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까지 죽였다”...‘분노폭발’ 중고차, 현대차가 팔면 믿어도 될까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2. 12.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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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중고차 판매 돌입
5년10만km 이내 차량만 취급
기존 중고차업계에 ‘메기효과’
중고차 시장 완전개방 촉구 성명서(왼쪽)와 중고차 사기에 악용되는 침수차 자료 사진 [출처=자동차시민연합, 매경DB]
#회사원 A씨는 출시된 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벤츠 S클래스를 거의 반값 수준인 1억2500만원에 구입했다. 중고차 딜러는 무사고 차량이라 자랑했고,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 차는 1년 전 장마철에 침수됐던 사실이 드러났다.

#B씨는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서 현대차 코나가 헐값 수준인 470만원에 나온 것을 발견했다. 매매단지를 찾아온 A씨를 만단 딜러는 돌변했다. 원래 제시했던 가격보다 6배 비싼 2880만원을 요구했다. A씨가 구입을 거부하자 딜러는 폭언을 내뱉고 A씨를 차 안에 30여분간 감금했다

경찰에 적발된 중고차 범죄 행위다. 경찰에 붙잡힌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억울함에 목숨을 끊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중고차 업계의 반발을 무시하고 대기업의 진출을 반기는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새해부터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 현대차그룹이 선두에 선다. 내년 1~4월 시범사업에 들어간 뒤 5월부터 본격 판매에 나선다.

이에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4월28일 열린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심의회)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중고차 판매업 사업개시 시점을 1년 연기해 내년 5월1일 개시한다”며 “다만 내년 1∼4월에는 각각 5000대 내에서 인증 중고차를 시범 판매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현대차·기아, 1월부터 시범판매
인증 중고차 점검 장면 [사진출처=벤츠]
3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국내 완성차 브랜드 최초로 고품질의 인증 중고차를 선보인다.

BMW, 벤츠, 아우디, 포르쉐, 재규어, 랜드로버, 폭스바겐, 볼보, 렉서스 등 수입차 브랜드가 선보인 중고차 판매 시스템이다.

인증 중고차는 ‘명품 중고차’로 여겨진다. 자동차 제조사가 보유한 기술력을 활용해 정밀한 성능검사와 수리를 거친 후 품질을 인증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수입차 브랜드처럼 5년10만km 이내 차량을 대상으로 200여개 항목의 검사를 통과한 차량을 선별한 뒤 신차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품질을 높이는 ‘상품화’를 거쳐 판매한다.

현대차는 인증 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를 내년 1월 경남 양산에 연다. 진단동, 정비동, 사무동으로 구성된 센터 규모는 3만59㎡(9093평)다. 연간 1만5000여대를 판매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정밀진단 후 정비와 내외관 개선(판금, 도장, 휠과 타이어, 차량광택 등)을 전담하는 상품화 조직을 운영해 중고차의 상품성을 신차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아도 인증 중고차 전용 리컨디셔닝센터를 수도권에 마련하고 향후 전국으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증 중고차, 정보 비대칭 해결에 기여
인증 중고차 점검 [사진출처=포르쉐]
현대차그룹 인증 중고차는 중고차 유통 고질병인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고차는 신차와 달리 품질이 제각각인 데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성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정보 비대칭 때문이다.

정보 비대칭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가 선보인 경제학 이론이다.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고 있는 측은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는 시장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엔 시장 황폐화와 붕괴를 가져온다.

중고차 유통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사기·범죄 행위가 빈번하기 발생하기 쉬운 곳이다. 판매자인 딜러는 중고차의 상태를 비교적 자세히 아는 반면 소비자는 그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중고차 사기꾼에게 허위매물 피해를 당하고 무사고차를 사려다 오히려 사고차를 비싼 값에 속아 산다.

주행거리를 조작한 차, 침수·사고 흔적을 감춘 차를 피하려다 사기꾼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구매한다.

