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3대 화석연료 국가들의 친환경 변신은 ‘무죄’
‘에너지 태도’ 달라지는 중동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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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한 2022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며 한 해를 보낸다. 전쟁 속에서 세계는 안녕했을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비애에 시민들은 공감과 연대를 보냈지만 국가들 간에는 이 전쟁을 놓고 편가르기가 벌어졌다.
그래도 에너지 대란이나 식량대란은 오지 않았다. 유럽은 난방비가 올라 추운 겨울을 맞았다지만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대신에 ‘탈탄소, 탈러시아’로 더 빨리 더 굳세게 가려는 듯하다. 에너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의 핵심 관심사가 되고 지정학적 변수가 된다.
햇빛·바람이 ‘핵심 자원’ 되는 시대
카타르에너지는 중국 시노펙과 11월에 가스공급계약을 맺었다. 27년 동안 중국에 연간 400만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판다고 한다. 독일과도 천연가스 공급에 합의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지난 9월 러시아 가스의 대안을 찾는 독일과 손을 잡았다.
유가는 올해 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3월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압박 속에 산유국들은 생산을 약간씩 늘렸지만 기름값은 6월에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산유국들이 10월부터 감산을 했는데도 브렌트유 값은 이달 초 배럴당 8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2023년 유가는 중국이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2월에 다시 만날 예정인 오펙플러스(OPEC+)의 공급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의 에너지 동향은 대충 이렇다.
석탄은 세계에 고르게 분포하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는 몇몇 지역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지정학의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햇빛과 바람이 자원이 되는 시대다. 태양광 패널들로 꽉 찬 발전시설을 재래식 발전소와 대비시켜 ‘솔라파크’(햇빛공원)라고들 부른다. 풍력터빈이 줄지어 선 곳은 윈드팜, ‘바람농장’이다. 유전이나 화력발전소보다는 훨씬 멋진 이름들이다. 전쟁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도 이 흐름은 막지 못한다. 심지어 화석연료의 중심인 걸프도 녹색을 향해 가고 있다.
2018년 11월 사카카에서 300㎿(메가와트) 규모의 첫 태양광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사우디아라비아는 2021년 4월부터 올 11월까지 태양광 프로젝트 8개, 수소 프로젝트 5개, 지속가능한 담수화 플랜트 3개 등에 투자했다.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기금(PIF)이 올해 발표한 2060㎿의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건설 계획도 그중 하나다. 이 기금은 지난달 사우디 최초의 전기차 회사 ‘시어’(Ceer)를 출범시켰다.
사우디 민간회사 아크와(ACWA)파워는 이집트 수에즈에 10GW(기가와트) 풍력단지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사우디 기업 알파나르는 수에즈 경제구역에 녹색수소 공장을 짓는 계약을 맺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도 두바이 지도자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의 이름을 딴 태양광 단지와 샴스1 솔라파크 등을 지었지만 특히 해외 투자가 눈에 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폐기물을 에너지화하는 시설을 짓고 모리타니와 요르단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태양광 프로젝트 계약을 했다. 영국, 몬테네그로, 미국, 세르비아, 오만, 폴란드, 우즈베키스탄의 풍력발전에도 투자했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와 비피(BP·브리티시페트롤리엄)는 녹색수소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특히 수소경제 관련해서 걸프국들은 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미국은 2035년까지 1천억달러를 들여 청정에너지 100GW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는 블루암모니아를 수출하고 있다. 사우디는 2021년 말 ‘2060년 탄소배출 순제로’ 목표를 제시하면서 전력의 절반은 가스로, 절반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카타르는 2015년부터 국가개발전략의 성과와 목표를 유엔의 목표와 일치시켜 왔다.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라는 이름으로 유엔이 정한 247개의 목표 가운데 이미 199개를 달성했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초 카타르는 2030년까지 연간 7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포획, 저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해 8월 카타르에너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감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올 들어 2035년까지 연간 11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다.
걸프의 3대 에너지수출국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카타르 사이는 최근 몇년 동안 시끄러웠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한편을 먹고 카타르에 금수조치까지 내렸다. 그 기간 두 나라는 액화천연가스 시장에서 카타르의 위상을 흔들려 애썼다. 그러다가 화해를 한 것이 지난해 초였고, 그 뒤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렸다. 더는 가스를 놓고 싸울 필요가 없어진 탓도 있지만, 지구적인 변화가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 알자지라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1년 반 동안 카타르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전체 에너지 투자의 2%에서 8%로 늘렸다. 사우디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거의 0%에서 25%로 증가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은 3%에서 43%로 뛰어올랐다.
‘에너지 목표’에 한가지 분명한 것
저들의 투자 목록을 쭉 늘어놓고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방대한 프로젝트 목록 가운데 얼마나 달성될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유전, 가스전이 표시된 지도만 놓고 중동 지정학을 논하던 시대는 갔다. “내 편에 줄 서라”라는 미국의 명령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아직도 에너지 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려는 푸틴의 속셈도 노욕으로 보일 뿐이다.
독일의 루르-자르는 유명한 석탄 지대,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은 철광석 산지였다. 산업발전에 중요한 자원들이 하필이면 국경에 몰려 있어 몇차례 땅뺏기 전쟁이 벌어졌다. 2차 대전 뒤 이 지역을 평화지대로 바꾼 것은 정치인들의 선견지명과 강력한 의지였다. 철과 석탄을 함께 관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들었고 이 기구가 발전해서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이 됐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아이디어를 낸 프랑스 정치인 로베르 쉬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유럽은 새로 태어날 것이다. 유럽은 굳게 단합할 것이다.” 전쟁과 기후위기에 흔들리는 지구, 지금의 국제사회가 쉬망의 예언과 같은 지혜를 모아낼 수 있을까. 덧붙여 또 하나의 걱정이라면, 혹시나 우리 정부만 딴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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