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한 자들의 굴하지 않는 마음을 온누리에
가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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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미국 뉴스 채널 <시엔엔>(CNN)은 한국의 고독사 문제를 다뤘다. <시엔엔>은 이를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으로 판단했는지 ‘고독사’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godoksa’로 표기하고 ‘lonely deaths’(외로운 죽음)로 번역했다. 고령화 사회와 인구 감소, 사회복지 격차, 빈곤 문제, 사회적 고립 등이 고독사의 원인으로 분석됐고, 그중에서도 서울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기사가 반지하와 쪽방 역시 ‘banjiha’(반지하), ‘jjokbang’(쪽방)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인 12월25일에 조세희 선생의 부고가 전해졌다. 그의 대표작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의 무허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도시 빈민과 계급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그 날 선 비판 의식은 선생의 삶에서도 그대로 실천되었다. 12월25일이라는 날짜가 선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비천한 우리들과 함께 사회 변화를 꿈꾸고 영감을 주었던 예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리가 지키고 싶었던 ‘사회’
그즈음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2023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올해보다 5조원 이상 삭감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강수량으로 홍수 피해가 났을 때 반지하방에서 일가족 세명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때,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분명히 시민들의 안전한 주거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 강조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예산 삭감. 그 예산안에 남은 것은 “더 많은 돈을 빌려, 더 비싼 집을 사라”는 고통스러운 메시지였다.
우연이라고도 필연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소식들의 연쇄 안에서 나는 극장으로 도망쳤다. 잠시나마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던 탓이다. 그래서 동네 극장에 들어가 충동적으로 고른 작품이 <가가린>이었다. 장르가 에스에프(SF)라고 되어 있었던 탓에 자연스럽게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에 얽힌 낭만적인 판타지일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스크린이 열리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지개를 폈다.
<가가린>은 1963년 6월의 어느 오후를 담은 흑백의 기록 영상으로 시작된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이는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가면서 미국과 소련의 ‘우주 전쟁’에서 공산 진영의 잠정적인 승리를 알렸던 바로 그 인물이다. 프랑스 공산당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파리 외곽에 신축한 주택단지에 그의 이름을 붙였고, 그는 단지 완공식에 참석하면서 이에 화답했다. 총 370가구를 자랑하는 붉은 벽돌의 거대한 주택단지 ‘가가린’은 당시 프랑스 공산당의 포부와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탈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주택단지 가가린 역시 과거의 위용을 잃고 쇠락하기 시작한다. 가가린의 주요 거주 계급이었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렸고,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지지율 역시 떨어졌다. 그렇게 비어버린 자리를 채운 것은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먹고 생활하는 이민자들이었다. 20세기의 영광으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19년, 이민자와 도시 빈민이 모여 사는 슬럼가로 전락한 가가린은 곧 철거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런 가가린에는 아주 특별한 10대 소년 유리(알세니 바틸리)가 보호자 없이 혼자 살고 있다. 기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유리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전 재산과 재능을 활용해 가가린을 지키려고 한다. 노후화된 단지의 운명을 결정할 안전점검일이 다가오자, 유리는 단짝 친구들과 함께 단지의 불량 전기배선이나 깨진 전구를 손보고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수리한다. 이런 것들이 안전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유리의 섬세하고 따뜻한 손길에 시들어가던 가가린은 활기를 되찾는다.
가가린을 지키려는 유리의 노력은 비단 외부 하드웨어를 손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일식을 맞아 단지 사람들을 위한 파티를 준비한다. 사람들은 단지 앞 공터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일식을 기다린다. 유리는 거대한 셀로판 가림막을 만들어 이웃들이 눈을 다치지 않고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을 구경할 수 있도록 설치한다. 어쩌면 유리에게 가가린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없다”고 선언했던 바로 그 “사회”였다.
드디어 안전점검일. 유리의 노력 덕분에 점검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방해로 결국 철거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강제 퇴거일에 맞춰 가가린을 떠나지만, 유리는 끝까지 남는다. 철거반원들이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와중에도 건물의 구석구석을 이해하고 있는 유리는 요리조리 피하면서 공동화된 가가린을 자기만의 장소로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가린의 7층은 조종석, 침실, 온실 등을 갖춘 유리만의 우주선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찾아온 건물 폭파의 날. 가가린의 마지막을 목격하기 위해 모여든 옛 주민들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 펼쳐진다.
극장에서 마주친 또 하나의 현실
돈의 논리가 모든 장소의 성질과 존재 의미를 결정하고 사람들은 그저 돈의 흐름을 따라 흘러 다닐 수밖에 없는 장소 상실의 시대. 우리는 집이 나를 보호해주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이 되어버린 주거권 박탈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유리의 가가린’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공산 사회를 향한 꿈,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부정당하는 사회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서 우리 앞에 퉁, 하고 떨어졌다. 에스오에스(S.O.S) 구조 요청을 절박하지만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반짝이면서.
현실도피로 들어간 극장 안에서 나는 가가린이라는 또 하나의 현실과 마주했다. 심지어 영화에는 나를 괴롭히던 모든 키워드들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 역시 살아 있었다. 그건 유리의 굴하지 않는 마음과 그 마음이 세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파장에 대한 믿음이다. 2023년 검은 토끼의 해에는 ‘비천한 자들의 굴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불온한 축복이 세계에 내리기를 기도한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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