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새해에는 잠꼬대로 발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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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물뽕’을 아시는지. 물뽕에 중독되면 끊임없이 바다, 하다못해 실내 잠수풀에라도 가고 싶다. 한동안 그렇게 산 적이 있다. 프리다이빙에 빠져 국내외 물가를 쏘다녔다. 다이빙은 버디(사고 방지를 위한 2인 1조 시스템)가 필수이다 보니 투어를 가도 동호회 단위로 많이 간다. 문제는 숙소였다. 바닷가 근처에 큰 방 하나만 잡아놓고 다 같이 자는 문화가 있더라. 성별 연령 불문 한꺼번에. 불편했다.
나는 숙소를 같이 못 쓰는 편이다. 가족만 예외다. 가족 말고는 아무리 절친이어도 옆에 있으면 잠을 잘 못 잔다. 왜 못 자는가. 긴장하기 때문이다. 긴장을 왜 하는가. 잠꼬대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다. 아닌 밤에 홍두깨라더니 잠꼬대가 웬 말인가. 중얼중얼 혼잣말하고, 또박또박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되지도 않는 외국어로 떠들어대기도 한다. 그 꼴을 직접 보거나, 그 탓에 제대로 못 잔 타인들 앞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민망함과 미안함은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다.
잠꼬대를 진지하게 돌아본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10여 년 전, 일본 여행을 할 때였다. 오사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내 12인실 혼성 도미토리였다. 새벽 1시쯤이었나. 맞은편 2층 침대 이스라엘 남자애가 짜증 섞인 욕설을 퍼부었다. 내 잠꼬대 때문에 자기가 깼다는 거다. 체구가 엄청난 예비 군인이었는데, 옥상으로 끌려가 구타라도 당하는 줄 알았다…는 건 농담이고. 타인한테 민폐 끼치는 걸 질색하는 사람으로서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곳은 내 인생 마지막 도미토리가 되었다. 이후론 아무리 궁해도 도미토리는 안 간다.
잠꼬대를 물리치려면 잠꼬대의 정체부터 알아야지 않겠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니까. 잠꼬대는 통상 2가지로 분류된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잠꼬대와 일반적인 잠꼬대다. 전자는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의 전조 증상이다. 주 1회 이상 나타나고, 혼잣말에 그치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거나 심한 욕설을 하고, 팔다리를 휘두르는 등 과격한 행동이 나타난다. 잠꼬대와 얽힌 꿈 내용을 기억할 때가 많으며, 주로 50대 이후 발병한다. 잠꼬대 주기가 잦고 그 정도가 심하다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후자는 이런 요인 없이 혼잣말 정도인 잠꼬대다. 잠꼬대는 사실 흔한 증세다. 그 자체가 질병인 것도 아니다. 어린이들은 절반이 겪고, 성인이 되어서도 피곤하면 잠꼬대를 한다. 원인은 강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육체적 피로다.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충분히 숙면할 수 없을 때 잠꼬대가 흘러나오는 거다. 특정인을 거론하면서 중얼거리거나 욕을 한다? 낮에 쌓인 스트레스나 내면에 웅크린 화병이 무의식중 해소되는 과정이다. 만취한 취객이 해롱해롱 주워섬기는 실없는 소리와 비슷하달까. 실제로 술이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과음하면 숙면은 요원해지니까.
후자가 난가? 나네. 피곤한 거야 늘 그렇다 치더라도, 극심한 스트레스가 더해질 때 잠꼬대를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근데 진짜 후자일까. 혹시 몰라 아르(R)한테 물어봤다. 내가 잠꼬대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그의 전언에 따르면 마지막 잠꼬대는 4~5개월 전이었다. “OO야, 빨리 좀 와줘!” 거실에서 자던 그를 간밤에 4번이나 불렀다고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R과도 떨어져 잘 때가 많다. 내가 안방에서 잠 못 이루며 뒤척거리는 동안 그는 어느 틈엔가 거실에서 곯아떨어져 있다.)
R은 마음씨가 너그럽고 머리만 대면 자는 캐릭터다. 그런 R을 부르는 건 보통 내가 가위에 눌렸을 때지만, 그날은 가위눌림이 아니었다. 막상 와보면 나는 번번이 자고 있더란다. 아주 쿨쿨. 연속 3일을, 4시간도 채 못 잔 날이었다. 잔업으로 인한 야근과 연이은 술자리, 외부 일정 여파로 깊이 자지 못하면서도 못내 일어나진 못한 모양이다.
자, 이걸 어떡해야 하느냐. 우리는 이 글이 불면증 칼럼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잠꼬대는 보통 얕은 잠을 자는 동안 발현된다. 잠꼬대를 많이 한다는 건 그만큼 깊게 자지 못한다는 뜻이다. 잠꼬대를 줄이려면 잠을 깊이 자야 한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개선해야 한다. 낮에는 햇볕을 30분~1시간은 쬐고 운동을 겸하면 더 좋다. 카페인이 든 음료나 음식을 피하고, 자기 전 음주나 흡연도 삼가야 한다. 자는 환경은 조용하고 어두운 게 좋다…고 쓰고 있으려니 어라, 뭐야. 더도 덜도 말고 불면 극복 솔루션이네? 그러니까 잠꼬대를 줄이려면 불면증부터 고치라는, 뭐 그런 얘기다. 그럼 불면증 연재에서 불면을 말하지, 불멍을 말하겠는가.
어느새 연말이다. 내년에는 부디 불면을 완치하고 싶다. 잠꼬대도 안 하고 싶다. 모든 수면 장애에서 벗어나고 싶다. 더불어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몇 달 전 부산국제영화제 출장을 다녀왔는데, 가기 전부터 마음에 걸린 게 숙소였다. 당연히 2인 1실을 쓰게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장은 보통 비용 절감 차원에서라도 그러니까. 사비를 지불해서라도 혼자 방을 써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1인 1실을 앞장서 주장한 이들이 있었으니 출장길에 동행한 동료들이었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진심이라는 말은 굳이 안 하련다. 이들뿐 아니라 올 한 해 고마웠던 이들이여, 모두 새해에는 꿀잠만 자길 기원한다.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잠꼬대를 많이 하면 잠을 설치게 되고, 깊은 잠을 방해하는 불면증은 잠꼬대를 유발한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이라는 키워드는 불면증에서 필요악이다. 악순환 요인에는 잠꼬대뿐 아니라 그동안 말한 술, 야식,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등이 있다. 본인의 잠꼬대 패턴을 관찰해보라. 단순한 불면증이 아니라면, 파킨슨병 전조이므로 서둘러 병원에 가봐야 한다. 파킨슨병은 뇌간에 있는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신체 움직임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일반적인 잠꼬대가 잠든 뒤 3시간 안에 나타나지만, 파킨슨 잠꼬대가 나타나는 시간대는 주로 새벽 3~5시다.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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