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자진사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향년 95세(종합2보)
제265대 교황으로 8년간 재임하다가 2013년 물러나…자진사임 598년만
'정통교리 강조' 보수주의 신학자…김수환 추기경 스승으로 특별한 인연
(바티칸·서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장재은 기자 =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 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은 프란치스코 현 교황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8일 수요 일반 알현 말미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매우 아프다"며 신자들에게 기도를 호소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이후 이틀간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교황청은 신자들이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내년 1월 2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공개 안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장례식은 1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식을 집전한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보수적 신학자로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1977년 뮌헨 대교구 교구장 추기경이 된 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해 바티칸에 입성했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된 것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힘이 컸다.
라칭거 추기경은 2002년 만 75세가 됐을 때 은퇴를 희망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더 늙은 나에게 너무 필요한 존재이기에 안 된다"며 오히려 라칭거를 추기경 회의 대표로 임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에서 라칭거 추기경이 3분의 2를 득표할 수 있었던 것은 추기경 회의 대표라는 자리가 크게 작용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제265대 교황직에 오른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나이가 78세로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최고령 교황이자,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으로 주목받았다.
베네딕토 16세는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세속주의에 맞서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데 힘썼다.
동성애에 대해 "본질적인 도덕적 악"이라고 규정하는 등 타협을 거부하는 강고한 보수적 발언과 행보로 인해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해 대중적인 인기는 적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가톨릭교회를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반발을 낳았다.
특히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한 가톨릭 주교를 복귀시킨 일은 국제적 논란으로 번졌다. 이 일은 베네딕토 16세가 독일인이고, 젊은 시절 나치의 청년조직인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다는 점과 결부해 더욱 논란이 됐다.
그의 재임 기간에, 은폐됐던 사제들의 성추문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며 분노와 환멸로 신자들이 대거 떨어져 나갔고, 그로 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사임 직전 해인 2012년엔 수행비서이자 집사로 지낸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교황청 내 부패와 권력 투쟁을 보여주는 내부 편지와 문서를 유출해 베네딕토 16세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이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더는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할 힘이 없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명예 교황'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후임 교황에게 무조건 순명하겠다고 언약한 바 있다.
그는 사임 이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시국 내 한 수도원에서 지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몰두해왔다.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故) 김수환 추기경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뮌스터대에 교수로 발령받아 교회 쇄신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을 때 수강생 중 한 명이 김수환 학생신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후 베네딕토 16세 교황 즉위 미사 때 추기경단 대표로 순명 서약을 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2월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2006년 11월에는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했고, 2007년 2월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 접견 후에는 친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김수환 추기경의 안부를 물으며 "뮌스터대 시절 그가 독일어를 잘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그 학생을 통해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9년 7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 "과거 분단국 출신인 베네딕토 16세가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희망한다"며 방한을 초청하기도 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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