인증 중고차 매장 [사진출처=볼보]
현대차는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 연구소)’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비자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통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적정가격 산정 ▲허위·미끼 매물 스크리닝 ▲중고차 가치지수 ▲실거래 대수 통계 ▲모델별 시세 추이 ▲모델별 판매순위 등의 중고차시장 지표와 ▲트렌드 리포트 등을 제공받는다.

현대차는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 등과 협의, 정부·기관이 각각 제공하는 차량이력 정보에 현대차가 보유한 정보까지 결합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제공도 추진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매하려는 중고차의 사고유무와 보험수리 이력, 침수차 여부, 결함 및 리콜내역, 제원 및 옵션 정보 등 차량의 현재 성능·상태와 이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중고차 거래 시 주요 피해유형 중 하나인 허위·미끼 매물을 걸러내는 기능도 제공한다.

중고차 유통 투명성 제고 역할도
중고차 거래 이미지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현대차그룹은 기존 중고차업계와 적대적 관계가 아닌 상생 관계도 구축한다.

현대차는 기존업계와의 상생협력과 중고차시장 발전 방안으로 ▲인증 중고차 대상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 ▲연도별 시장점유율 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공개 ▲중고차산업 종사자 교육 지원 등을 이미 제시했다.

현대차는 5년 10만km 이내 판매대상 범위에서 벗어난 차량은 경매 등의 공정한 방법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대차는 올해 초 2022년 시장점유율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까지 시장점유율을 자체 제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고차 평가 장면 [사진출처=엔카닷컴]
자동차산업연합회(KAIA)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의 중고차 시장 점유율은 2026년에 7.5%~12.9% 정도다. 4년 뒤에도 중고차 10대 중 1대만 완성차업체 5개사를 통해 판매된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중고차시장 발전과 중고차업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기존 업계에게 공개하고, 완성차업체로서 보유한 기술 정보와 노하우 전수에도 나선다.

중고차 종사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의 미래차 관련 신기술 교육과 최신 CS(고객만족) 교육 등도 지원한다.

현대차는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입으로 시장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가 높아지면 중고차 시장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중고차 정비와 부품, 유통 및 관리, 시험 및 인증이 활성화되고 중고차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와 ICT 기술을 활용한 첨단 신산업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소비자들도 대기업 진출 환영하지만
중고차 유통 개선 필요성을 지적한 한국소비자원 [출처=한국소비자원]
소비자들은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8일 발표한 중고차거래앱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이 찬성했다.

이번 조사는 보배드림, 엔카, 첫차, KB차차차, 케이카 등 중고차 거래앱 상위 5개 업체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3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점수는 5점 만점 중 4점으로 나왔다. 소비자원은 매우 부정은 1점, 매우 긍정은 5점으로 책정했다.

소비자들은 ‘안전한 매물이 많아진다’, ‘선택 폭이 넓어진다’, ‘피해가 줄어든다’ 등의 이유로 완성차 업체 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고차 시장 고질병인 허위매물 피해 [출처=현대캐피탈]
소비자원이 지난 4월 1년 이내 중고차를 산 소비자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대기업 진출을 환영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응답자들은 허위·미끼 매물, 불투명한 가격 정보, 신뢰도 낮은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를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 진출 명분으로 내세운 중고차 시장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자동차 관련 시민단체들도 대기업 진출을 반긴다. 일부 단체는 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가 시작된 2019년부터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대기업이 진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중고차 시장 개방으로 유통구조가 보다 투명해지고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질 것”이라며 “대기업 진출은 시장은 물론 기존 업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메기효과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콘셉트 [사진출처=현대차]
다만 중고차 시장 진출이 기존에 문제가 됐던 허위·미끼 매물이나 사기 판매를 모두 근절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신차 시장에 이어 중고차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 독점구도만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기상 대표는 “상대적으로 비싼 인증 중고차를 사기 힘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싼값이나 헐값으로 유혹하는 사기행위가 더 교묘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고센터를 본격 가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호근 미래자동차학과 이호근 교수(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위원장)는 “5년10만km 이내 차량에 대한 진단과 보증, 잇단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 구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대기업 진출로 가격만 올랐고 신차 판매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반발이 나오지 않도록 인증 중고차 정책을 꼼꼼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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