. 고기를 구울 때 스테이크의 중심부에 가해지는 온도는 보통 섭씨 56도입니다. 알부민이 응고하는 온도보다 낮기 때문에 불그스름한 색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온도가 62도를 넘으면 알부민이 응고하면서 고기가 회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른바 ‘센 불에서 한 번만 뒤집기’ 비법으로 고기를 300도로 구우면 겉바속촉의 연한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단단한 양지, 사태 같은 저급육은 스테이크로 굽지 말고 오랫동안 익히는 조리법을 써야 합니다. 반면 고급육이라 불리는 부위는 현미경으로 관찰할 때 짧은 섬유질만 보입니다. 질긴 부위의 고기들은 스튜나 찜을 만드는 조리법으로 국물에서 오래 익혀야 육질이 연해지는데, 수분이 열의 도움으로 콜라겐 그물에 침투하면서 그 구조를 서서히 해체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가수(加水)분해, 물로 분해한다는 뜻입니다. 가수분해가 일어나면 3중 나선 구조를 이루던 콜라겐 가닥들이 하나씩 풀리고, 그 결과 ‘분자 스프링’의 뻣뻣한 성질이 크게 완화됩니다. 한 가닥씩 풀어진 콜라겐을 젤라틴이라 합니다. 고기 국물을 끓였다가 식힐 때 표면에 젤처럼 딱딱하게 굳는 바로 그 젤라틴을 말합니다. 약한 불에 오래 끓일수록, 여러 번 데울수록 고기 요리의 맛이 더 좋아지는 이유입니다. 딱딱한 스프링이 말랑말랑 젤로 변했으니까요.
고기를 익히는 일에는 서로 상반되는 2가지 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조직 내 일부민을 응고시켜 단백질 그물을 만들고, 다른 한편 콜라겐 그물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고기가 연해지도록 도와주는 과정이죠. 알부민은 고기가 익지 않은 상태에서 색이 없고 투명합니다. 열을 가하면 응고하면서 근원섬유의 단백질과 미오글로빈(고기의 붉은 색 내는 색소 단백질) 주위로 희끄무레한 막을 형성합니다. 우리 눈에는 고기의 붉은 색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죠.
스테이크의 생명인 육즙을 잡아두려면 앞서 2가지 상반 작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먼저 62도가 넘어가면 알부민 그물구조가 수분을 가둡니다. 고기 내부에 육즙을 가두는 울타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68도가 넘어가면 근원섬유의 단백질이 응고하면서 수분을 잡아두는 힘을 잃게 됩니다. 이때 수분은 젤 상태의 환경에서 빠져나와 ‘삼출물(渗出物)’이 됩니다. 절대 과하게 익히지 마세요. 스테이크의 경우 맛과 색을 내기 위해 일단 센 불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 다음 7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좀 더 익히면서 원하는 굽기로 맞추면 됩니다. 주말에 맛있는 고기 굽기 기술을 가족 앞에서 뽐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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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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